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일찍이 ICO를 사기, 투기, 도박이라는 틀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했다.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려는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당연히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자유한국당 소속 일부 의원들은 이들의 반발을 등에 업고 ‘ICO 허용’을 주장하고 나섰다. 현 정부가 일자리, 부동산 등 경제 분야에서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들이 블록체인을 소재로 ‘혁신’이라는 이미지를 선점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여당 소속 민병두 의원이 대정부질문을 통해 ICO를 허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 중진 의원이 정부나 청와대와 다른 주장을 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민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장이다. 정무위원회는 ICO나 암호화폐 거래소와 관련된 법률이 만들어지려면 가장 먼저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민 의원의 발언을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지난 13일 민병두 의원을 만나 ICO, 암호화폐, 블록체인에 대한 생각을 두루 들었다.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 사진=정인선 기자


-가상화폐, 암호화폐, 디지털자산 등 여러 용어 중 어떻게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나?
"주요 20개국(G20)은 올 상반기에 암호자산(Crypto Asset)으로 용어를 통일했다. 그게 맞지 않겠나. 이걸 화폐로 규정하면 ‘가치저장 수단이 있냐’, ‘변동성을 해결할 수 있냐’면서 복잡해진다. 자산으로 접근하면 혼선을 최소화하고 사고의 유연성이 생길 수 있다."

-ICO를 허용해야 하는 이유는?
"지난 1년여 정부 규제에 긍정적인 면도 있다. 많은 거품이 사라지면서 '이거 함부로 뛰어들 시장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하게 된 것 같다. 큰 예방주사를 맞은 거다. 그래서 ICO와 거래소를 열어도 국민들이 함부로 뛰어들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지금은 백신이 성공한 것으로 보고 열어 줄 필요가 있다. 최근에 관련 법을 만든 프랑스를 포함해 스위스, 몰타, 에스토니아, 싱가포르 등은 ICO를 제도의 틀 안에 두려고 한다. 다른 나라들이 ICO의 가능성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영국의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암호자산이 실망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특집 기사를 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ICO 모금 규모가 벤처캐피털이나 엔젤투자로 모금한 것에 비해 훨씬 크다. 트렌드가 바뀌었다. (상반된) 두 지표가 있을 때, 정부는 비관적인 부분은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부분은 열어둬야 한다.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블록체인 관련) 특허를 출원하고 새 비즈니스 모델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 단계를 뛰어넘는 새 코인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데 그 가능성을 막을 이유는 없다.

특히 중개자 없는 경제모델의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상상력의 날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퍼블릭 블록체인을 활용해서 누군가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데카콘기업(100억 달러 이상)이 될 수 있다. 결국 중개자 없는 이 시장에서도 지배적 플랫폼이 등장할 텐데 우리가 그걸 놓치면 안 된다. 그런 가능성이 있는데 정부가 모든 것을 ‘사기다. 투기다. 자본세탁 가능성이 있다.’고 막는 건 문제가 있다."

-국무조정실이 11월에 ICO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여전히 ICO에 허용에 부정적이다.

"국무조정실, 금융위원회와 당정 협의를 했는데 둘다 부정적이다. 정부는 작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규제 조치에 만족스러워하고 그것이 정부의 소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부가 (11월에) 다시 ICO 규제를 발표할지라도, 업계의 목소리를 광범위하게 듣고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에 그로 인해서 우리나라 블록체인 산업이 발전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그의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지난 1년여 동안 규제하면서 결국에는 우리나라 블록체인 기술력이 미국의 75%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국회에 이미 발의된 블록체인 법안들이 있다.

"박용진, 하태경, 정병국, 제윤경 의원 등이 법안 발의를 했다. 어떤 법안은 사실 ICO 금지법안에 가깝고, 어떤 법안은 진흥법안 일변도인 측면이 있다. 그만큼 이걸 보는 시각이 굉장히 다르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의원들은 다 내년 총선을 생각해서 총선 현장으로 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는 거다. 현장에서 하루하루가 급하다며 목이 타들어 가는데 국회가 외면하는 건 큰 문제다."

-정무위원장이 ‘ICO를 허용해야 한다’고 했으니 일단 정무위에서는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 건가?

"나는 의지가 강하다. (정무위) 다른 의원들도 의지와 전문 지식을 갖고 임했으면 한다. 금융위가 굉장히 부담스러워 한다고 한다. 주무위원회인 정무위원장이 목소리를 크게 내고, 또 최근 수십명의 의원들이 몇 차례 토론회를 통해 목소리를 냈으니 정부에겐 상당히 압박이 될 것이다. 정부는 법이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데 굉장히 큰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암호자산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추어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법을 만든다면 세세하게 규정하기보다 기본 성격, 임무, 감독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하면 된다. 자산의 성격에 따라 어떻게 규제할 것이냐. 사기, 투기, 자금세탁 등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단속할 것이냐. 거래소 안전성은 어떻게 담보하고 어떻게 규제할 것이냐. 백서는 어떻게 검증하게 할 것이냐. 애널리스트들이 정기보고서를 내게 할 것이냐. 감독 관청은 무엇을 할 것이냐. 이런 걸 규정하면 된다."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 사진=정인선 기자


-최근 블록체인협회는 법 제정이 오래 걸리니 가이드라인을 먼저 만들자고 제안했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국회가 작년 이맘때쯤 블록체인 제정법 청문회를 하고 1년 동안 손을 놓고 있는 건 임무 방기다. 11월부터 정무위 차원의 블록체인 청문회나 특위를 열 예정이다. 여기서 법률, 금융, 소프트웨어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려고 한다. 법이나 가이드라인은 최소화된 형태여야겠지만, 검토는 전반적이고 심층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국회가 하나의 의견을 모아서 법이든 가이드라인이든 정부에 촉구할 계획이다."

-정부에서 이 이슈의 키를 쥐고 있는 건 금융위와 청와대 아닌가?

"현재는 (범정부 가상통화TF를 주관하는) 국무조정실이 콘트롤타워다. 청와대에서도 이 문제를 주시하는 분들이 일부 있는 거로 알고 있다. 결국 대통령의 결단 형식으로 가면 굉장히 좋을 텐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분야가 굉장히 복잡한 과정 아니겠나."

-비트코인의 탄생 배경은 2008년 금융위기였고, 블록체인의 철학적 배경이 탈중앙화라고 한다. 정부가 좋지 않게 보는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지 않나? 손에 잡히는 금융기관과 달리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는 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

"(블록체인의) 탈금융감독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건 아니라고 보고, 탈중앙     화나 탈중개화가 가져올 미래가 나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기존 법화를 대체한다는 얘기는 좀 먼 미래인 것 같고, 탈중앙화가 기축통화, 금융기관을 통한 매개 같은 걸 얘기한 거 아니겠나.

어떤 정부는 그걸 굉장히 소극적으로 볼 수 있고 또 어떤 나라는 능동적으로 볼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아주 긍정적인 나라다. 법인세 0%(재투자할 경우. 배당하면 20%), 전자영주권 발급에 3분, 기업 허가받는데 3분. 모든 것이 전자화되어 있고 앞으로 모든 것이 블록체인화 되어가고 있다.

근데 어느 정부가 블록체인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서 아마존이나 알리페이같이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플랫폼이 만들어졌을 때, 소극적인 정부가 그걸 막을 수가 있을까. 막지 못하면 결국 그들의 경제적 식민지가 되어 가는 수밖에 없다. 그 경쟁에서 우리가 낙후되지 되지 않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

-제주도 등 일부 지자체가 추진하는 블록체인 특구에 대한 의견은?
"원희룡 제주지사가 찾아와 한시간 이상 대화했고 다른 많은 지자체와도 접촉하고 있다. 제주도가 법률상 특구의 지위를 갖고 있어서 선도적으로 노력한 건 높이 평가한다. 근데 제주는 법률, 금융 연결서비스 자원이 충분하지 않고, 프로젝트로 연결될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리고 정부 당국은 특구 차원의 ICO 허용이 우리나라 전체를 열어주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가이드라인 혹은 법을 통과시킨 다음에, 특구가 거기에 맞춰서 발전 모델을 찾는 건 가능하겠지만 특구에 대해 예외적으로 (먼저) 열어주는 건 지금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당국이 규제샌드박스법이나 특구 형식으로 풀어줄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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