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y, token economy

마이클 케이시는 코인데스크 자문위원회 위원장이자, MIT 디지털 화폐 연구의 블록체인 연구 선임 고문이다. ‘Token Economy’는 마이클 케이시의 고정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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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지지자들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따로 승인이 필요 없는 퍼블릭 블록체인의 우수성을 늘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블록체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만 만나면 늘 합의를 기반으로 거래 내용을 기록하고, 이 기록은 누구도 위조하거나 변조할 수 없으며, 그래서 국가를 비롯한 권력 기관의 감시와 간섭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장부를 개발해 곳곳에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설명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이렇게 흠잡을 데 없어 보이는 블록체인은 현실에서 생각처럼 완벽하게 구현되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비트코인이, 이제는 다른 퍼블릭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한 암호화폐들마저 점점 가치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권력이 분산화되기는커녕 중앙으로 집중됐다는 주장이 끝없이 제기되고 있다.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으로 ASIC(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s) 채굴기를 꼽는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채굴에 필요한 연산을 대단히 빠른 속도로 해낼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한 주문형 반도체 ASIC은 공장식 채굴 업체들이 사용하기에 좋을 만큼 어마어마한 연산 속도를 자랑하며 값도 꽤 비싸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와 암호화폐 커뮤니티가 ASIC에 대한 대처 방안을 놓고 곳곳에서 갈라지고 대립할 만큼 ASIC이 미친 영향력은 컸다. ASIC이 압도적인 속도로 채굴 과정을 장악해 암호화폐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코드를 새로 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블록체인이 근본적으로 풀어야 할 또 다른 문제, 바로 블록체인 전반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과정에 관한 문제도 제기됐다.

이른바 순수한 암호화폐 지지자들이 ASIC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 이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해 읽는 여러분은 개인용 컴퓨터에 아무리 괜찮은 그래픽 카드를 장착한다고 해도 채굴 경쟁에서 ASIC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공장식으로 대규모 연산을 최대한 빨리 처리해 비트코인을 채굴해가는 ASIC은 일종의 무법자나 다름없다. 평범한 개인이 배제되는 생태계는 권력의 집중화, 일원화를 피할 수 없다고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지적한다.

게다가 ASIC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업체 비트메인(Bitmain)에 채굴 과정 전반이 다 종속되어버리면,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와 거리가 먼 제삼자에게 블록체인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휘둘릴 수도 있다. 물론 모두가 ASIC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그 정도 값은 치러야만 일종의 가격 장벽이 만들어져 잠재적인 "51% 공격"으로부터 블록체인을 지킬 수 있게 되고 보안이 높아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ASIC은 암호화폐를 통한 탈중앙화의 꿈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다. 여러 알트코인을 만든 이들이 부랴부랴 ASIC의 채굴 독점 위협으로부터 알트코인을 지키는 장치를 만든 것도 그만큼 ASIC이 알트코인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기 처방일 뿐

이들은 "ASIC 채굴에도 끄떡없는" 작업증명 알고리듬을 만들어냈다. 기본적으로 해시 함수를 풀어내면 보상으로 암호화폐를 지급하던 기존 방식에 메모리를 기반으로 한 연산 과제를 새로 더한 것이다. 이렇게 조금 더 복잡하고 한 가지만 파서는 안 되는 다양한 작업을 요구하면 '하나만 잘 하는' ASIC 채굴기는 쓸모없어지고, 칩 제조사도 ASIC에 투자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기껏해야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칩 제조사들이 바뀐 코드에 맞춰 여러 가지 작업을 다 해낼 수 있는 ASIC 채굴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황에 맞춰 재빨리 진화하는 ASIC 채굴기 때문에 블록체인 커뮤니티는 갈수록 더욱 분열되고 있다. ASIC의 등장으로 구식이 되어버린 GPU(그래픽 처리장치) 채굴기를 가지고 있는 채굴자들은 당연히 새로운 ASIC 채굴기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코드를 짜 하드포크를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ASIC 채굴기에 투자한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외면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맞선다. 개발자들도 ASIC은 블록체인의 가치에 어긋난다며 반대하는 쪽과 네트워크 전체의 연산 능력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할 기술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찬성하는 쪽으로 갈렸다.

결국, 이 문제도 지배구조 문제와 연결된다.

지금은 각 암호화폐 커뮤니티가 자체적으로 ASIC 채굴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치열하게 논의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다. ASIC이든 다른 채굴기든 더 빠른 채굴 방식이 '우리가 들고 있는 코인'에 도입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게 코드를 바꿔 하드포크를 단행하는 쪽으로 대체로 의견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은 이미 그런 식으로 핵심 코드(Core code)를 바꾸기에 너무 늦었다. 커뮤니티 안에서 탈중앙화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며 블록 크기를 늘리는 문제에 거세게 반대하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 이미 ASIC 채굴에 막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이들이 많아 ASIC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코드를 비트코인에 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제트캐시나 이더리움 등 (비트코인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도 곧 ASIC 채굴 방식이 도입된다는 소식만으로도 커뮤니티가 양분돼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내용은 코인데스크 레이첼 로즈 오리어리 기자가 ASIC 반대파의 저항: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라는 기사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다.

참고할 만한 사례: 버트코인(Vertcoin)

버트코인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보편적으로 적용할 만한 해법에 힌트를 얻을지도 모른다. 버트코인 커뮤니티는 GPU와 ASIC 채굴기 가운데 그저 GPU의 손을 들어주는 방식으로 작업증명 알고리듬을 고치는 데만 몰두하지 않았다. 오히려 커뮤니티가 더욱 신경 쓴 부분은 언젠가 (버트코인 채굴용) ASIC 채굴기가 등장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책을 논의한 뒤 공동의 약속으로 만들어 공유한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 효과가 분명히 나타났다고 봐야 할 것 같다. ASIC 개발자들은 다음번에 적용할 암호화폐를 고려할 때 ASIC 채굴기에 대한 대책을 이미 마련해둔 암호화폐는 일단 뒤로 미룰 가능성이 크다. 특히 버트코인이 ASIC 채굴 문제와는 무관한 사유로 앞서 두 차례 성공적으로 하드포크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버트코인 커뮤니티의 ASIC 대책에 신빙성을 더한다.

무엇보다도 버트코인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대신 효과적인 지배구조를 통해 문제를 풀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다시 말해 그저 코드 몇 줄 고쳐서 ASIC의 파도를 넘으려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기술적인 것보다, 코드보다 필요한 요소는 바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까지 GPU 채굴기를 무리 없이 사용하고 있는 암호화폐 커뮤니티 가운데 버트코인은 단연 돋보인다. 버트코인의 수석개발자 제임스 러브조이는 MIT에서 ASIC과 관련해 시아코인(siacoin)의 수석개발자 데이비드 보릭과 토론을 벌였을 때 이를 잘 설명하기도 했다.

일단 GPU는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24시간 내내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것 말고는 쓸모가 없는 ASIC과 달리 다른 데도 쓰임새가 있다. 게임 프로그램을 돌리는 데 쓸 수도 있고, (ASIC처럼 특정 암호화폐에만 쓸 수 있게 개발된 것이 아니므로) 다른 코인을 채굴하는 데도 쓸 수 있는 등 지금 하는 채굴이 아니어도 쓸모가 있다는 점에서 비용 대비 효용이 더 높다.

이에 보릭은 GPU도 완벽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그는 GPU가 내세우는 장점이 계속 발현된다면 결국, 그 이익을 독점하려는 채굴자 혹은 채굴 기업이 등장할 수밖에 없고, 이를 GPU 채굴 방식 자체로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계약

러브조이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GPU 채굴기의 한 형태로 "범용 하드웨어(generalized commodity hardware)"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ASIC 채굴기를 개발하는 비트메인이 그랬듯 사실 GPU 제조도 엔비디아(Nvidia)라는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무척 높다. 결국, 한 회사로 자원이 모이고 자연스럽게 독점적인 지위가 생기는 게 필연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한번 지배구조가 중요해진다.

한 가지 극단적인 방법은 정부가 개입해 반독점 규제를 집행하듯 시장지배력이 어느 정도 이상 되는 기업을 억누르고 필요하면 분사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라는 철저히 중앙집권적인 권력이 나서서 탈중앙화를 기치로 내건 암호화폐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모순이므로, 이는 가능한 해결책이 아니다. 커뮤니티들이 내부적인 규제나 시장 구조를 자체적으로 논의하고 제정해 이를 스스로 규율해나가는 방법이 더 낫다.

버트코인의 사례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예를 들어 채굴자와 이용자들이 모은 투자금을 오픈소스 기준에 따르거나 범용 하드웨어의 특징을 갖춘 채굴기를 만드는 데 쓰기로 의견을 모은 뒤 합의한 내용에 따라 이를 집행하는 것이다.

결국, 분산화된 암호화폐 채굴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블록체인상의 소프트웨어 이용 규칙도 정확히 지켜져야 하지만, 동시에 블록체인 바깥에서, 즉 참여한 사람들끼리 여러 가지 원칙에 합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프로토콜 단계뿐 아니라 사람이라는 층위도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는 뜻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Michael J Casey Michael J. Casey is CoinDesk's chief content officer. Previously, Casey was the CEO of Streambed Media, a company he cofounded to develop provenance data for digital content. He was also a senior advisor at MIT Media Labs's Digital Currency Initiative and a senior lecturer at 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 Prior to joining MIT, Casey spent 18 years at The Wall Street Journal, where his last position was as a senior columnist covering global economic affairs. Casey has authored five books, including "The Age of Cryptocurrency: How Bitcoin and Digital Money are Challenging the Global Economic Order" and "The Truth Machine: The Blockchain and the Future of Everything," both co-authored with Paul Vigna. Upon joining CoinDesk full time, Casey resigned from a variety of paid advisory positions. He maintains unpaid posts as an advisor to not-for-profit organizations, including MIT Media Lab's Digital Currency Initiative and The Deep Trust Alliance. He is a shareholder and non-executive chairman of Streambed Media. Casey owns a small amount of bitc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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