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김태권

 

지난 줄거리

전 세계 인구의 삼 분의 일이 디지털 영주권을 가진 온라인 블록체인 플랫폼의 본거지 거대한 떠다니는 함선 도시 유크로니아호가 미국에 입국 신청을 한다. 백악관에서는 그들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고민한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 게임 월드는 과연 통합되어 운영될 수 있을까? 유크로니아 가상현실 게임월드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그 제네시스 블록의 조합에 비밀이 숨겨져있다니. 수백 년 전부터 전 세계에 곳곳에서 나타나는 제네시스 조합 문양만 풀면 유크로니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일까? 유크로니아의 탄생의 비밀에 대한 의혹과 함께 게임과 창의성을 중심으로 창작자들이 주인공인 레드존에서는 베를루스국의 여왕의 거래 플랫폼 장악시도에 따른 갈등이 폭발단계에 이르기 시작했고, 인간과 기계의 조화로운 협력을 통한 가치를 중시하는 블루존에서도 뭔가 모를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런 사람이 아니야!  

 

민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여친 마리가 민을 사기꾼으로 만든 지난 현실이 눈 앞에 다시 펼쳐지는 듯 했다.

 

-민, 좀 쉬어야 되는 것 아냐? 의자에 앉아서 졸다가 악몽이라도 꾼거야?

 

R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꿈이었구나 ...

 

민에게 그 사건은 도저히 잊혀지지 않았다. 이미 3년이나 지났지만, 바로 어제의 일처럼 그 당시의 상황이 뇌리를 스쳐갔다. 2022년, 혜성과 같이 등장한 민의 이오리움(EOReum) 프로젝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기존 암호화폐에 실망한 수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의 금융 플랫폼이면서 동시에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으로 미래가 탄탄하게 보장된 것처럼 보였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비트코인은 여전히 전자화폐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다양한 사회에 적용되는 플랫폼으로서의 확장에 결국 실패하며 마치 상평통보와도 같이 기념으로 하나 정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는 수준 정도로 인지도가 하락하여 대표 암호화폐로서의 지위를 잃고 있었고, 청년 천재로 불리던 비탈릭 부테린이 발표하면서 미래의 블록체인 플랫폼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던 이더리움 역시 고질적인 속도와 확장성 문제에 대한 해법을 속시원하게 내놓지 못하며 전 세계에 불어닥치던 블록체인 광풍이 완전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이들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고 3세대, 4세대를 외치며 수 많은 프로젝트들이 등장했지만, 의미있는 성장을 하지 못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미래 그림만 그럴 듯하게 그릴 뿐 블록체인이 바꿀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기대를 내려놓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 때 우리는 세상을 너무 몰랐어.

 

민이 R에게  말했다. 회한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 때는 어렸지. 그리고 순수하기도 했고 … 그렇지만 그 때의 실패가 발판이 되어서 지금의 성취를 이룬거니까.

 

R의 말이 옳았다. 이오리움 프로젝트는 기존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에 실망한 사람들을 위해 철저히 실용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었다. 참여하는 노드의 수를 제한해서 최대한 거래 속도를 끌어 올렸고, 기존 기업들의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 기술과 접목한 하이브리드 플랫폼으로 설계해서 확장성과 유연성도 확보를 하였다. 또한, 기존 유명 플랫폼 기업들의 참여가 쉬웠고 이들에게 분배의 인센티브가 주어졌기 때문에 블록체인의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부재하다' 라는 평가를 단숨에 잠재울 수 있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이후 급락하던 블록체인 기술의 신화가 다시 회복되는 듯했다.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이오리움의 가치는 급등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오리움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큰 돈을 투자하였다. 그러나, 그런 커다란 기대와 가능성이 실망으로 바뀌는 데에 소요된 시간은 불과 2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근본적인 컨센서스 알고리즘을 바꾸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어. 제한된 노드의 수와 기존 PoW(Proof of Work)의 철학이 결합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을 간과했어. 그리고 그 작업에 마리가 그렇게 깊게 관여할 줄은 …

 

민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사단이 난 것은 철석같이 믿었던 몇몇 제휴 거대 기업 플랫폼 사업자들과 홍보와 대외연계 활동을 담당했던 마리 부사장이 비밀리에 거대한 시빌 노드(Sybil Node)를 남모르게 조직해서 사실 상 이오리움 플랫폼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PoW를 수행하는 컴퓨터 자원에 투자하고 이를 한 덩어리로 묶어서 마각을 드러내면서 부터였다. ‘실제로 활용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 이라는 이오리움의 모토는 이때부터 기존의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카르텔 기술' 이라는 이름으로 변질 되었다. 이들의 비전을 믿고 투자했던 투자 커뮤니티와 개인들은 실망과 함께 이오리움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폭락하는 이오리움을 저가에 모두 매수한 마리 부사장과 거대 플랫폼 기업 카르텔은 자신들의 인터넷 세계에서의 지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수 있었다. 결국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권력을 나누어주고, 분산화된 거버넌스를 이상으로 삼았던 이 프로젝트의 종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너무 실망하지마. 그래서 우리가 블루존에 새로운 철학을 가진 기술을 접목할 수 있었잖아. 사실 말이 PoW 이지 그게 무슨 PoW야? PoMW(Proof of Machine Work)이지. 컴퓨터에 투자만 할 수 있으면 돈으로 노동을 모두 사서 독점을 할 수 있는거나 마찬가지인데, 거기에 신성한 개인들의 노동을 들먹이다니 … 그것 때문에 진짜 PoW를 만들 수 있었으니 전화위복으로 생각하자고. 마리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꺼내지 말자.

 

R이 말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시련은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실패는 더욱 견고한 미래를 만드는데 귀중한 교훈을 선사한다.

민이 유크로니아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위한 자금을 퍼스트에서 수혈받고 설계한 PoW는 단순히 컴퓨팅 파워에만 의존하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들만 해낼 수 있는 다양한 작업을 적절하게 조합해야만 인센티브가 주어질 확률이 높아지는 진짜 PoW 였다. 이렇게 하면 자본으로 컴퓨터를 사고 알고리즘을 계산하는 칩을 만들어서 지구를 거덜낼 정도의 에너지 소모를 하려는 인센티브가 없어지기 때문에 여러 모로 의미가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런데, 마리가 현우라는 친구를 찾아달라고 요청을 했다며?

 

-아 그 마리의 요청을 받고, 메시지가 날아온 곳의 IP를 추정해봤어. 메시지의 위치를 정확히 밝히지 않도록 복잡한 가상 IP 주소를 만들기는 했는데, 대략 나라 크기 정도까지는 알아낼 수 있어. 홍콩과 가까운 중국 광둥성 인근인 것 같아. 근데 이상한 것이 있어 …

 

-젊은 친구가 해외로 간 게 뭐가 이상해?

 

-현우 만이 아니라 확인하기 어려운 메시지가 날아오는 것이 그 지역 인근에서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이 잡히는 것 같아. 이거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것 아냐?

 

R의 이야기에 민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뭔가 이상했다. 마리가 이야기하기를 비록 자기에게 직접 연락을 하지는 않았지만 현우도 유크로니아에 자주 접속을 했고, 좋아하는 게이머들과 함께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현우의 친구들을 통해서 들었다고 했다.

 

-아니야. 아직 경찰에 신고하기는 이른 것 같아. 유크로니아에서 뭔가 벌어지는 것 같으니 일단 우리가 먼저 조사를 해보지.

 

‘도대체 현우는 거기서 뭘 하는거지?

민은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다. ‘유크로니아에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건가?

 

<다음주에 계속>


<지난화 보기>


18화_슈테나 성 경매와 현우의 메시지

17화_베를루스국의 슈테나 성은 팔리게 될까

16화_마침내 공개된 퀘스트를 풀어라

15화_제네시스 블록 퀘스트 공개 논쟁

14화_제네시스 블록의 비밀

13화_탈중앙화 거래소의 소스코드

12화_타협할 것과 아닌 것

11화_유크로니아 왕위 계승과 세금 인상 

10화_세이무어와 테스의 회합

9화_블랙존에서 열린 총회 

8화_아버지가 남긴 것

7화_ 예술가들의 천국

6화_세라, 유크로니아 16번째 달의 이름

5화_VR과 AR이 조합된 게임월드, 시험운영은 끝났다

4화_민이 낸 수수께끼를 풀어라

3화_살아남은 자들의 아침

2화_더 퍼스트의 속삭임

1화_유크로니아국의 입국 신청


<작가 소개>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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