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경제학자와 공학자의 다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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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용 동국대 교수(경제학)
전주용 동국대 교수(경제학) 2018년 4월19일 11:06
이미지 출처: gettyimages


이 글을 쓴 전주용 동국대 교수는 서울대 전기공학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고, 미국 미시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을 거쳐 2016년부터 동국대 경제학과에서 미시금융과 게임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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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ost any time you see someone from a university praising Bitcoin, that person is from the computer science department. And if you see someone from a university criticizing Bitcoin, that person is likely from the economics department.” (“Why don’t economists like Bitcoin?” Adrianne Jeffries, The Verge, Dec. 31, 2013)

역사는 반복될까? 이번에는 다를까?

비트코인의 등장 초기부터 “가상통화가 화폐로서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경제학자의 입장은 대개는 부정적인 반면 컴퓨터 공학자들은 대개 긍정적인 경우가 많다. 이는 경제학자와 공학자가 화폐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화폐는 가치측정 및 저장, 그리고 지급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매개체로 정의되지만, 다수 경제학자들이 바라보는 현대의 화폐는 위에서 언급한 역할을 수행하는 법화(legal tender)인 중앙은행 발행 본원통화(monetary base)는 물론, 이를 이용하여 은행이 수신 및 대출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신용(파생통화)까지 포괄한다. 현 통화신용 체계는 중앙은행과 상업은행 간의 긴밀한 연관성에 기반하여 구축되었기에 규제 받지 않은 신용창출은 합법적이 될 수 없다. 또한, 비트코인을 비롯해 신용창출 기능이 없는 현재의 가상통화를 기능적 측면에만 근거하여 (현대적 의미의) 화폐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반면, 공학자들은 화폐의 기능적 특성에 보다 집중한다. 만일, 기술적으로 앞서 언급한 가치 저장 및 지급 수단으로서의 기능 수행에 있어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화보다 더욱 우월한 점을 보인다면 법화를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충분히 통용 화폐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복수의 가상통화가 경쟁적으로 유통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경제학에서 이용되는 주요 모형(Cash In Advance 등)에서도 화폐의 기능적 효용이라는 관점을 수용한다.)

비트코인의 탄생과 성장 배경에는 컴퓨터 공학자들 특유의 반권위적, 자유주의(libertarian) 성향과 더불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및 전개과정에서 위기를 자초한 은행과 대형 금융기업들은 고통 없이 위기를 빠져나간 반면, 나머지 사람들에게 부당한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인식이 대중들 사이에 확산되고 ,기존 금융제도에 대한 불신이 증가했다는 지점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최초로 작성한 논문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에는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화폐의 역사를 살펴보면 화폐 발행 자격과 금융기관 신뢰성을 둘러싼 논란은 가상통화로 인하여 촉발된 새로운 것은 아니며, 과거에도 수차례 존재해왔음을 알 수 있다. 복수의 법정 통화가 인정된 적도 있고, 통화 발행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 은행은 등장 초기부터 자산가들이 보통 사람들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뺏기 위한 제도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으며, 현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에서조차 논란 끝에 은행 설립 자체가 금지된 시기가 존재했다.

초기 자본주의 단계에서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서 발생하는 중요한 문제는 경제 성장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화폐 공급 부족 현상이었다. (당시 화폐는 실물로서의 가치에 근거하여 발행 및 유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화폐 공급을 늘리기 위해 외환, 상품 등 복수의 화폐 통용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1715년 미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경우 최대 17가지의 서로 다른 법정 화폐가 지정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복수의 발행주체를 인정하고 법정 통화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문제들을 일으키게 된다. 일례로, 만일 법정화폐간 교환율이 변동성을 갖고 있다면 다수의 사람들이 경제 전반적으로는 별 가치를 창출한다고 보기 어려운 차익거래 시도에 많은 자원을 집중할 것이다. 반면, 교환율이 고정될 경우, 고정환율제 붕괴 사례에서 보듯 해당 경제 체제 밖에서 오는 충격에 취약하게 되며, 이는 과거는 물론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비판지점이 된다.

또한, 악화(bad money)가 양화(good money)를 구축한다는 유명한 그레이셤의 법칙이 이러한 상황에 적용된다. 만일 실물 가치가 다른 두 법정 통화가 존재한다면 실물 가치가 높은 통화(양화) 유통은 점차 축소되고 그렇지 않은 통화(악화)가 주로 유통되며 결국은 단일화폐(악화)만이 통용될 것이다. 은행을 중심으로 한 통화신용체계가 등장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정부가 (주로 귀금속으로 이루어진) 유통화폐의 품질의 저하를 지속적으로 감시 관리하면서 동시에 물리적으로 화폐 공급량을 늘리는 대신, 은행을 이용하여 신용을 창출함으로써 화폐 공급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명목화폐를 이용하는 현재에도 복수의 가상통화가 유통될 경우 이러한 문제가 사라지기는 어렵다.

따라서, 다수 화폐경제학자들이 볼 때 가상통화의 등장 이후 제기된 대부분의 논란은 이미 역사적으로 결론이 난 문제의 재탕이며, 현 통화신용체제를 가상통화의 자율적 유통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기술적인 진보에도 불구하고 과거 회귀적이며, 따라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시도라는 관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가상통화의 기술적 잠재력은 동일한 문제 제기에 대해서 이번에는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현재까지 인간이 설계한 모든 제도(institution)들은 결국은 일종의 사회적 계약이며, 계약의 이행 여부는 결국은 상황에 따른 임의적인 판단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또한, 그것이 종종 ‘보다 효율적’인 경우도 존재한다. 가령, 2차세계대전 이후의 통화정책 운용 과정에서 엄격한 규칙 기반 통화정책보다는 임의적 정책이 유용할 수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의적 결정은 늘 제도를 설립한 원칙을 버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하며, 이는 다시 제도에 대한 신뢰 문제를 발생시켜 유용성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음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가장 최근의 예로 지난 금융위기 발생 원인을 제공한 대형 금융기관들은 리먼 브라더스 외에는 모두 세금이 포함된 구제금융을 받고 살아났으며, 해당 정책의 시급성 및 타당성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이러한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 그리고 그로 인한 기존의 통화신용제도, 나아가 금융 전반에 대한 불신이 그 이전에 비해서 증가했다는 점이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스마트 계약과 다시 그에 기반한 분산독립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DAO)에 기반한 금융 제도 수립 가능성은 계약의 불완비성을 보완하고, 인간의 임의적 개입을 현재보다 크게 줄이게 되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제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역사는 반복될까? 이번에는 다를까?”라는 질문에 현 시점에서 답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가상통화가 은행의 기능을 모두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은행의 요구불예금에 대한 수요를 유의하게 감소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은 존재하며, 현 통화신용제도 및 금융기관들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제 유의미한 대안이 생겼다는 점은 경제학자들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해 “이번에는 다를” 가능성에 대해 보다 열린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반면, 공학자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크게 발전하더라도 블록체인으로 구성된 시스템과 그 외부와의 접점-가령 환전소와 같은-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한, 인간의 임의적, 직접적 개입이 전혀 없는 독립적이고 자율적 통화신용체계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가상통화의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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