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료사진

 

세계 4대 자동차 회사들이 테크 기업, 스타트업들과 함께 자동차 산업 분야에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 컨소시엄을 꾸린다.

지난 1일 BMW, 포드(Ford), 제네럴모터스(GM), 그리고 르노(Renault)는 자동차 회사들의 블록체인 컨소시엄 모비(MOBI, Mobility Open Blockchain Initiative)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4대 자동차 회사 외에도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보시(Bosch)와 ZF, 액센추어(Accenture)와 IBM 등 대형 컨설팅사, 그리고 블록체인 분야의 대표 업체인 콘센시스(Consensys), 하이퍼레저(Hyperledger)가 모비에 참여한다.

지난해 IBM과 ZF가 함께 암호화폐로 차량 관련 각종 거래를 하는 방법을 시험한 데 이어 최근 들어 자동차 분야에서 다양한 개념증명이 잇따라 발표됐다. 모비 컨소시엄은 무엇보다 자동차산업 전체를 대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프라이빗과 퍼블릭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두루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특정 분산원장 기술을 채택해 이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하는 대신 모비는 차량들끼리 (암호화폐로) 결제를 진행하고 데이터를 공유하는 공통의 표준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이는 차량 공유 서비스부터 자율주행 자동차까지 자동차산업 생태계가 발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밑거름이 될 것이다.

모비의 CEO 크리스 밸린저(Chris Ballinger)는 자신이 앞서 토요타 연구소에서 일했을 때 스타트업과 함께 몇몇 블록체인 개념증명 연구를 하면서 이런 종류의 컨소시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의 과제로 탈중앙화된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차들끼리 소통하려면 무엇보다 공통의 기준과 방법이 확립돼야 한다. 그래야 누가 누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건지 확인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필요한 결제도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자동차 회사가 개별적으로 자체 차량용 가상 지갑을 만들고 혼자 개발한 방식으로 통행료를 내고 차량 공유 서비스도 진행한다고 생각해보라. 한 마디로 그렇게 바벨탑을 쌓듯 일을 처리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밸린저는 토요타에 있을 때 컨소시엄이 이제 막 형성되던 시절부터 참여해 왔다. 모비의 모태가 된 조직에도 몸을 담았던 것인데, 그때만 해도 컨소시엄에 참가한 회원사 가운데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는 밸린저의 회사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30여 개에 달하는 모비 회원사들이 전 세계 자동차의 70%를 생산할 만큼 몸집이 커졌다.

밸린저와 긴밀히 협력하는 콘텍스트 랩스(Context Labs)의 CEO 댄 하플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만으로 돌아가는 자체 생태계를 시범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컨소시엄이 처음으로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해 더 많은 업체가 참여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먼저 각 차량 정보를 확인하고 추적하는 일이나 차량 공유 서비스, 자동차 산업 안에서 이뤄지는 상거래, 무인 자동차와 유인 자동차가 도로를 같이 쓰는 데 필요한 데이터 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각각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프로젝트 형식으로 팀을 꾸려 연구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의 원죄

모비는 자동차와 관련해 쌓이는 수많은 데이터가 가치가 높으며,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자동차 관련 업계가 이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겠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자동차 업계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힘을 모아 내놓은 첫 번째 대응이기도 하다.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보자면, 데이터의 관리 권한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테크 대기업들의 손에 수많은 데이터가 쌓이면서 사실상 데이터 독점 상태가 발생했고, 이는 인터넷 회사들의 배만 계속 불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코인데스크의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MIT의 마이클 케이시(Michael J. Casey)가 바로 "인터넷의 원죄"라고 지칭한 현상이 자동차 업계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애플과 구글, 아마존은 자동차 업계를 데이터를 둘러싸고 필사적인 싸움이 벌어질 곳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비는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권한이 집중된 중앙에서 관리하지 않고도 데이터를 관리하고 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오히려 주목했다. 게다가 이 데이터들은 온 사회가 공유할 때 도로를 더 안전하게 가꾸고 교통 체증을 해소하는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쓸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도 하다. 밸린저도 코인데스크에 눈독을 들이는 이들이 꽤 많은 데이터라는 점을 강조했다.

누구나 이 데이터를 원한다. 애플은 이미 카플레이(CarPlay)를 통해 아이폰 등 애플 기기와 차량을 연동하려 하고 있고, 아마존도 차에 알렉사(Alexa)를 심으려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도 마찬가지 차량용 연동 프로그램이 있고, 구글도 마찬가지다. (TV가 1세대, 인터넷이 2세대, 모바일 기기가 3세대 화면이라면) 차량은 4세대 화면으로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분야다. 누구든 승자가 되는 업체에는 수조 달러 시장이 열릴 것이다.

밸린저는 이밖에도 데이터에 관한 수많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장 차 안에서 모이는 데이터만 해도 그 종류와 가치가 상당하다. 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평균 2시간가량을 차 안에서 보낸다. 갈수록 인터넷에 연결된 채 운전하는 일이 많아진다. 지도 앱을 켜고 경로를 안내받으며 운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데이터의 소유권을 명확히 규정할 수만 있다면, 그 데이터를 만든 사람이 데이터를 사용하거나 거래하는 데 최종 권한을 가지게 할 수 있다. 데이터의 주인을 명확히 가려내는 작업인 셈인데, 그 주인은 운전자 개인이 될 수도 있고 영업용 차량을 여러 대 운영하는 사업자일 수도 있으며, 도시 전체의 신호 체계를 관리하는 시 정부 교통 당국일 수도 있다."

밸린저는 말했다.

급증한 차량 센서 데이터

모비가 분산원장 기술을 통해 관리하고 활용하려는 또 다른 데이터는 바로 차량 센서 데이터인데, 이 데이터는 이제 누구나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만큼 흔해졌다. 즉, 차량 한 대에만 해도 차 안팎에 달린 각종 센서가 주변 상황을 끊임없이 확인해 기록으로 남기기 때문이다. 현재 네트워크에 연결된 차량 한 대가 한 시간 만에 25GB 용량의 센서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미래의 자동차는 빛을 정확히 감지하는 라이더(LIDAR) 기능 등을 활용해 지금보다 훨씬 큰 센서 데이터를 축적할 것이다.

"이렇게 정교한 센서가 많아지면, 차들이 생성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기에 5G 네트워크도 힘이 달릴지 모른다. 누군가의 집 현관문에 로봇으로 물건을 배달하는데, 그 경로와 배달 과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거기에 데이터가 얼마나 많이 들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실시간 날씨 센서, (자율주행) 차량끼리 경로를 공유하고 각자 어느 길로 가면 서로 더 빨리 가게 될 수 있을지 협력하는 데 필요한 네트워크, 또 배기가스 배출권이나 대기오염 부담금, 연료비 등을 자동으로 계산해 부과하는 기능 등 자동차에 기술을 접목해 구현할 수 있는 일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결국은 데이터 하나하나를 제대로 모아 관리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기만 한다면 무엇보다 도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전해질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에 관한 데이터와 기술은 분명 구글이나 테슬라가 한참을 앞서 있다. 하지만 밸린저는 온갖 돌발 상황이 도사리고 있는 도로에서 안전하게 운행하는 무인자동차를 개발해 선보이기까지 가야 할 길이 정말 멀다고 지적한다. 당장 차량 정체가 극심한 출퇴근 시간에 도심을 지나가는 일이나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가운데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일만 해도 아직은 자율주행자동차에 상당히 버거운 과제다.

블록체인 기술이 바로 이 지점에서도 꽤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토요타 연구소에서 일하던 시절 밸린저는 빅체인디비(BigChainDB)라는 스타트업과 함께 차량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기록함으로써 각 데이터의 소유권을 밝힌 뒤 이 데이터를 자동차회사끼리 공유해 머신러닝 알고리듬을 훈련하는 데 활용하는 프로젝트의 개념증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밸린저는 이 프로젝트를 해보고 난 뒤 실제 도로에서 제대로 운행할 수 있는 안전한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들어내려면 반드시 데이터를 공유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 회사는 절대로 그 많은 데이터를 홀로 확보할 수 없다. 그러려면 엄청난 시간과 품이 든다. 사실 이미 데이터는 지금 이 순간도 어마어마하게 쌓이고 있다. 단지 누구도 앞장서서 이를 공유하고 같이 써보자고 제안하지 않았을 뿐이다. 누군가 먼저 이런 제안을 했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졌다면, 여전히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지는 획기적으로 안전한 도로가 이미 현실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에 발표한 모비 컨소시엄 회원사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액센추어(Accenture), 아이오이 니사이 도와 보험(Aioi Nissay Dowa Insurance Services USA), 빅체인디비(BigChainDB), BMW, 대시라이드(Dashride), 디온 디지털 AG(Deon Digital AG), 크로니클드(Chronicled), 콘텍스트랩스(ContextLabs), 크립토 밸리 협회(Crypto Valley Association), 폼(Foam), 제네럴모터스(General Motors), 하이퍼레저(Hyperledger), IBM, 이오타(IOTA), 모션워크(MotionWerk), 누사이퍼(NuCypher), 오큰 이노베이션(Oaken Innovation), 오션 프로토콜(Ocean Protocol), 르노(Renault), 시프트(Shift), 스페리컬 애널리틱스(Spherical Analytics), 사물인터넷 협회(Trusted Internet of Things Alliance), 바실리(Vasily), 자인(Xain), 그리고 ZF Friedrichshafen AG.

번역: 뉴스페퍼민트

Ian Allison 이안 앨리슨 기자는 코인데스크에 합류하기 전 와 에서 핀테크 분야를 담당했다. 2017년 스테이트 스트리트 데이터 혁신 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한 앨리슨 기자는 DAO 토큰을 소량 구매했었지만, 이를 회수하지는 않았다. 앨리슨 기자는 현재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프로젝트 어디에도 투자한 자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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