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ensus 2018 : 블록체인 때문에 뉴욕 호텔방이 동났다

등록 : 2018년 5월 17일 01:27 | 수정 : 2018년 5월 17일 01:34

컨센서스 2018이 열린 5월 3째주간의 뉴욕 밤거리. 뉴욕시는 이 주를 ‘블록체인 위크’로 지정했다.

 

코인데스크 `컨센서스 2018′ 참관기 – 01

나는 정치부 기자로 일하다 지난해 9월부터 블록체인 전문매체 창간 준비 작업에 합류했다. 내게 우선적으로 주어진 업무는 블록체인에 관한 해외 보도를 분석하는 일이었다. IT와 스타트업 분야를 취재한 적은 있었지만, 블록체인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낯선 분야였다. 나는 기존 매체들 중에선 어디가 블록체인 분야를 어떻게 다루고 있고, 전문매체들은 각자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살펴봤다. 그러던 중에 <코인데스크>란 매체가 눈에 띄었다. 이 매체의 기사도 눈 여겨 볼만 했지만, 무엇보다 ‘컨센서스'(Consensus)란 행사가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열린 ‘컨센서스 2017’에서 비트코인의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거래속도를 높이기 위한 ‘세그윗2x’라는 합의에 이르렀다. 모든 참여자가 각기 나름의 권한을 갖는 분권화된 네트워크인 비트코인이 뉴욕이라는 장소, 컨센서스라는 특정한 행사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성능을 개선하기로 합의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물론 세그윗2x는 결국 실패에 그쳤지만, 그런 합의에 이른 사실조차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컨센서스란 행사는 이 업계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런 행사였다. 현재 한국의 대표 블록체인 플랫폼이라 할 수 있는 아이콘은 지난해 컨센서스에서 기업들에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구축해주는 사업을 넘어 다양한 블록체인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각 개인들의 의료 정보를 블록체인 상에서 보관하고 활용하려는 메디블록은 퀀텀재단의 창업자 패트릭 다이를 이 행사에서 만나 의기투합했다. 메디블록이 퀀텀의 분산형 어플리케이션이 되기로 한 결정이 이 만남에서 비롯됐다.

약 6개월에 걸친 코인데스크와의 협상과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3월28일 코인데스크코리아가 창간했다. 나는 창간 한 달 반 만에 말로만 듣던 컨센서스 2018 현장을 직접 볼 기회를 얻었다. 생애 첫 뉴욕행이다.

컨센서스 2018 등록현장. 등록 데스크에 앞에 선 줄이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뉴욕 맨해튼의 미드타운 힐튼에서 열리는 컨센서스 2018은 5월 14일 오전 9시부터 시작이었다. 전날 도착했는데도 여전히 여독이 덜 풀렸는지 약간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오전 8시보다 조금 이른 시각에 행사장에 도착했다. 1층 로비부터 다소 북적이긴 했으나 등록 데스크가 있는 2층에 올라선 순간부터 더 이상 몽롱할 수 없었다. 엄청난 인파 때문이었다. 길게 펼쳐진 등록 데스크 앞에 사람들이 빽빽히 들어섰다. 한 층 전체가 사람들로 가득 찼고, 줄이 계속 빠지는데도 인구밀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40분 넘게 기다린 끝에야 등록을 마치고 대회의장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참고로 컨센서스 참가비는 결코 싸지 않다. 소속 기업의 규모, 예매 시점 등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인당 150~300만원에 이른다. 이런데도 올해 컨센서스 참석자는 8500명이 넘는다. 그런데도 해마다 참석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엔 2700여명이 참석했고, 2016년엔 1500명이었다. 첫 행사였던 2015년엔 600명이 참석했다. 매년 2배 이상 규모가 커진 셈이다.

이에 부응하듯 뉴욕시는 컨센서스가 열리는 5월 셋째 주를 시 차원에서 ‘블록체인 주간’으로 지정했다. 뉴욕경제개발협회(NYCEDC, 한국의 상공회의소와 비슷한 기관)는 올해 2월 뉴욕시 부시장 엘리시아 글렌과 함께 이 발표를 했고, 그 자리에서 글렌 부시장은 “뉴욕에 많은 블록체인 선도 기업들이 있고, 이로 인해 뉴욕은 빠르게 블록체인의 수도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코인데스크와의 제휴로 블록체인주간을 지정하게 되어 기쁘고, 이로 인해 뉴욕 시민들은 질 높고 혁신적인 일자리에 접근하게 되고, 혁신적인 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주간의 메인 행사는 컨센서스지만, 이 외에도 블록체인 전문 변호사들의 모임, 여성 블록체인 전문가들의 모임, 한국의 카카오와 라인, 아이콘, 해시드 등이 개최한 아시안크립토나이트 등 30개가 넘는 행사들이 이 기간 동안 뉴욕에서 열린다. 이로 인해 뉴욕시내의 호텔값도 천정부지에 달했다. 평소 1박에 200~300달러 가량인 맨해튼 중심부의 작은 호텔방의 숙박비가 120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컨센서스 2018의 기조연설을 맡은 돈 탭스콧과 페덱스의 CEO 스미스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컨센서스의 첫 기조연설은 블록체인주간의 산파인 뉴욕경제개발협회의 회장 제임스 파쳇이 맡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두 가지 계획을 발표했다. 하나는 블록체인에 대한 교육, 사업개발 등을 맡는 ‘블록체인 리소스 센터’를 뉴욕시에 설립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공부문에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뽑아서 지원하는 블록체인 경진대회를 열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기조발언은 곧바로 ‘뉴욕이 블록체인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려 한다’는 전세계 외신들의 보도로 이어졌다.

이어서 블록체인 업계의 셀럽이라 할 수 있는 ‘블록체인 혁명’의 저자 돈 탭스콧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탭스콧은 블록체인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보의 인터넷에서 첫 번째 킬러앱은 이메일이었다. 블록체인의 경우엔 첫 번째 킬러앱이 돈(비트코인)이었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점점 다양한 응용이 가능한 월드와이드웹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탭스콧은 짧은 연설을 마친 뒤 세계 최대의 항공특송업체 페덱스(Fedex)의 최고경영자 프레드 스미스와 대담을 나눴다. 대담에서 스미스는 “국경을 넘는 운송에 있어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법적인 요구사항이 모든 거래에 적용된다”며 나라마다 법규와 기준 등이 달라서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블록체인이 이런 복잡한 상황을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기업인으로서 새로운 기술을 접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스미스는 “당신이 새로운 기술의 최전선에 서지 않는다면 분명 당신의 사업은 파괴될 것이다. 당신이 사물인터넷( IoT)과 블록체인처럼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에 완전히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다음 연설자는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 제임스 불라드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과 비슷한 역할이지만, 영향력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불라드 총재는 “(공공화폐와 민간화폐가) 균형 있게 공존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 발생하지 않았을 거래들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재 암호화폐들의 난립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며 이미 전세계에 1800개 이상의 암호화폐가 있는 상황에서 “화폐 간의 교환비율(환율)의 혼란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기조연설과 대담이 20분씩 짧게 이어졌는데도 이미 대회의장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변화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의 대담한 시각들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대회의장을 나가보니 열기는 더 뜨거웠다. 컨센서스는 블록체인 업계의 만남의 장으로 더 유명하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들어찬 각 기업과 재단들의 수많은 부스들은 쉴 새 없이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복도와 연회장에서도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미팅이 이뤄졌다. 사람들 사이에는 어색함이 없었다. 몇 번 눈을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명함을 주고 받고, 사업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한국 대표 블록체인 플랫폼 아이콘은 40명의 직원이 참석해 대규모 부스를 운영했다.

 

코인데스크코리아가 모집한 컨센서스 참관단에는 한국의 여러 대기업들도 참석했다. 현대자동차, KT, 포스코, 한화그룹, LG CNS 등 대기업들의 실무자들이 직접 현장을 찾았고, 이들은 블록체인이 자사의 어떤 부문에 적용하면 좋을지, 그 적용이 실제로 회사에 도움이 될지를 궁금해 했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올해 초 문서공증에 블록체인을 적용해 효용성을 체감한 바 있다. 임직원과 협력사 직원들에게서 받는 각종 보안문서를 그동안 제3의 공증기관에 비용을 지불하며 보관해 왔는데, 이를 블록체인 시스템으로 전환한 것이다. 향후 제조사와 협력사 사이의 각종 계약문서, 차량 매매계약서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이 작업을 담당한 신승훈 현대자동차 과장은 “컨센서스 현장에서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블록체인 산업을 어떻게 추진하는지, 우리가 도전할 만한 새로운 영역이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의 부스가 마련된 미팅룸 앞의 안내데스크.

 

블록체인 사업을 진행 중이거나 추진 중인 스타트업들은 자신을 알리고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기 위해 직접 부스를 차렸다. 지난해 컨센서스에 참석한 뒤 사업방향을 전환해 세계 20위 규모의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자리잡은 아이콘은 대형 부스를 차렸다. 무려 40명의 직원이 부스에서 사람들을 맞이했다. 블록체인 플랫폼으로서 분산형 어플리케이션(댑)으로 적합한 파트너들을 찾는 것이 올해 컨센서스에 참여한 중요한 목적이다.

보맵의 류준우 대표(오른쪽)는 자신의 사업에 블록체인 접목을 추진 중이다.

보험관리용 어플리케이션 보맵, 블록체인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싱코(synco), 암호화폐를 신용카드처럼 결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퓨즈엑스(fuzeX)도 부스를 차렸다.

보맵의 류준우 대표는 “우리는 이미 개인이 가입한 보험들의 내역을 보여주고, 이를 컨설팅하는 앱을 서비스 중이다. 이 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이 보험상담 과정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이 가치있다는 것을 알았다. 개인들이 이 정보로 보험료를 할인받는 등 보상을 받거나, 보다 나은 보험컨설팅을 받는 서비스를 기획 중이다. 개인정보 관리, 정보를 제공한 개인을 위한 보상 등에 블록체인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컨센서스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싱코의 장유위 CSO는 “ICO에 대한 잡지(ICO CROWD)를 4개 국어(한국어, 영어, 일본어, 베트남어)로 발간하고 있고, 블록체인 교육기관 운영과 각종 행사 기획 등을 하고 있다. 컨센서스에서 우리가 커뮤니티를 만들 만한 제휴사들을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퓨즈엑스라는 팀은 암호화폐를 신용카드처럼 쓸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퓨즈엑스의 김태곤 이사는 “신용카드랑 똑같은 크기로 된 카드 안에 소프트웨어를 내장해 암호화폐 지갑과 연동했다.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곳에서 이 카드를 똑같이 쓸 수 있고, 대신에 우리가 제휴한 암호화폐 거래소나 지갑 등과 연계해 사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제휴한 곳은 싱가포르 거래소인 코스(coss)와 대만거래소인 코빈후드이고, 컨센서스에서 더 제휴할 곳을 찾고 있다. 8월 중에 싱가포르에서 베타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인데스크코리아가 한국 기업들을 위해 마련한 미팅룸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컨센서스 행사장 내 대형 미팅룸을 한국 기업들의 만남의 장으로 운영했다. 이 미팅룸에서 한국 기업과 해외 기업의 만남이 이뤄졌고, 한국에 관심이 있는 세계 각국의 블록체인 프로젝트 관계자들이 자연스럽게 이 방을 찾기도 했다.

해외 여러 나라에선 어떤 기업, 프로젝트 관계자들이 왔을까. 그들은 어떤 사업을 하고 있고, 왜 이 곳에 왔을까. 한국 시장을 어떻게 생각할까. 열기 후끈한 비즈니스의 현장인 각 기업들의 부스로 발길을 옮겼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