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O의 시대는 끝났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말이다. 지난달 초 대중 투자(crowd investing) 플랫폼 리퍼블릭(Republic)이 뉴욕 맨해튼에서 주최한 암호화폐 행사 리퍼블리콘(RepubliCon)의 첫 번째 패널 토론 주제도 이런 세태를 반영한 듯 "주요 토큰 판매의 종언(The Death of the Main Sale)"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암호화폐 관계자들은 새로운 투자 유치 방법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던 암호화폐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에 대한 열기가 식어버린 상황에 관해 여러 의견을 내놓았다.

실제로 코인데스크의 ICO 데이터를 보면 지난 7월은 ICO로 모은 금액이 1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투자 측면에서 저조한 달이었다. 다만 조금 더 장기적으로 연간 데이터를 보면 여전히 ICO는 2018년에 각종 신기록을 새로 썼다. 모두가 지난 2017년을 투기에 가까운 비현실적인 기대로 가득 찬 시장 탓에 ICO에 돈이 엄청나게 몰린 해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올해가 더 심했다. 2017년 ICO로 모은 총 투자 금액을 이미 4월에 넘어섰기 때문이다.

리퍼블릭의 제드 해폰은 토론에 참여한 이들을 소개하며 "주요 토큰 판매란 우리가 모두 지난해 목도한 대규모 공개 ICO를 뜻한다"고 말했다. 보안 토큰 회사 케이던스(Cadence)의 넬슨 추는 기업가들과 각종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마침내 규제의 벽에 부딪혔다고 평가했다.

"ICO가 잦아든 이유는 따로 찾을 필요도 없이 명백하다. 회사들이 생각지 못했던 규제에 가로막혀 규정을 어긴 데 대해 제재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토론에 참여한 이들은 아주 기본적인 아이디어에 불과한 백서만 가지고도 엄청난 돈을 어렵지 않게 모을 수 있는, 이른바 ICO의 열풍으로 기억될 시대는 저물었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EOS 블록체인을 만들고 출범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 블록원 재단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리 슈나이더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ICO로 모인 어마어마한 돈이 독이 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무얼 할지도 모르는데 어쩌다 보니 5천만 달러가 쉽게 모여버리면 그 돈을 정말 필요한 데 잘 쓰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청중 사이에서 웃음과 탄식이 섞여 나왔는데, 블록원 재단은 1년 가까이 계속된 상시 토큰 판매를 통해 40억 달러 가까운 돈을 모았기 때문이다. 슈나이더도 청중들이 보인 반응의 의미를 이해한 듯 "블록원 재단은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치밀한 분석을 통해 분명한 계획을 세워뒀다."라고 강조했다.

좀 더 상황을 낙관하는 의견도 있었다. 리퍼블릭의 COO 캐롤라인 호프만은 주요 토큰 판매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대신 기업가들과 회사들이 좀 더 조심스럽고 사려 깊게 접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블록체인 기반 자산관리 회사 디스트리뷰티드 글로벌(Distributed Global)의 공동 창업자 라이언 알프레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바탕으로 투자를 받는 방식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진화하고 발전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암호화폐와 관련해 우리가 처음 투자를 할 때만 해도 토큰을 판매해 투자금을 모은다는 ICO는 그 개념도 명확하지 않았었다. 그만큼 투자 방식이 빠르게, 끊임없이 발전한 것이다.

 

사업 계획에 책임지라


토론에 참여한 이들은 토큰을 출시하는 암호화폐 프로젝트 창립자들에게 갈수록 약속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라는 압박이 가중되리라는 데 동의했다.

실제로 프로젝트 투자자들의 요구사항도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는데, 특히 언제까지 어떤 수준의 제품을 내놓아야 하는지가 분명하게 담겨있지 않으면 투자받기 어려워지고 있다. 실제로 블록스택(Blockstack)이 진행한 ICO에 이런 규정이 명문화되기도 했으며,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이 주창한 탈중앙화 자율 ICO 모델(DAICO)에 관한 논의도 토론에 등장했다. DAICO 모델이란 토큰을 팔아 모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투자자들의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하는 방식이다.

테크레트 벤처스(Techlete Ventures)라는 블록체인을 준비하고 있는 스타트업의 랜디 먼디 대표는 코인데스크에 "거버넌스는 블록체인 산업을 떠받치는 근본적인 요소인데, 정작 ICO 과정에는 프로젝트 창립자들이 지키고 따를 만한 거버넌스가 없다"고 말했다. 먼디는 기본적으로 DAICO나 좀 더 단순한 원칙을 적용해 프로젝트 창립자들이 투자금을 나누어 지급하는 방식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리퍼블릭의 제휴 업체이기도 한 자산 실사 회사 클록워크(Clockwork)의 팻 자일카스도 먼디의 생각에 동의했다.

"미리 정한 기준을 달성해야만 투자금을 프로젝트에 지급할 수도 있고, 투자금의 액수를 토대로 프로젝트 창립자들이 어떤 기술을 언제 어디까지 완료하겠다고 미리 약속하고 개발에 착수하는 방법도 있다. 어느 쪽을 택하든 창립자가 받는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코인리스트(CoinList)의 조지아 퀸은 ICO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 가운데 오히려 전통적인 방식으로 투자금을 모으는 게 나았을 프로젝트가 많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디스트리뷰트 글로벌의 알프레드도 이 의견에 동의하며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투자를 유치하기 전에 먼저 하려는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이게 회사인지, 아니면 오픈소스 프로젝트인지 분명히 정해야 한다."

리퍼블리콘 행사에 참여한 거의 모든 사람이 암호화폐 업계에 종사하는 기업가라면 누구나 자기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투자받은 돈을 어떻게 쓸 계획인지 명확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ICO를 통해 돈을 모은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블록원 재단의 슈나이더는 이렇게 말했다.

투자할 때 어떤 점을 확인하고 투자를 결정해야 하는지 투자자들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변화의 흐름과 시장의 대응


이제는 투자자들도 ICO를 보는 안목이 좋아졌다. 실제 제품을 선보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프로젝트를 걸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해당 토큰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갈 길이 첩첩산중인데도 성급하게 내놓고 판매하기 시작한 토큰 가격은 시장에서의 거래가가 ICO나 합의 매매 가격보다 더 낮아지기도 한다.

토론에 참여한 애링턴 XRP 캐피털의 지오프리 아론 대표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투자자로서 좋은 회사만 만나려고 늘 애쓴다. 좋은 회사란 약속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회사를 뜻한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투자를 보류하거나 철회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띈다. ICO 가격보다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시장에서 더 싸게 거래될 것이 자명해 보이는 프로젝트들이 그런 대상이다."

ICO 관련 논의는 대개 미국 시장에 관한 분석과 의견을 위주로 진행됐고, 이어 미국 밖의 상황은 좀 다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예를 들어 케이던스의 넬슨 추는 아시아 시장만 해도 암호화폐 자체를 금지하거나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정부도 있지만, ICO를 둘러싼 열기는 여전히 식지 않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암호화폐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에서는 ICO를 실제로 엄격하게 규제하거나 단속한 적이 거의 없다. 여기에 문화적인 요인도 작용해 투자자들에게 암호화폐가 매력적인 자산으로 비치는 것 같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또한, 기업가가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많은 돈을 투자받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명제에도 동의했다. 알프레드는 투자자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ICO의 지형도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장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은 대개 1천만 달러 안 되는 돈을 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더리움 위치기반 서비스 폼(FOAM)이 그렇고, 라이브피어(Livepeer)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목표를 내걸고 가능한 한 많은 돈을 투자받아 몸집을 불리려는 시도 대신 이 프로젝트들은 재빨리 필요한 돈을 모아 이 돈을 필요한 곳에 곧바로 투입했다."

토큰 판매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투자 유치 전략이 자리를 잡았다고 보는 게 맞다는 설명이었다. 클록워크의 자일카스는 이렇게 말했다.

뒷받침하는 기술이나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일단 거창한 아이디어를 던져놓고 보는 식으로 해서는 갈수록 투자자를 설득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토큰 판매 자체가 죽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ICO를 둘러싼 허풍과 거품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진단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Brady Dale Brady Dale is a senior reporter at CoinDesk. He has worked for the site since October 2017 and lives in Brookl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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