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열풍이 혹한을 무색게 하고 있다.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가 2017년 9월 29일 초기코인발행(ICO) 전면 금지를 시작으로 몇 차례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9월 말 비트코인 거래 가격은 500 만원을 밑돌았으나 두 달 만에 1천만원을 돌파했고 12월7일엔 2천만원 고지를 넘봤다. 중·장기적으로 시장을 건전하게 견인하고 소비자를 보호할 장치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단기·대증 처방으로 일관한 금융 당국의 태도에 시장의 판단은 냉정했다.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정부 당국의 대응책이 드러낸 가장 큰 문제점은 일관성 부재, 새로운 기술과 그것이 낳은 변화의 몰이해로 요약할 수 있다. 왜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에 돈이 몰리는지, 어떤 기술적 가치가 있는지, 다소 기형적으로 보일 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 향후 어떻게 자리잡을지 등 여러 논점에 대한 차분한 연구와 고민이 없다. 그저 밀어붙이기식 대응만 있다. 투기 수단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일부 금융사기 등 어두운 측면만을 강조하며 행정 편의적 사고에서 시장의 에너지를 힘으로 누르려는 시대착오적 방식이 먹혀들 가능성은 애초 희박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 부처끼리 서로 충돌하는 논리로 엇박자를 내기도 했다. 금융위원회는 비트코인이 기초자산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 상장 예정인 비트코인 선물을 국내 금융사들이 중개하는 걸 금지했다. 국세청은 암호화폐가 자산이므로 과세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법무부는 암호 화폐 거래 시장이 도박판이나 다름없다며 거래 자체를 원천 금지할 수도 있다고 했다. 12월6일 동시다발적으로 표명된 각 부처의 입장은 시장 참여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같은 대상을 두고 금융위원회는 자산이 아니어서 문제라 하는데 국세청은 자산이라며 과세하겠다고 하고, 법무부는 불법행위로 엄단하겠다는데 국세청은 그 ‘불법행위’에 세금을 물리겠다고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하나. 한국 정부만 이런걸까? 다른 나라들도 이리 갈팡질팡일까 절로 궁금증이 생긴다.



전세계 주요국 암호화폐 법제화 현황







2013년을 기점으로 암호화폐에 부정적 또는 유보적이던 나라들이 점차 새로운 결제 수단 또는 자산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2013년 9월 비트코인을 지급결제 수단으로 규정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내 비트코인 커뮤니티, 비트코인 협회 등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1년 이상 장기 보유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자본이득세를 유예하는 등 새롭게 등장한 암호화폐 시장에 우호적인 과세 방침을 천명했다. 영국은 2017년 6월 금융감독청(FCA)이 금융규제 차원에서 시중은행의 암호화폐 거래를 막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2014년엔 암 호화폐 거래에 부과하던 부가가치세를 폐지했다.


자국의 법정화폐가 안전자산으로 인식되어 글로벌 경제가 불안정해질 때마다 환율 문제를 겪는 공통점을 지닌 일본과 스위스는 가장 진취적이고 대담한 정책 을 펼치고 있다. 비트코인이 대체투자 대상으로 각광받는 상황이 두 나라의 환율 정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 2016년 4월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암호화폐를 지급결제 수단으로 활용 할 수 있는 재산상 가치로 규정했다. 화폐냐 재화냐의 소모적 논쟁에 매몰되지 않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새로운 대상을 받아들인 해석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규제의 지점을 암호화폐 거래소에 두고 등록제를 통해 건전성 규제를 시행해, 정책적 효과를 높이고 시장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하는 접근이 돋보인다. 개정된 자금 결제법은 이용자 보호,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 조달 방지를 주목적으로 한다. 또 암호화폐 교환업자는 고객이 암호화폐를 본원통화(또는 외환)로 오인하지 않도록 충분한 설명과 수수료, 기타 계약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고객 보호조처를 강구하는 등의 의무를 지게 했다. 얼마 전 본격 시행된 자금결제법상의 거래소 등록을 마친 업체는 2017년 11월 말 기준 11개 업체로 알려졌다. 스위스는 별도의 인허가 없이 암호화폐 취급업을 할 수 있게 하나, 취급업자들에게 자금세탁방지법 준수를 요구한다. 또한 금융 당국의 직접적 건전성 규제를 받거나 자율규제 조직의 회원이 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아직 직접 규제를 선택한 업체는 없고 모두 자율규제 기구 결성과 가입을 통해 간접 규제를 받고 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 규모를 형성했던 중국은 2017 년 9월부터 강력한 규제 여파로 거래 규모가 확 줄었다. 신규 ICO를 통한 융자의 전면 중단, 중앙집중식 거래소 플랫폼 내에서 법정화폐와 암호화폐 간 매수·매도 불가 방침에 따라 한때 90%에 이르던 위안화의 비트코인 거래 점유율은 5% 미만으로 떨어졌다.   다만 한국 금융 당국에서 이야기하듯이 중국 내 거래가 전면 중단된 것은 아니다. 거래소의 주문대장(오더북)을 통한 거래는 금지됐지만 거래소가 중개를 담당하는 개인간(P2P) 거래는 활발히 이뤄진다.











미국은 주마다 제각각 규제


미국은 상황이 다소 복잡하다. 2016년 플로리다주 법원은 비트코인의 통화로서 성격을 부정한 반면 2017년 뉴욕연방법원은 이를 인정하는 등 주별로 다르게 대응하고 있다. 뉴욕주는 2015년 비트라이선스를 도입해 비트코인 취급을 허가제로 규정했다. 국세청(IRS)은 연방 과세 목적상 비트코인을 재산(property)으로 판단했다. 연말 시카고상품거래소(CME)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가 비트코인 선물을 내놔, 암호화폐가 금융상품으로 제도화됐다. 코인베이스의 GDAX, 윙클보스 형제의 제미니(Gemini) 거래소 등은 은행법에 준하는 면허를 획득하고 합법적으로 영업 중이다.   캐나다와 스웨덴도 진일보한 견해와 규제 방향성을 취하고 있다. 캐나다 증권위원회는 2017년 10월 암호화폐와 ICO를 지원하기로 하고 전담팀을 구성했다. 또 비트코인을 공식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고 과세안을 준비 중이며, 중앙은행 차원의 암호통화인 ‘CAD 코인’ 도입도 추진하는 걸로 알려졌다. 스웨덴은 2017년 10월 법인이 납부하는 세금의 일부를 비트코인으로 낼 수 있게 허용했고, 중앙은행 암호통화인 ‘e-크로나’ 도입을 연구 중이다. 앞서 2015년에 법정화폐인 크로나와 비트코인의 교환을 지급수단 간 교환으로 인정해 부가가치세 면제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러시아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가장 급변하는 국가에 속한다. 줄곧 전면 금지라는 원론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2017년 들어 태도를 바꿨다. 푸틴 대통령은 10월 암호화폐 규제 체제를 만들라고 정부에 지시했다. 통제 방법을 만들어 암호화폐를 관리하려는 구상인 듯하다. 2013년 비트코인 사용을 전면 금지했던 인도도 방향을 선회해 2017년 9월부터 과세안 마련 등 규제체제 구축에 들어갔다. 주요 국가의 규제 현황은 한국과 아주 대비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연하고 체계적인 규제안을 마련하는 추세로 가는 반면 한국은 이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단기·대증 대책을 남발하기보다 공정하고 건전하게 발전할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게 당국의 몫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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