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사태 10주년, 비트코인과 월스트리트가 부쩍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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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Floyd
David Floyd 2018년 9월24일 11:00
15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2008년 9월15일 파산 신청을 낸 뒤, 한 시민이 미국 뉴욕에 있는 이 은행의 본사 건물 앞에서 ‘다음 차례는 누구?’라고 쓴 팻말을 들고 서 있다. 사진=한겨레 자료사진

 

행크 폴슨 전 미국 재무장관은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사태를 “경제에 들이닥친 9·11 사태”라고 평했다.

158년 전통을 자랑하던 월스트리트의 터줏대감이었지만, 부도 난 모기지 부채가 가득 쌓이고 정부나 민간 부문의 구제도 받지 못하자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는 2008년 9월 15일 끝내 파산 신청을 했다.

그 후 며칠, 몇 주, 몇 달에 걸쳐 발생한 낙진은 세계 금융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릴 기세였고, 정부와 중앙은행은 은행과 다른 기업들에 수조 달러의 긴급 자금을 대출해줘야 했다. 1929년 이래 세계 금융 시스템이 맞이한 가장 큰 위기였다.

설상가상으로 정부 지원은 위기가 불어닥쳤는데도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빠짐없이 챙겨간 월스트리트 금융 기업의 임원들 때문에 의미가 퇴색되었고, 그 보너스의 돈줄이 된 세금을 꼬박꼬박 낸 수백만 명의 납세자들은 집을 잃게 되었다.

리먼이 파산하고 몇 달 후, 새로운 기술이 아무런 주목도 받지 않은 채 조용히 등장했다.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현재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기술이었다. 2008년 10월 31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개발자가 암호화폐 메일링 목록에 비트코인 백서를 돌렸다.

백서는 비트코인을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당사자 간에 온라인 결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순수 P2P 전자 현금”이라고 설명했다.

코넬대학교의 컴퓨터과학 교수이자 블록체인 연구가인 에민 건 사이러는 사토시가 리먼이 무너지기 전 수개월 혹은 수년간 프로토콜 작업을 해오다가 적절한 시기를 골라 백서를 세상에 선보였다고 분석한다.

사토시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영향을 받은 것은 확실하다. 비트코인의 첫 번째 블록(genesis block)에도 이것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이러는 2009년 1월 3일 자 <타임스 오브 런던> 머리기사였던 “재무장관, 은행에 두 번째 구제금융 임박(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이라는 문구를 예로 들었다. 이 문구는 바로 비트코인의 첫 번째 블록에도 삽입돼 있다.

비트코인이 점차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각 달랐지만, 많은 이들에게 비트코인이 신용 화폐의 대안으로 여겨진 건 분명해 보인다. 특히 당시 중앙은행이 화폐를 다시 마구 찍어내리라는 소문이 무성했고, 무리한 대출로 거의 붕괴하다시피 한 연준의 부분 지급 준비제도 때문에 기존 금융 시스템은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비트코인은 금융 기관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낳은 위기를 우회할 방법을 제시했다.

암호화폐로 처음으로 실제 제품을 사서 “비트코인 피자 가이”로도 알려진 라스즐로 해니예츠는 비트코인이 “기존의 은행 시스템과 중간에서 수수료를 떼어가는 수많은 중개자”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가 2010년 5월 피자 두 판을 사는 데 쓴 비트코인은 1만 개였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비트코인 세계(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분파들)와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은 초기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교류하기 시작했다.

월가의 베테랑들은 암호화폐 기업으로 서둘러 이직하고 있다. 주요 금융기관들은 블록체인에 접근하고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기존 산업에 투자 대상을 만들어내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금융 위기의 불길 속에서 태어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암호화폐 커뮤니티와 월스트리트가 하나로 합쳐지려는 것일까?

 

비트코인이 그리는 세계 vs 비트코인을 포섭한 세계


초기 비트코인을 둘러싼 기류는 확연히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뒤엎자는 것이었다.

비트코인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받아들였으며 코인데스크에는 익명을 요구한 한 비트코인 채굴자는 “비트코인이 세상에 선보인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비트코인의 가능성 때문이었는지 무정부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나 자유주의적 이상에 대한 논의로 가득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을 사용한 실크로드(Silk Road) 등 암시장에서 비롯된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는 프로토콜의 제한적인 익명성을 오해한 탓에 생겨난 문제라고 말했다. 불법 사용 사례들은 차치하더라도 탈중앙화 통화가 개발됐다는 것은 기존의 체제에 분명한 위협이 되었다. 익명의 얼리어답터는 비트코인이 (은행과 정부의) 통화 독점으로 인해 야기된 대인 및 문화적 피해와 파괴”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최근 코드명 라이라 프로토콜(Lyra Protocols)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베테랑 암호화폐 개발자 타릭 루이스는 “비트코인은 항상 금융 시스템을 우회하고자 했다”는 지적에 동의했다.

이런 이유로 초기 비트코인 참여자 중에는 비트코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위험하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2010년에 랜덤 웹 브라우징 사이트 스텀블어폰(StumbleUpon)을 통해 비트코인을 발견하고 리플의 CTO로 근무하다 자신의 암호화폐 사업을 시작한 스티븐 토마스는 코인데스크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초기 비트코인 커뮤니티 내의 많은 사람은 중앙은행이 비트코인을 통화를 발행하는 정부의 핵심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으로 여길까 봐 걱정했다. 이 때문에 초기에 많은 이들이 익명을 유지하며 실제 신원을 드러내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토마스는 중앙은행이 단순히 새로운 기술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물론 기존 금융 시스템 전문가들은 대체로 비트코인을 비난하고 경계했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부터 JP모건의 CEO였던 제이미 다이몬은 비트코인을 가리켜 “사기”라고 맹비난했다가 자신의 발언을 거둬들이기도 했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일주일 뒤 골드만 삭스에 구제 금융을 제공한 억만장자 투자자 워런 버핏은 비트코인이 “완전히 쥐약”이라고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비트코인은 원대한 희망(과 독설)을 만들어 냈지만, 아직 기존의 금융 시스템을 넘어뜨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월스트리트의 은행 대부분은 위기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성장했다. 중앙은행과 신용 화폐가 사라질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으며, 비트코인은 여전히 글로벌 통화 시스템의 아주 미미한 조각일 뿐이다.

코넬대학교의 사이러 교수는 이렇게 정리했다.

“연방준비제도를 없애고 우리가 아는 화폐를 대체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요구로 판명됐다.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단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도 기존 시스템과 교류하면서 발전해 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

 

혁명을 꿈꾸던 이상주의, 월가를 만나다


금융 위기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 비트코인이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과 비트코인은 물과 기름처럼 절대 어울릴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반대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오히려 주류가 되었다.

토마스도 지난 5년간 생각이 급격하게 변했다고 설명한다. 2013년에 리플이 블록체인을 기업에 도입하자는 개념을 처음 고안했을 때만 해도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블록체인이 이뤄내려는 것과는 정 반대잖아. 비트코인의 핵심은 은행이 필요 없다는 건데, 왜 은행이랑 협업을 해?

토마스는 여전히 사람들이 은행을 돈과 자산을 맡겨놓는 곳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인식이 빠르게 변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08년 3월에 파산한 투자은행 베어 스턴스(Bear Stearns)에서 암호화폐 연구원이자 컨설턴트로 근무한 후 JP모건 체이스에서 부사장이 된 톤 베이스도 “대부분 사람들은 아직 자신의 프라이빗 키를 관리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며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베이스는 비트코인 생태계는 중개자를 없애기는커녕 비트코인용 고유 은행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미 비트코인은 코인베이스 등 대형 거래소의 형태로 은행을 보유하고 있다.

자산 관리사 피델리티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현재는 암호화폐 벤처 캐피탈 캐슬 아일랜드 벤처스(Castle Island Ventures)에서 근무하고 있는 닉 카터의 생각도 같다.

“비트코인은 돈과 국가가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비트코인이 은행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정서는 새로운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블록체인 찬성론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JP모건의 블록체인 프로그램을 이끌다 새로운 댑스토어(dapp store) 클로버를 공동 창립한 앰버 발데트는 그중 많은 사람이 “초기 사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트코인의 철학을 꼭 공유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발데트와 베이스, 카터는 모두 전통적인 의미의 금융 시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카터는 이렇게 말했다.

“전통적인 금융시장 출신인 나는 암호화폐와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이 교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암호화폐는 결국 금융 시스템에 편입되어 대규모의 기관이 관리하게 될 것이며, 규제를 받는 시장이 생겨나고 역동적인 가상 상품 시장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암호화폐 커뮤니티 내의 많은 사람은 현재 여러 금융 기관의 시장 진입을 반기는 추세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제안과 관련한 증권거래위원회의 결정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혁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관계 회복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암호화폐 커뮤니티 내에는 여전히 월가와 중앙은행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은행가들은 시장을 악용하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다. 시장의 감시와 정부의 감독이 없으면 정직한 행동을 강제하기 쉽지 않다.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기관의 개입을 바라기 전에 비트코인 시장에는 정해진 규정이 아직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비트코인으로 피자를 처음 샀던 해니예츠의 말이다.

카터는 또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비트코인 자체도 모든 사람을 완전히 설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통적인 사이퍼펑크(수신자만이 알 수 있는 암호로 정보를 보내는 프로그래머)이자 제트캐시의 CEO인 주코 윌콕스는 “세상 모든 사람이 우리의 혁명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더 공정하고 안전하며 효율적인 금융 시스템을 제공하는 데” 암호화폐의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달리 말하면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통해 아직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 증명된 더 나은 금융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윌콕스는 암호화폐의 성공에 필요한 최후의 요건도 결국 이를 받아들이는 세상 사람들의 손에 달렸다고 말했다.

암호화폐는 소수의 강경 혁명론자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암호화폐의 성공은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암호화폐 이면의 과학적인, 또는 정치적인 혁명에 대해서 이해하지 않고도 암호화폐가 간편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 달렸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
· Translated by NewsPepper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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