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은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을까. 1969년 미 국방부가 스탠퍼드대학과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의 컴퓨터를 연결한 최초의 네트워크인 아르파넷을 만들었을 때,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등과 같은 거대 인터넷기업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벨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데니스 리치, 켄 톰슨, 브라이언 커니핸 등이 운영체계의 시초인 유닉스와 프로그래밍 언어인 C언어를 만들었을 때, 우리가 인터넷에 올리는 일상과 생각이 중앙집중적인 방식으로 관리 통제되고, 개인의 정보가 악용될 가능성에 불안해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까.

지난 30년간 전세계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인터넷은 애초 자유로운 해커정신에 기반했다. 권력의 검열과 감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정보의 유통은 좀더 민주적이고 분권화된 사회를 만들 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현실에선 효율과 신뢰를 담보하기 위한 중앙화가 가속화됐다. 하지만 중앙집중적인 인터넷이 과연 옳은가라는 문제제기는 오래전부터 지속됐다. 1988년 티머시 메이가 발표한 ‘암호화 무정부주의 선언’이 대표적이다. 최근 암호화폐로 인해 현실 세계에 갑자기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블록체인은 짧게는 30년, 길게는 60년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블록체인이 새로운 패러다임일까. 기존 인터넷의 결정적인 단점을 해결할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디지털로 포장 가능한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를 용이하게 했고, 이를 이용하는 사업의 고정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월드와이드웹으로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완전복제가 가능한 디지털의 특성과 확대된 접근성으로 인해 분명 가치가 있는데도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거래하기가 어려운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블록체인은 거래 가능한 인프라를 인터넷에 더한다는 점에서 ‘거래 가능한 웹’(트랜잭셔널 웹)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인터넷 공룡의 선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합의로 규칙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블록체인의 중요한 특징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그랬듯, 블록체인이란 기술 자체가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사실이 아니다. 인터넷을 받아들이는 우리가 세상을 바꿨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

블록체인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나 경제시스템이 아니라, 문명의 전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탄생하고 공산주의가 나온 뒤 이들이 경쟁하다가 수정자본주의가 된 일련의 사건과 맞먹는 변화가 이제 시작되고 있다. 우리가 이 거대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비해야 하는지, 코인데스크코리아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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