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칼럼] 라떼는 말이야…

등록 : 2019년 12월 3일 08:00 | 수정 : 2019년 12월 3일 08:47

첫 충전의 기쁨.

지난달 말 광저우에서 열린 국제금융포럼(IFF, 国际金融论坛) 연례회의 취재차 중국을 찾았다. 대학생 시절 어학연수로 베이징에 잠깐 머문 뒤 꼭 10년만이었다.

비자 신청보다 먼저 한 일은 위챗페이와 알리페이 계정 만들기였다. 얼마 전부터 여행 비자를 가진, 그러니까 중국 현지 은행 계좌가 없는 외국인도 위챗페이와 알리페이를 쓸 수 있게 됐다는 뉴스를 본 터라, 쉽게 계정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계정 만들기까진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국내에서 발급받은 마스터카드로는 송금 및 지불・결제에 필요한 신원 인증이 되지 않았다. 서너번 시도 후 바로 포기했다. ‘위챗페이와 알리페이가 없으면 못 다니겠지’보다는 ‘그래도 중국 가는데 한번 써보고 와야지’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안 되면 신용카드를 쓰면 되겠거니 하고, 위안화 환전도 최소한만 했다.

광저우 바이윈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큰 실수였단 걸 깨달았다. 숙소로 가는 차를 잡기 위해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滴滴出行) 앱을 켰다. 신용카드와 위챗페이, 알리페이, 애플페이 등 다양한 지불수단을 미리 선택할 수 있었다. 신용카드 등록이 가능하긴 했지만, ARS와 문자 인증 등 국내 카드사의 복잡한 인증 절차를 해외에서 밟으려니 15분이 넘게 소요됐다. 땡볕에 서서 휴대전화와 씨름 끝에 여차저차 카드 등록에 성공해, 무사히 차를 잡아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배가 고파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 한 눈에 봐도 신용카드를 안 받을 것 같은 허름한 가게들은 거르고, 그나마 ‘신식’으로 보이는 국수 체인점에 들어갔다. 주문을 하기 전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한지 묻자 “현금이면 몰라도 카드는 안 받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근처에 카드 받는 다른 가게가 있을까요?” 묻자 점원은 안타까운 얼굴로 “아마 없을 거다”라고 답했다. 국수집을 나와 다른 가게들을 한바퀴 돌았지만 카드를 내밀면 난감해 하는 건 모두 똑같았다.

급한대로 처음 그 국수집에 되돌아가 현금을 내고 국수를 주문했다. 식사 주문엔 성공했지만 어쩐지 원시인 혹은 금치산자가 된 것 같았다. 한 손으로는 국수를 먹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중국 단기 여행 알리페이 등록법’을 다시 검색했다. 알리페이 앱 내부의 미니 프로그램인 ‘패스 투어’를 통해, 임시로 상해은행 계좌를 개설해 돈을 넣을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익혀 충전에 성공했다. (여전히 익히지 못한 위챗페이 등록법을 알려 주는 독자가 있다면 감사하겠다.)

이튿날 열린 국제금융포럼 회의에 참석한 리둥룽(李东荣) 전 인민은행 부행장과 차이어성(蔡鄂生) 전 중국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은감위) 부위원장 등 중국 금융 당국 전직 관료들은 하나같이 DC/EP를 통한 ‘위안화 국제화’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인민폐(위안화)의 ‘인민’은 중국인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을 뜻한다”는 지극히 중국다운 발언도 나왔다. 세계 어느 곳에서보다 위챗페이와 알리페이 등 전자지불수단이 빠르게 보편화됐다는 점은 자신감의 가장 강력한 근거였다.

중국이 현금 사회에서 신용카드 사회를 건너뛰고 곧바로 모바일 결제 사회로 진입했다는 말을 이제야 실감했다. 월초마다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사는 중관춘이나 우다오커우 근처 대형마트에 있는 씨티은행 ATM 기계를 찾아 한달치 생활비를 현금으로 뽑은 뒤, 기숙사 서랍에 돈을 넣고 자물쇠로 꽁꽁 잠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던 유학생 시절이 아주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졌다.

이 글은 12월2일 발송된 뉴스레터에 실린 미니칼럼입니다. 뉴스레터 구독신청은 아래 배너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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