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릭 부테린. 사진=한겨레 자료사진

 

무임승차자는 어디에나 있다. 이달 초 이더리움의 창립자 비탈릭 부테린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원 글렌 웨일,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박사 조이 히트지그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암호화폐 생태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무임승차자들은 생태계 전체에 문제를 일으킨다.

논문에서 지적하는 무임승차자란 공공재의 부족을 틈타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나 기업이다. 이러한 무임승차자가 많아질수록 사회 전체에 필요한 재화는 더욱 부족해진다. 이는 비단 암호화폐 세계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저자들은 이러한 행태가 특히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에 어떻게 걸림돌로 작용했는지에 먼저 주목했다.

현재 대부분 암호화폐 개발팀은 언제 변할지 모르는 창립자들의 선의에 기댄 기부와 ICO에 자금 조달을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논문은 대신 “공공재가 스스로 균형점에 맞춰 공급되는 생태계”를 꾸리는 데 필요한 새로운 재원 조달 방식과 그 인센티브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자유 급진주의: 커뮤니티 간 중립 사회를 위한 원칙(Liberal Radicalism: Formal Rules for a Society Neutral among Communities)”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논문은 무임승차 문제를 (코드로 구현한) 시스템을 통해 예방하는 동시에 공공재의 공급, 유지에 필요한 자금을 효과적으로 조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자유 급진주의 메커니즘은 제곱투표(Quadratic Voting) 원리와 비슷하다. 웨일은 최근 저서 <급진적 시장(Radical Markets)>에서 제곱투표의 지분 기반 투표 형식을 자세히 설파했다. 제곱투표에서는 참여자들이 암호화폐 토큰으로 특정 관심 이슈에 투표할 수 있는 반면, 자유 급진주의는 같은 개념을 각 커뮤니티가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암호화폐, 저널리즘 등을 통해 어떻게 공공재를 제공하며 기여하는지로 확장한다. 또한, 참여자의 수와 현재 사안에 모이는 관심에 비례해 해당 프로젝트에 돈과 자원이 더 돌아간다.

“각 개인은 공공재를 공급하는 프로젝트가 자신에게 가치가 있는만큼 그 재화를 생산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무임승차 불가) 각 프로젝트가 받는 전체 투자 혹은 기부금은 각 개인이 기여한 바의 제곱근의 합을 다시 제곱한 값에 비례한다.”

저자들은 앞으로 암호화폐 커뮤니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바탕이 되는 아주 중요한 시험을 해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러 프로젝트에는 자유 급진주의 메커니즘을 지역 단위 프로젝트에 적용하거나 캠페인 모금에 활용하는 것도 포함된다.

논문의 공동 저자 히트지그는 다양한 단체들이 이미 새로운 메커니즘에 관심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벌써 기술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암호화폐 커뮤니티 여섯 곳을 포함해 “다양한 혁신가, 자선사업가들”도 포함된다고 히트지그는 말했다.

머지않아 우리가 제안한 방식을 활용한 실험이 곳곳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자유주의의 위기


웨일은 저서 <급진적 시장>을 출판한 뒤 줄곧 부테린과 협업하며 함께 연구하고 논문을 썼다.

두 사람은 지난 5월에 함께 쓴 블로그 글에서도 이미 “시장과 기술을 활용하여 모든 분야에서 급진적인 권력의 탈중앙화를 달성하고, 권력에 의존하던 것을 규칙에 의존하는 것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고 밝혔다.

히트지그는 협력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으로 점점 커지는 정치적 긴장을 해결하는 데 기술 분야의 통찰력을 활용하는 것을 꼽았다.

“성공한 아이디어들은 아래서 위로 올라간다. 우리는 실제 세상에서 부딪히는 각각의 문제에 해법을 제안하고, 이러한 제안들이 궁극적으로 현대 자유주의의 위기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정치사상에 어떻게 들어맞는지를 증명한다.”

저자들은 자유주의를 “일상생활과 삶의 가치를 정하는 문제에서 권위에 저항하며 필요한 중립을 지키는 것”으로 정의하며, 자유주의야말로 계몽 시대의 바탕을 이루는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히트지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 자유주의의 위기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잘못된 만남에서 비롯됐다”고 일갈한다. 두 가치의 결합으로 나타난 현재의 정치사상은 “융통성 없고 비효율적이며 근본적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라는 것이다.

시인이자 경제학자로 제곱투표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한 히트지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잘못된 만남에서 비롯된 긴장과 마찰로 인해 현재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점점 더 동력을 잃어가며 사람들에게서 외면받고 있다. 권위주의 포퓰리즘이 좌우를 막론하고 득세하는 원인도 결국 여기에 있다.

그래서 논문이 궁극적으로 모색하는 해법도 이 문제를 해결해 모두가 더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회적 합치


자유 급진주의가 제시하는 참여자의 기여와 관심에 비례해 돈과 자원이 투입되는 메커니즘 외에도 저자들은 암호화폐 생태계에 상당한 이득을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하는 특징을 몇 가지 더 소개했다. 예를 들어 소액 기부금에는 보조금의 비중을 크게 늘리고, 고액 기부금에는 보조금을 제공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저자들은 “(기존 경제학이 가정한) 이기적이고 독립적이며 개인적인 가치와 준선형 효용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이 모여 있는 표준과 같은 구조에서는 우리 메커니즘을 통해 공공재가 알아서 필요한 만큼 공급되는 효용 최적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논문은 이 방식이 이더리움, 제트캐시는 물론이고 네트워크 개발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 비영리 단체의 캠페인과 기부에 의존하는 여러 블록체인 프로젝트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논문은 우선 현재 암호화폐 연구나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필요한 보조금을 타는 절차가 대체로 중앙화돼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른바 연구 지원 신청서를 제출하면 이를 심사하고 결정을 내리는 권한은 비교적 소수의 개인에 집중돼 있다 보니, 자연히 공동체가 진짜로 원하는 연구는 뒷전으로 밀리고 나아가 권력의 탈중앙화를 이룩한다는 블록체인 본연의 원칙마저 지키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반면 자유 급진주의는 집단지성을 더 잘 활용하여 암호화폐 지지자들의 정신에 입각한 모금 방식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단지 복잡한 수학이 아니다


기술과 경제학, 정치학 등 다방면의 과학을 결합하는 것이 다소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히트지그는 이 결합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사회과학과 철학, 기술 간의 협력이 더 보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사회를 바꿔놓고 있다. 경제학자, 정치학자, 철학자들은 이런 변화로부터 발생하는 잠재적인 경제적, 정치적 결과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이론과 개념적인 도구를 가지고 있고, 사회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쪽으로 기술을 사용하도록 이끌어줄 수 있다.”

그러나 자유 급진주의는 즉시 배포되어 폭넓게 채택될 수 있는 사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첫째로 이 메커니즘은 거친 무법지대 같은 실제 환경에서 시험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공격이나 급변하는 경제에 취약할 수 있다. 둘째로 이 메커니즘은 신분 증명 시스템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암호화폐 세상에서 많은 사람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익명성과 공존할 수 없다. 또한, 특정 종류의 투표 공격을 보면 자유 급진주의는 신뢰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이들만 참여할 수 있는 생태계가 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바로 그 점에서 보안이 약화될 수도 있다.

히트지그는 기술을 더 보편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예술가나 디자이너들과 협업해서 같은 방식을 다르게 표현해볼 수도 있다.

“사실 이 메커니즘이 처음에는 난해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자유 급진주의가 현실에 적용되지 못하고 소수만 이해하는 추상적인 관념으로 남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히트지그는 이번에 펴낸 논문을 통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이 문제를 생각해보고 자유 급진주의에 살을 붙여 나가거나 자신들의 솔루션으로 직접 이 방식을 실험해보기를 희망하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 협력이 생겨나 자유주의 질서의 위기를 해결할 독창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 매우 기쁠 것 같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저작권자 ©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