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기업이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은 매우 막강하다. 그들과 맞서서 이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약점이 있다. 거대 기업의 유일한 약점은 수익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거대한 초국가 기업도 수익을 낼 수 없게 된 상황을 버텨낼 수는 없다. 그래서 거대 기업과의 경쟁에서 작은 집단들이나 개인들의 연대가 쓸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시장’을 흔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영업장에 난입하여 영업을 방해하는 행패를 부리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 행패없이 거대 기업을 좌절시킨 사례를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바로 ‘오픈소스 운동’이다. 오픈소스 운동 초기에 이들이 공룡 기업 마이크로소프트를 꺾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오픈소스 운동은 열정적인 몇몇 개인들이 시작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보자. 성대한 승전 의식은 없었지만, 오픈소스 리눅스는 x86 서버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데스크탑 시장은 사실상 개방형 표준인 웹이 상당 부분 가져가 버렸다. 물론 그 결과 더 무서운 상대인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을 키웠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승리가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픈소스 운동은 거대 기업이 소프트웨어 산업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것에 맞서기 위해 다른 거대 기업과의 동행을 선택했다. 독점 기업을 무너뜨리기 위해 반군을 지원하는 다른 기업들과 전략적 동맹을 맺은 것이다.


그러나 독점 기업을 실제로 끌어내린 것이 연합군의 반격이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오히려 ‘시장의 중심’이 독점 기업으로부터 멀어지고 연합군의 점령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온라인 컴퓨팅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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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컴퓨팅 운동의 보급 기지로서의 공개 블록체인 컴퓨팅


당연히 블록체인은 여러 측면에서 오픈소스 운동과 비교될 수 있다. 오픈소스 운동이 컴퓨팅의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한 탈집중화 반독점 캠페인이라면,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탈집중화 반독점 캠페인이다. 그런 정치적 맥락을 반영하면 블록체인의 또다른 명칭은 ‘오픈 컴퓨팅 운동’이다.


동맹을 맺은 다른 거대 기업의 보급에 의존해 펼쳐졌던 오픈소스 운동과 달리, 블록체인은 암호화폐를 통해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는 사업적, 정치적 지지자들을 ‘오픈 컴퓨팅 운동’ 주변으로 빠르게 끌어들이고 있다. 과거 오픈소스 운동’이 일부 개발자들의 운동이었던 것과 달리, 블록체인은 대중들을 ‘오픈 컴퓨팅 운동’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대중이 운동의 한복판으로 진입하면 그 안에 있는 개발자들의 확신은 배가되며, 대중이 제공하는 에너지가 운동을 지켜낸다.


오픈 컴퓨팅 운동이라는 명칭은 여러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먼저 ‘오픈소스 운동’을 ‘오픈 컴퓨팅 운동’의 일부이자 선조로 보는 시각을 담고 있다. 또한 탈집중화 반독점화의 대상을 ‘소프트웨어’에서 ‘데이터’와 ‘서비스’, 심지어 ‘하드웨어’로 확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시에 공개 블록체인은 ‘오픈 컴퓨팅 운동’의 유일한 길은 아닐지라도, 여러 면에서 ‘오픈 컴퓨팅 운동’에 강력한 기반을 제공한다.


먼저 블록체인은 집중형 컴퓨팅의 반격으로 컴퓨팅의 역사 뒷편으로 숨어버린 P2P를 복권시켰다. P2P는 ‘저작권 침해’, ‘음란물의 온상’과 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고, 블록체인을 통해 일면식도 없는 개인들의 연대를 통한 컴퓨팅 자원의 확보를 위한 인프라로 활용될 기회를 얻었다.


그 다음으로 블록체인은 암호화폐를 통해 집중화 또는 초집중화 컴퓨팅을 지향하는 초국가 기업의 지배력을 떠받치는 생태계 중 ‘약한 고리’를 정통으로 겨누고 있다.


사실 초국가 기업들이 구축한 대용량 초저비용 컴퓨팅 아키텍처는 트랜잭션 비용을 극단적으로 낮추어 높은 트랜잭션 비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는 금융업과 같은 낡은 산업을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혁신 역량을 이미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과 손을 잡았다. 자신들이 전지구적으로 영향력과 수익원을 확장할 수 있는 파트너로 삼은 것이다.


블록체인은 바로 그들의 파트너를 공격하고 있다. 초국가기업의 전지구적 영향력을 떠받치고 있는 요소들 중, 가장 낡고 가장 기생적인 ‘중계기관’인 금융 시스템을 공략함으로써 초국가 기업들의 지배력에 변화가 생길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끝으로 블록체인은 경쟁자인 초국가 기업들의 ‘대용량 초저비용 데이터 컴퓨팅’에 맞설 수 있는 컴퓨팅 아키텍처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 스토리지’와 이를 다양한 응용소프트웨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오픈 컴퓨팅 데이터베이스’의 기본 모델을 제시했다.


앞으로 블록체인은 ‘오픈 컴퓨팅’에서 어떻게 더 큰 용량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다양한 소프트웨어들이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소프트웨어의 성격에 따라 ‘분화된 데이터베이스 모델’을 제공할 것인가를 과제로 안고 있다.


그 과정에 기여할 사람들은 지금 ICO라는 창업 자본 시장 메카니즘을 통해 빠르게 블록체인 진영에 합류하고 있고, 이더리움과 같은 플랫폼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안에서 최소 단위 인스트럭션인 ‘스마트 계약’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풀어 나가고 있다.


지금 비트코인이 투기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문제이긴 하지만, 혁명가로서의 블록체인은 확실하게 대중들에게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 투기에 휘말려 블록체인의 근처에 도달한 대중들은 조만간 궁금해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블록체인으로 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그때 블록체인은 ‘완성된’ 혹은 ‘완성의 방향이 명확히 보이는’ 오픈 컴퓨팅 플랫폼이 되어 있어야 한다.


개인들의 연대로 구성된 하드웨어와 대용량 스토리지, 정적 데이터와 동적 데이터, 초고속 트랜잭션, 그래프형 데이터베이스와 같이 용도별로 분화된 대용량 데이터베이스와 그 안에 새로운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기다리는 공유 데이터들, 그리고 엄청난 숫자의 스타트업들이 가득한, 진정한 풀 스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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