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코인은 지난해 5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암호화폐 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를 통해 당시 시세 약 157억원어치 비트코인을 모금한 한국 1호 ICO 블록체인 프로젝트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정부는 ICO를 통한 자금조달을 전면 금지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현재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을 준비중인 동국대 박성준 교수(블록체인연구센터장)는 최근 정부의 금지 방침에도 불구하고 올해 안에 국내에서 ICO를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는 태도다.

지난주 금요일 보스코인 최고전략책임자 전명산 이사와 박 교수가 판사, 검사들 앞에 섰다. 형사법정은 아니었다. 이정엽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주도해 만든 블록체인법학회 창립총회 자리였다. 여러 현직 판사, 검사, 변호사들과 함께 전 이사와 박 교수도 학회 정회원이자 연구자로 참여했다. 학회는 현행 법체계가 사실상 눈을 감고 있는 블록체인과 관련된 다양한 법률적 쟁점을 연구과제로 발표했다.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규율, 암호화폐를 비롯한 블록체인 상 경제 거래에 대한 과세, 암호화폐를 이용한 사기 등과 관련한 형사법적 쟁점, 블록체인의 핵심 요소인 스마트계약의 민사법적 쟁점 등등.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대회의실에서 블록체인법학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오른쪽부터 이정엽 대전지법 부장판사, 박성준 동국대 교수, 서동기 대전지법 관리위원, 홍은표 대법 재판연구관, 김철환 한양대 겸임교수, 전명산 보스코인 이사. 사진 김병철 기자

 

현직 판검사들이 정부가 사실상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ICO 프로젝트 관계자들과 나란히 앉아 정부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연구과제를 발표하는 모습은 너무 신선해서 어색해 보일 지경이었다. 대법원이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하고, 검찰이 청와대의 하명수사를 열심히 받들던 게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이 어색한 느낌은 홍은표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교과서적인 발언으로 정리됐다.

“헌법에는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예외적으로 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 원칙이라도 잘 지켜달라는 거에요. 법이 없으면 다 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블록체인과 관련된) 법이 없는데 현실은 안 그렇죠.”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고는 하지만, 정작 블록체인을 이용한 새로운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는 기업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코인, 토큰 등 암호화폐 혹은 암호화 자산, ICO,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해서는 지난해 가을 “ICO 금지”를 구두 경고한 이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암호화폐와 거래소에 대해 규제를 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드는 순간 국민들이 ‘암호화폐 합법화’로 받아들여 또다시 투기광풍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관료들의 속내다. 무분별한 투기광풍과 사기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충정이야 이해하겠으나, 국민들을 서너 살 난 아이 취급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네 살 바기 쌍둥이들을 키우고 있는 처지라 틈틈이 육아서적을 찾아 읽고 있다. 어린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무턱대고 윽박지르는 게 아니라 일관된 원칙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게 여러 육아서적들의 공통된 가르침이다. 하물며 관료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어설픈 부모 노릇을 해서야 되겠는가.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 13일 블록체인 기술 육성을 포함한 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을 발표했다. 민간은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 혁신성장을 주도하고, 정부는 개별 기업이 할 수 없는 인프라 구축을 한다는 것이 큰 뼈대다. 법과 제도야 말로 국가가 제공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다. 정부가 현직 판검사들이 많은 부담을 무릅쓰고 만든 블록체인법학회와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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