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에 거대한 쥐가 나타났다.

발톱을 세우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거대한 풍선 쥐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은행의 월스트리트 지점 앞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지난 9일 거리 설치예술처럼 선보인 이 작품은 과거 노동자를 혹사시키는 고용주와 기업을 비난하려고 노동조합에서 만들었던 거대한 쥐 형상을 본떠 만든 것이었다.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업데이트된 측면도 있었다. 흐릿한 갈색이던 몸은 비트코인을 예찬하는 알록달록한 코드와 수학 방정식이 문신처럼 뒤덮었다.

이 거대한 작품은 일종의 “시위” 목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현 경제 상태와 금융 관리 실태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다.

비트코인이 너를 무너뜨릴 것이다.

뉴욕시의 상징적 석조 건물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건물을 향한 쥐의 포효가 들리는 듯하다. 쥐의 날카로운 푸른 눈 위에는 검은색으로 “PoW”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비트코인의 합의 알고리듬인 proof-of-work, 즉 작업증명을 의미한다.

이 작품을 만든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 예술가 넬슨 사이어스(Nelson Saiers)는 작품을 며칠 동안만 설치해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이어스는 이 작품을 통해 미국 달러라는 세계 기축통화의 통화정책을 맡은 덕분에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은행일 연준에 주의를 돌리고자 한다.

연준은 달러를 통제해 미국 경제를 원활하게 유지하고자 하겠지만, 연준을 비판하는 이들은 연준이 화폐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있으며, 중앙은행의 내부 운영이 너무나 불투명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비판의 핵심이기도 하다)

연준을 분노에 찬 듯한 눈으로 노려보는 이 거대한 쥐가 아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지, 사이어스는 자신의 작품을 메이든 레인(Maiden Lane)에 풀어 놓기로 했다. 메이든 레인은 거대 기업인 AIG와 베어스턴스(Bear Stearns)에 구제금융을 제공한 법인 메이든 레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시위에 쥐가 사용된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그러나 이번 쥐는 암호화폐 지지자들에게 특히 더 큰 상징성을 지닐 것으로 추정된다. 워런 버핏이 비트코인을 가리켜 “쥐약 뭉치”라고 혹평한 것을 기억하는가? 혹자는 이번 작품이 버핏의 혹평에 대한 논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이어스는 코인데스크에 이렇게 말했다.

“워런 버핏은 비트코인을 ‘쥐약 뭉치’라고 언급했지만, 만약 연준이 쥐라면 쥐약만큼 필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쥐는 무엇을 꿈꾸나?


사이어스의 풍선 쥐 프로젝트가 세간의 관심을 얼마나 받았는지 살펴보기 전에 이런 종류의 시위 예술이 사이어스에게는 생소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때 수학자였던 사이어스는 금융계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장 붕괴나 기타 복잡한 특징을 포함, 금융계의 어두운 면을 생생히 묘사한 그림을 발표하여 일찌감치 “월스트리트의 워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이어스의 활동은 금융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축구복을 매달아 전시해 등 번호로 원주율을 100여 자리까지 나열하며 폭력과 무관한 단순 약물 복용을 범죄화하는 것에 대한 반대 의사를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원주율이 일정한 논리 없이 나열된 숫자인 것처럼 대마초를 흡연했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구속하는 것도 “비논리적”이라는 것이 사이어스가 생각한 원주율과 비폭력 약물 범죄 사이의 연결 고리였다.

이번 작품은 사이어스가 비트코인과 관련해서 만든 첫 번째 작품이다. 얼핏 보면 반(反)월스트리트를 표명하는 작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결국 예술은 보는 이가 해석하기 나름인 것이다.

다만 사이어스는 관람객들에게 몇 가지 생각할 점을 제시했다. 먼저 쥐는 비트코인의 정신을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나의 작품은 사토시의 정신과 사토시가 추구하는 바를 조금이나마 반영하고자 한다.”

사이어스는 사토시라는 가명의 비트코인 창시자가 2008년과 마찬가지로 “구제 금융”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토시가 처음 비트코인을 개발, 출시했을 때 그들은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첫 번째 블록에 구제 금융에 관한 뉴스 기사를 영구 저장했는데, 이는 은행과 정부의 관계를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이어스는 그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이 비트코인과 연준 모두에 관해 조금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사이어스 본인은 서로 부딪히기만 할 것 같은 두 가지 사이에서 어느 편을 들고 있지 않다.

“비트코인과 연준은 각각 강점과 약점이 있다. 사토시는 분명 재능 있는 사람이었고, 연준에도 능력 있는 직원이 많이 있다.”

요컨대 사이어스는 사람들이 쥐의 바보 같은 모습에 즐거워하고, 가능하면 한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쥐는 예술 작품일 뿐이고, 나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작품을 즐기기를 바란다. 동시에 작품 속 쥐가 시사하는 교훈적인 면도 있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쥐를 통해 배우기를 바란다. 적어도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이해하고 사토시가 고안한 시스템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나의 작품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쥐가 상징하는 것


이러한 목적을 좀 더 매력적인 작품을 통해 달성할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이어스에게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사이어스는 앞서 “비트코인은 기존 경제체제를 떠남으로써 대중의 의식 속에 들어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람들은 일단 뜬금없이 나타난 풍선 쥐를 보고 호기심을 느끼는 듯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멈춰서서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한다. 사이어스는 처음에 친구들과 쥐를 실수로 사유지에 설치했다. 그곳을 지키던 경비원들이 그들을 국공유지인 보도로 쫓아냈는데, 사이어스의 말에 따르면 경비원들의 태도는 친절했고 쥐를 보고 재미있어 했다고 한다.

또한, 사이어스는 쥐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의 생각에는) 작품이 모호하기 때문에 재미가 배가 되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쥐인지 아니면 연준이 쥐인지는 사이어스에게 명확히 정해둘 필요가 없는 문제다.

사이어스는 또 다른 흥미로운 연관 관계에 주목한다. 사토시와 마찬가지로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유명한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Banksy)도 쥐에 관해 매우 우호적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

“쥐들은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고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쥐들은 미움받고 쫓겨나고 학대당하면서도 오물 속에서 소리 없이, 필사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쥐들은 모든 문명을 무릎 꿇릴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지저분하고 보잘것없고 사랑받지 못한다면, 쥐를 최고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뱅크시가 자신의 저서 <월 앤 피스(Wall and Peace)>에서 한 말이다.

사이어스는 비트코인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비웃었지만, 현재 비트코인은 1천억 달러가 넘는 가치를 지닌 자산이 되었다. 비트코인은 멸시당했지만, 앞으로 중앙은행과 신용화폐의 중요성을 약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내가 쥐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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