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료사진

‘기대는 있지만 위험이 크다’vs’위험은 있지만 기대가 크다’ 암호화폐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이렇게 갈린다.

한 발짝 더 들어가면 ‘암호화폐는 위험하니 강력하게 규제해야 하지만 ‘순수한’ 블록체인 기술은 적극 지원해야 한다‘vs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분리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식의 구도도 있다.

정부나 정치권의 시각도 대충 이런 정도다. 20만명의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졌던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발언-‘가상화폐 거래는 도박’ 같은-들이 대표적으로 전자를 대변한다. 법무부 등 정부 내 강경론을 이끄는 쪽은 여전히 ‘가상화폐는 범죄의 온상이다. 기대할 것도 별로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정부에선 강경-규제론이 온건-진흥론보단 힘이 세다.

예컨데 ‘가상통화 범부처 TF(태스크포스)’를 들여다보자. 이 TF는 국무조정실 주재로 기재부, 금융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정거래위원회, 법무부가 참여 중이다. 주요 암호화폐 가격이 횡보 중인 최근 상황에서 이 TF가 딱히 하는 일은 없다. 매일 주요 암호화폐 가격변동과 관련 뉴스들을 취합한 자료를 공유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매일 공유되는 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꽤 눈에 띈다. 일단 이 자료는 암호화폐를 ‘가상증표’라고 부른다. 법무부가 사용했다가 질타를 받고 슬그머니 사라졌던 그 단어가 범정부 TF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가격 변동표도 포함되어있는데, 지난해 12월 28일 2차 정부 대책 발표 시점 대비 현재 가격 비율이 변동지표다.

또 다른 주요 지표는 미국 비트코인 가격과 국내 가격의 비교, 3월16일자 자료에는 “소위 김치프리미엄은 3.03%로 우리나라의 가상증표(가상통화) 투기과열 양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상태”라는 구절이 담겨 있다.

시장에선 ‘곡소리’가 나지만 정부는 여전히 현 상황을 ‘투기과열 양상’으로 보고 있는 것.

눈 밝은 독자들은 이 정도면 눈치챘겠지만, 현재 범정부 TF를 주도하는 부처는 법무부다.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실이 암호화폐 관련 업무를 챙기면서 부처 간 교통정리도 그렇게 됐다. 사실 지난 해 말, 암호화폐고공행진에 대한 청와대의 위기감은 밖에서 짐작하는 것 이상이었다. ‘바다이야기’라는 단어가 야당에서 먼저 나온 것이 아니었다. “공안적 관점, 공공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법무부 안팎에서 스스럼없이 들린 것도 이 때 쯤이다.

‘법무부가 혼자 오버해서 국민청원이 20만도 넘기고 청와대가 화가 났다’ ‘과도한 규제로 젊은층 지지율이 떨어져서 청와대가 부담을 느낀다’ 같은 세간의 이야기들은 사실과는 거리가 꽤 멀다. 이런 까닭들로 인해.

어찌됐건 주요 암호화폐 가격이 대략 반토막(3월 16일자 범정부 TF자료에 따르면 2차 대책발표 후 변동률은 –60.28%)이 나면서 긴장감은 완연히 낮아졌다.

문제는 위기 관리, 규제 차원의 대응만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홍익표 정책위수석부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가상통화 TF화폐’를 꾸린 것은 지난 1월 30일이다. 민주당은 이 TF에 기재위, 법사위, 정무위, 과기방통위 등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현역의원을 포진시키며 “투기적 요소는 최대한 막되, 건전하고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 TF는 단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 정부 여당을 향해 ‘규제 일변도’라고 비판하며 앞다퉈 토론회 등을 열던 야당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냥 관심 자체가 없다.

물론 국회 정무위, 기재위 등을 중심으로 작년 상반기 부터 (정치권에서 이 정도면 정말 빠른 것이다!)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지고, 전문가들과 토론을 벌인 의원들이 몇몇은 있다. 금융위나 한국은행 같은 유관 정부 조직들은 정치권보다 훨씬 더 빨리, 정치권이나 법무부 혹은 청와대 보단 높은 수준으로 관련 스터디를 했다. 하지만 가격이 급등하고 사회적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공안적 대응’에 힘이 실리자 그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시각에 따라 ‘발언권을 빼앗겼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다들 처음 겪는 것이니, 한 번은 ‘이렇게 출렁’ ‘저렇게 출렁’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제는 다들 좀 달라져야 되지 않겠나. 말 그대로 ‘건전하고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지원’할 때가 됐다.

만약, 정부 입장에서 “그대로 안 된다” 싶으면 이젠 그냥 거래소 폐쇄 등 금지책으로 가는 게 맞을 것이다. 권한엔 책임도 따르는 것이고, 정부가 솔직하지 못하면 국민만 손해다.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저작권자 ©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