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7일은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에게는 중요한 날이었다. 그는 지난 5월 재집권에 성공한 뒤 이날 최초로 해외 비즈니스 순방길에 올랐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4개국을 도는 여정에 캐머런 총리는 각 분야 쟁쟁한 대기업들의 대표를 동행시켰다. 세계 16개 나라에 3400만 가입자를 둔 글로벌 보험회사 ‘아비바’, 지난해 매출 15조원을 기록한 건설사 ‘밸푸어비티’, 세계 재보험업계를 주도하는 ‘로이드’ 등이 포함됐다. 그런데 여기에 동행한 31개 업체 가운데에 이름도 생소한 작은 업체가 하나 끼어 있었다. 핀테크 기업 ‘블록체인’이었다. 이는 전통적 금융 허브인 런던의 ‘시티’가 금융과 정보기술이 융합하는 ‘핀테크 시대’에도 권력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 캐머런 총리의 순방 기간에 영국의 핀테크산업 촉진 단체인 ‘이노베이트 파이낸스’는 앞으로 4년 동안 전세계에서 80억파운드(약 14조원) 상당의 기술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캐머런 총리는 “정부도 영국을 핀테크를 주도하는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화답했다고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가 전했다.


 

세계 금융권력, 핀테크 주도권 전쟁 한때 가상 전자화폐 비트코인에 찬사 투기·범죄 휘말려 거품 붕괴했지만 핵심기술 ‘블록체인’ 미래가치 여전 금융시스템에 파격적 비용절감 의미 BoA 등 글로벌 은행 공동개발 나서 다보스포럼 “세계를 뒤바꿀 기술” 평가 ‘은행 없는 세상’ 현실화할 수도 한국은 기술논의 걸음마 단계 일 비트코인 거래소 파산 돌아보고 핀테크 시대 흥분 앞서 보안투자 시급


 

이처럼 핀테크 바람이 거세지는 가운데 ‘블록체인’이 뜨거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영국의 ‘블록체인’이라는 회사가 아예 회사 이름으로 쓰고 있는 이 단어는 사실 전자금융거래를 기록하는 새로운 데이터베이스 기술을 이르는 말이다. 이 기술은 올해 들어 세계 경제 뉴스에서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은 지난 9월에 기술의 파급효과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블록체인을 앞으로 사회를 뒤바꿀 21개 기술의 반열에 올렸다. 보고서는 “2027년이면 전세계 총생산(GDP)의 10%가 블록체인 기술로 저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2023년에는 각국 정부들이 세금을 블록체인 거래로 받기 시작하리라고 봤다. 같은 달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시티그룹, 모건스탠리, 도이체방크, 홍콩상하이은행(HSBC) 등을 비롯한 22개 세계 은행들은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기 위해 ‘R3CEV’라는 벤처기업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블록체인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런 관심을 모으는 것일까. 이는 한때 투기 붐까지 불었던 디지털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핵심 기술로, 이른바 ‘은행 없는 세상’이 오게 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에선 사람들이 돈을 주고받으려면 ‘장부’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믿을 만한 누군가’가 있어야만 한다. 지금 이런 노릇을 하는 것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이다. 은행은 거래의 안전도 보장하고 내용이 기록된 장부도 작성해 보관한다. 이를 위해서 금융거래 정보를 기록하는 거대한 디지털 서버를 관리해야 하고, 해킹 등의 피해를 입지 않게 보안도 유지해야 한다.


블록체인은 금융거래에서 장부 책임자가 없는 거래 시스템이다. 중앙집권적 은행이 장부를 책임지는 게 아니라 이 거래 시스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장부를 보관하게 된다. 새로운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장부는 이 정보를 별도의 ‘블록’으로 만들고, 이 블록을 기존 장부에 연결한다. 블록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니 ‘블록체인’이 된다. 해커가 디지털 장부를 조작하려 해도 이용자가 수천만명, 수억명이라면 흩어져 있는 장부를 한꺼번에 조작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결국 블록체인 기술이 앞으로 주요 금융시스템으로 자리잡는다면 은행의 존재가 없어도 개인끼리 스마트폰으로 전자화폐를 주고받는 시대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는 금융시스템이 블록체인을 통해 파격적인 비용 절감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현재의 중앙집중적 시스템에선 모든 거래 기록과 개인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중앙의 보안이 매우 중요하다. 금융 범죄자들은 이 보안시스템을 뚫기 위해 온갖 신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한다. 금융회사들은 이를 방어할 기술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전자상거래가 더욱 확대되고 사물들까지 거래를 주고받는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다가오면 비용은 더 치솟을 수밖에 없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블록체인을 적용하면 전자금융서비스 비용에서 단기적으로 연간 20억달러(약 23조원)를 절감할 수 있으리라고 내다봤다.


세계 금융허브의 발빠른 움직임에 견줘 볼 때 한국의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대응은 걸음마 단계다. 블록체인과 관련해 정부당국과 업계의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이달 초에 들어서야 있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기업의 핀테크 관련 실무책임자들을 초청해 열었던 ‘핀테크 해외진출 원탁회의’에서 “전세계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국내 금융산업도 글로벌 시장 동향에 앞서 대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같은 날 케이비(KB)국민은행은 국내 핀테크 기업인 코인플러그와 블록체인 기반 기술 개발을 위한 제휴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핀테크 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블록체인에 온통 장점과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 1월 정보기술 전문 매체인 <더 버지>와 인터뷰를 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블록체인 기술을 1차적으로 현실화했던 비트코인에 대해 두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첫째는 잘못된 거래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게이츠는 “사람들은 잘못된 계좌로 돈을 보냈으면 전화를 걸어서 복구해 달라고 하기 마련인데, 이 경우에는 (전화를) 걸 곳이 없다”고 말했다. 장부 책임자가 없는 블록체인 시스템의 약점이다. 다른 하나는 분산형 시스템이 지닌 익명성과 정부 통제의 충돌이다. 그는 “이 거래가 마약 대금인지, 세금을 매겨야 하는 거래인지 등 정부가 알고 싶어하는 것들이 많은데 이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 거래량이 임계치를 넘어가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또 블록체인 기술은 구조적으로 뛰어난 보안성을 보여줬지만, 운용 행태에 따라 빈틈은 발생한다. 2014년 2월 세계 3대 비트코인 거래소로 꼽히던 일본의 마운트곡스(Mt.GOX)가 갑자기 문을 닫는 일이 벌어졌다. 해킹으로 하루아침에 74만4천 비트코인(당시 시세로 약 4128억원)을 잃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썼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전문매체 <테크크런치> 보도를 보면, 공격자는 허브형 거래소인 마운트곡스가 실제 거래 요청에 따라 비트코인 송금을 했는데도 마치 안 된 것처럼 블록체인을 착각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 거래소는 수많은 거래에서 같은 송금을 두차례씩 보내게 되면서 큰 피해를 입게 됐다. 이 회사는 이런 허점에 대비한 자체 확인·회계 시스템을 마련해 두지 않았던 터라 파산에 이르렀다. 결국 2013년 말에 개당 1000달러를 넘었던 비트코인 시세는 이런 사고 등으로 거품이 꺼지면서 2014년 말 400달러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일본 마운트곡스의 사례는 핀테크의 미래가치에 섣불리 흥분만 하고 근본적인 기술혁신과 보안투자엔 인색한 한국 금융계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 블록체인


비트코인과 함께 개발된 분산형 장부 기록 데이터베이스 기술이다. 예전 전자금융거래 방식에선 은행과 같은 중앙의 관리자가 거래를 관장하고 장부를 보관하며 이용자들을 관리했다면, 블록체인 방식에선 참여자가 각자 거래 장부를 보관하기 때문에 관리자 없이도 전자거래가 가능하다.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분산된 장부들을 서로 대조하기 때문에 장부 조작이 극히 어려워 보안에 강한 장점이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it/7216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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