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 규제, 블록체인 지원’이 반쪽 정책인 이유
‘블록체인 기술’ 논란의 쟁점·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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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지 한겨레 기자
박수지 한겨레 기자 2018년 3월16일 11:45

‘가상통화(암호화폐) 투기는 규제하고, 블록체인 기술 발전은 지원한다. 투기 과열이 지속되면 거래소 폐쇄도 가능하다.’


최근 가상통화 규제를 두고 혼선을 빚던 정부 부처들이 합의한 최소한의 기본 방침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가상통화와 블록체인 기술을 분리한다는 건 블록체인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이라고 반박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의 방침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이라고 불리는 블록체인은 네트워크 구성원들이 중개자 없이 개인간(P2P) 거래를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분산형 기록 데이터베이스 기술이다. 거래 정보를 묶어 ‘블록’을 만들어내고, 이를 사슬(chain)처럼 기존 장부와 연결해 ‘블록체인’이라 부른다. 신뢰 있는 중개자 없이도 블록체인 기술이 해킹과 위·변조에 강하다고 보는 이유는 네트워크 구성원 개개인에게 장부가 분산돼 있고, 한 블록을 누군가 고의로 바꾸더라도 과반수가 이를 동의해야 해 해킹 세력이 51% 이상을 장악하지 않는 이상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분리 대응’ 방침 세웠지만
업계에선 ‘기술 몰이해’ 반박
“블록체인 생성·유지 참여자에게
인센티브로 주는 게 가상통화”
블록체인 핵심은 ‘개방성’인데
정부 지원은 ‘폐쇄형’에 국한
기업 등에 한정되고 혁신 제한
블록체인, 거래정보 삭제 불가능
개인정보보호법 등 보완 필요
‘공룡기업’ 출현 생태계 장악 우려도



프라이빗 블록체인만 지원?


업계에서 정부의 지원 방침을 ‘반쪽짜리’라고 보는 이유는 지원 방향 자체가 ‘반쪽’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종류는 크게 모두에게 개방된 ‘퍼블릭 블록체인’과 허가받은 이들만 쓸 수 있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나뉜다. 이를 편의상 개방형과 폐쇄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개방형 블록체인의 대표주자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다. 현재로선 네트워크 확장이 어렵고 거래 속도가 느리다. 이때 가상통화는 블록이 생성되고 유지되는 데 필요한 유인이 된다. 컴퓨터와 전기료 등 비용을 들여 다른 거래 내역을 승인해주는 구성원들이 있어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유지되기 때문에 이들에게 가상통화라는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흔히 이를 채굴에 대한 보상이라고 한다. 업계에서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을 분리할 수 없다”고 하는 핵심 근거다.


반면 ‘폐쇄형’에 해당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기관이나 기업이 운영주체로 사전에 허가받은 이들만 쓸 수 있다. 투기의 원인이 된 가상통화 발행도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 어차피 제한된 참여자가 자신의 자본으로 구축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인센티브를 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참여자 수가 제한돼 있으니 상대적으로 속도에 강점이 있다. 이 점을 활용해 물류와 유통 분야 업계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월마트는 과일 재배부터 수확, 유통을 거쳐 판매되기까지 보관 온도 등 각종 정보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붙여 소비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해운회사 머스크는 블록체인 선박 물류 시스템을 개발했다. 물품 주문부터 도착까지 모든 과정에 네트워크 참여자(선주, 세관, 항만, 보험사 등)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별도의 세관 신고서 작성 등 서류 필요 없이 물류 시스템만 보면 되는 것이다. 삼성에스디에스(SDS)는 서울시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장안평 중고차 매매시장을 혁신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저신뢰 시장인 중고차 시장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면 소유·사고 이력 등 관련 정보가 투명해지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지원한다는 방향도 이처럼 가상통화가 배제된 프라이빗 블록체인 분야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예산 42억원을 투입해 블록체인 공공분야 우수사례를 발굴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도 실손보험금 청구 자동화, 세대 간 전력거래 등 4건의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대부분 프라이빗 블록체인 분야가 지원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혁신에 대한 지원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탈중앙화’와 같은 블록체인의 근본 특성과는 관련이 없다. 블록체인 기술업체인 체인파트너스의 표철민 대표는 “수십만대의 개별 컴퓨터가 네트워크에 관여돼 있어 보안을 강화한다는 게 블록체인인데, 기존처럼 기업 내부 자원으로만 쓰는 건 진정한 의미에서 블록체인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운영주체의 정책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에 해당 운영주체의 권한을 도용하는 것만으로도 블록체인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는 약점도 있다.



거대 기업에만 유리한 구도 될 수도


현행대로라면 국내에서 퍼블릭 블록체인이 발전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정부의 의도와 달리 역설적으로 이런 방침은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본은 적은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퍼블릭 블록체인에 뛰어들기에 불리하다. 초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코인공개(ICO)도 국내에선 전면 금지하고 있는데, 가상통화 거래 시장까지 경직되면 사람들이 코인 보상을 기피하게 되고 네트워크 참여자 수가 감소하면 결국 블록체인 시스템이 불안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견줘 이미 기득권을 지키고 있는 공룡 기업들은 블록체인 생태계를 이용해 영향력을 더 높일 수 있다. 해당 코인이 있어야만 서비스를 이용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거대 기업은 코인에 대한 가치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김열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고팔 땐 아마존 코인만 쓰게 한다거나, 페이스북 코인으로 메신저로 거래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며 “그런 방식으로 기존 화폐를 잠식할 수도 있는데 이런 부분이야말로 국제적 공조가 필요한 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정부 방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논의가 본격화하려면, ‘묻지마 투기’로 가상통화 시장이 과열된 상황에서 거래소 운영에 대한 규제를 넘어 거래되는 코인에 대한 ‘옥석 가리기’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요즘엔 일반 회사를 차리고 주식 발행해도 될 것을 블록체인을 붙여 코인을 발행하기도 한다. 국내 거래소에서 거래될 수 있는 코인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코인에 대한 ‘옥석 가려내기’를 제도화하는 데 나섰다. 미국 신용등급 평가기관인 와이스 레이팅스(Weiss Ratings)는 오는 24일부터 가상통화에 대한 신용등급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가상통화에도 코인의 기술, 사용 및 거래 패턴 등 수천 개의 데이터 요소를 뽑아내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이밖에도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부상할 수 있는 쟁점은 곳곳에 산적해 있다. 한 예로, 일반적으로 블록체인에서의 거래는 수정·삭제가 불가능해 기존 법대로라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된다. 특히 금융권에 도입되면 보관기한이 만료된 개인정보 삭제, 비정상 거래의 취소 등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 홍승필 성신여대 교수(융합보안공학)는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의 ‘목적 외 활용’을 금지하고 삭제하도록 돼 있는데 법과 기술에 괴리가 있어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전자서명법과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이 규정하는 기존 공인인증 방식이나 문서 효력 관련 내용도 블록체인 활용이 늘어나면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finance/8287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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