“인민폐의 ‘인민’은 중국인 만 아닌 전세계인…위안화 국제화된다”

등록 : 2019년 11월 25일 10:52 | 수정 : 2019년 11월 26일 17:08

(왼쪽부터) 양옌칭 이차이경제연구소장,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경제학자, 알렉산더 아이슬 오스트리아블록체인센터 수석 연구원, 차이어성 전 중국은행감독위원회 부위원장, 한승수 전 국무총리, 리둥룽 전 중국인민은행 부행장, 장리쥔 PWC회계법인 중국 컨설팅 리더, 쑹민 우한대 경제경영학원 원장, 마샤 반데버그 IFF학술위원.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코리아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준비하고 있는 디지털통화·전자지불(DC/EP) 시스템과 관련해, 중국 금융 당국 전직 관료들과 전문가들이 글로벌 통화 시스템의 판도가 바뀔 가능성과 한계를 논의했다.

차이어성(蔡鄂生) 전 중국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은감위) 부위원장은 23일 “국가가 존재하는 한, 민간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통화 가운데 후자가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광둥성 광저우에서 개막한 제16회 국제금융포럼(IFF, 国际金融论坛) 연례회의의 ‘글로벌 통화의 미래-빅데이터와 미래 통화의 형태, 그리고 금융 관리 감독’ 토론에서, 차이 전 부위원장은 페이스북이 지난 6월 리브라 백서를 발표한 이후 미래 화폐에 대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글로벌 디지털 통화 출현이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양옌칭(杨燕青) 이차이(제일재경)연구원 원장의 질문에, “인민폐(위안화)의 ‘인민(人民)’은 중국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며, 위안화 국제화 성공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차이어성 전 중국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 부위원장.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코리아

쑹민(宋敏, 영어명 Mei Song) 우한대 경제경영학원 원장은 페이스북의 제안으로 추진되고 있는 암호화폐 리브라에 경계심을 보였다. 그는 “리브라의 가치 안정성을 담보하는 통화 바스켓에 위안화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리브라가 미 의회의 동의를 얻어낸다면 분명 위안화 국제화에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리쥔(张立均, 영어명 James Chang) PWC회계법인 중국 컨설팅 리더는 “비트코인과 리브라를 비롯한 민간 발행 암호화폐는 국가 주권에 기반을 두지 않아, 유통량 및 가치 안정성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 화폐의 통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도 “다만 리브라는 가치 측정 단위로서의 기능보다 거래 매개 기능이 더 클 것이므로 글로벌 화폐 기능을 어느정도 수행 가능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기우치 다카히데(木内登英)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경제학자(Executive Economist)는 “리브라와 관련해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기는 하지만, 금융 포용을 촉진시킨다는 사회적 의미도 있으므로, 충분한 규제 검토를 거쳐 현재의 금융 시스템에 통합시키는 쪽으로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인민은행 디지털통화, M1, M2 대체에는 ‘신중’

리둥룽(李东荣) 중국인터넷금융협회 회장(전 인민은행 부행장)은, 디지털 통화가 화폐가 갖춰야 할 기본 조건들, 곧 가치 안정성, 안전성, 거래 편의성, 결제 신속성 등이 충족되지 못하면,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발전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과학기술이 어떤 진보를 이루든 모두 수단일 뿐이다. 미래 화폐의 발전 방향은 사람들이 화폐에 바라는 기본 요구 조건들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 조개로 만든 과거 화폐에서부터 금속, 그리고 오늘날의 동전 및 지폐 주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과거의 수표와 환어음에서부터 오늘날의 은행카드, IC카드, 위챗페이와 알리페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의심의 여지 없이 화폐 이용의 속도와 안전성, 편리성 개선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리둥룽 중국인터넷금융협회 회장(전 인민은행 부행장).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코리아

리 회장은 “중국 개혁개방 초기(1970년대 말)부터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현금 및 본원통화(M0) 유통이라는 점엔 변화가 없다”며 디지털 통화가 기존 화폐의 가치 안정성을 위협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민은행은 현재 M0(본원통화) 대체를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다”며 “학술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디지털 기술 발전이 M1(협의통화)과 M2(광의통화) 대체에 전복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화폐 제도를 만들어 실제 생활에 적용하려 할 때는 어떤 국가와 정부, 중앙은행도 신중론을 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인민은행 쪽도 현재 준비중인 DC/EP가 M0을 대체할 뿐, M1, M2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전개해 왔다. 다만, M1과 M2는 이미 기존 금융 시스템에 기반한 디지털 데이터이므로 다시 디지털화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리 회장은 이런 태도의 근저에 통화 당국의 신중한 태도가 깔려있다고 부연한 셈이다.

장리쥔 PWC회계법인 중국 컨설팅 리더는 “디지털화는 반드시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면서, 중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현금의 익명성에 대응하기 위해 CBDC로 M0을 대체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인민은행은 이같은 우려에 대해 “익명성과 규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고 반응한 바 있다.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경제학자는 “중국 등 국가가 CBDC 발행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민간 부문의 혁신을 억눌러선 안 된다”면서, 민간이 CBDC를 발행하고 이에 중앙은행을 비롯한 공공이 참여하는 방식의 CBDC 모델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DC/EP는 알리페이와 어떻게 다를 것인가

이날 토론에선 인민은행의 DC/EP에서 DC(디지털 통화)와 EP(전자지불 수단)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도 논의됐다. 넓은 의미에서 같은 ‘디지털 통화’에 속하는 알리페이·위챗페이 등 은행 시스템 기반 디지털 통화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 새로운 통화 시스템인 CBDC를 구분하고 기술적 우열을 따지기도 했다.

차이어성 전 은감위 부위원장은 디지털 통화가 당장 EP에 대한 수요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화폐는 기본적으로 지불 기능이 중요하다”면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통화의 거래 처리 속도가 아직 지나치게 느리다고 지적했다.

차이 전 부위원장이 블록체인의 속도를 거론한 부분은, 중앙은행 디지털통화(CBDC)를 만들면서도 블록체인 기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술 중립’을 추구하겠다는 인민은행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목이다.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블록체인 기술 및 산업 발전의 혁신 추진” 발언 뒤 중국 내에서 각종 정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디지털 통화 분야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장리쥔 PWC회계법인 중국 컨설팅 리더는 “경제 발전 관점에서 본다면 EP의 비중이 단연 클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DC와 EP의 공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성숙한 EP가 있는데 거기서 한 발 나아간 크립토커런시가 과연 필요한지 의문 갖는 사람들도 많다”면서 “달러 기반 테더(USDT)와 트루USD(TUSD), 리브라 등 스테이블코인은 법정 화폐 연동해 가치 안정성 보장한다고 하지만 셋 중 어느 것도 완전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쑹민 우한대 경제경영학원 원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몰라도 아직까지는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보다는 전자지불수단으로서의 디지털 통화가 우위를 점할 것”이라며 “심지어 리브라마저도 아직 완전한 의미의 암호화폐는 아닐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차이 전 부위원장은 “인터넷을 비롯한 그동안의 과학기술 진보가 인류 생활에 가져온 선명한 변화에 비해, (디지털) 화폐가 가져올 변화는 아직까지 추상적 가설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했다.

22~24일 중국 광동성 광저우시 샹그릴라호텔에서 개최된 IFF 글로벌 연례회의는, 금융 분야 각국 전직 고위 관료가 중심을 이루는 F20(Finance 20)이 매년 개최하는 회의다. 중국 베이징에 본부를 둔 F20은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중국 인민은행장, 한승수 전 국무총리, 조제 마누엘 바호주 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전 포르투갈 국무총리), 샤우카트 아지즈 전 파키스탄 국무총리, 헤르만 반 롬푀이 유럽연합정상회의 상임의장(전 벨기에 총리) 등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F20은 매년 봄과 가을 각각 베이징과 광저우에서 정례회의를 하며, 이번 광저우 회의는 ‘글로벌 안정성-새로운 전환과 새로운 발전’을 주제로 진행됐다.

저우샤오촨 전 중국인민은행장.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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