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백서 10주년 릴레이 기고, 이제 해외 필자로 이어갑니다. 미국 <코인데스크>는 비트코인 백서 출시 10주년을 맞아 “비트코인 10년: 사토시 백서(Bitcoin at 10: The Satoshi White Paper)” 라는 제목으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업계의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앞을 전망하는 다양한 인사들의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이 가운데 흥미로운 글을 엄선해 번역, 소개합니다. 이번 글을 쓴 브루스 펜턴(Bruce Fenton)은 애틀랜틱 파이낸셜(Atlantic Financial)의 CEO이자, 체인스톤랩스(Chainstone Labs)의 창립자, 사토시 원탁회의(Satoshi Roundtable)의 주최자, 메디치 벤처스(Medici Ventures)의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사진=한겨레 자료사진

 

비트코인 백서는 돈이 기능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비트코인 백서 덕분에 우리가 어떤 생각에 가치를 부여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방법도 바뀌었는데,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이에 관한 논의는 아직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비트코인 백서가 공개된 지 10년이 지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비트코인 백서는 그저 새로운 생각을 나열한 수준을 뛰어넘는 명문이었다. 앨런 튜링(Alan Turing)이 쓴 백서의 고전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에 견줄 만큼 비트코인 백서는 명쾌하고 과학적이면서도 특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권위 있는 문체로 기술했다.

이런 면에서 비트코인 백서는 다른 백서와 차별화된다. 사람들은 비트코인 하면 네트워크나 노드, 채굴자와 투자자부터 떠올리지만, 비트코인은 사실 하나의 분명한 사상이었고, 이 사상이 탄생한 곳이 바로 비트코인 백서다. (오늘날 흔히 백서라 불리는 것들은 단순한 마케팅 문서나 법률 문서인 경우가 많다.)

코드를 비롯해 백서 이후에 나온 모든 것은 결국 처음에 백서에서 제시한 생각의 뼈대에 살을 붙이고 다듬어 나간 것이었다. 이상적인 백서란 특정한 생각과 개념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것이어야 한다는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백서에서 제시한 생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과 믿음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훌륭하다면 사람들은 이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아이디어로서 비트코인의 개념은 기본적이지만, 이 개념을 잘못 해석할 소지도 작지 않다. 비트코인은 과거에 불가능했던 여러 가지를 가능하게 한 새로운 발명이었다. 비트코인 백서와 그 안에 담긴 아이디어가 나타나기 전과 후로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존에 나온 발명을 토대로 발전시킨 아이디어와 비트코인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바로 이 점이다.

비트코인의 아이디어 자체가 나쁘다거나 널리 적용돼 쓰일 만한 기술이 아니라고 깎아내리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비트코인이 적용된 기술에는 부족한 점도 있고 문제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성패와 별개로 그 바탕이 된 비트코인이라는 아이디어가 새로운 발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는 것이다.

적어도 현재까지 비트코인은 이전의 그 무엇과도 다른 방식으로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감도 잡지 못한 채, 비트코인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트코인을 ‘그저 데이터베이스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이들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비트코인은 분명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꿔낼 만한 새로운 사상이다.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것


특정 아이디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의 토대가 형성되고 나면,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단계로 접어든다. 나는 매우 초창기부터 비트코인에 참여하면서 이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이 실험적 아이디어가 어떤 일을 해낼지 꾸준히 지켜볼 수 있었는데, 초반에는 그날그날의 경제적 측면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초기일수록 비전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디어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면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의견 차이가 생긴다.

백서는 사람들이 공통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모이게 만들고, 향후 아이디어를 쌓아나가는 데 있어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

아이디어로서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특정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대해 의견이 나뉘고 대립할 때 선택지는 다음과 같다.


  • 원래 문서가 지닌 의도를 파악해서 그대로 해석한다.

  • 원래 문서를 조정한다. 혹은 변경 없이 엄격하게 따른다. (헌법처럼)

  • 원래 문서를 조정하고, 수정해서 다르게 만든다.

  • 원래 문서를 무시하고, 더 나은 안을 새로 제시한다.


아이디어는 적어도 처음에는 (어느 한 곳에서 나오는 만큼) 중앙 집중적 형태를 띤다.

아이디어가 처음 발표될 당시에는 그 아이디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누구도 이견이 없다. 누가 그 생각을 냈는지 분명하고, 따라서 누구도 ‘당신의 말은 이런 뜻’이라고 해석을 두고 다툴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정의하고 시작하는 초반에 중앙의 권위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조정과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의견 차이는 특이한 방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비트코인이라는 숲


비트코인은 숲을 가꾸는 것과 같다. 누군가가 심은 씨앗으로 아이디어가 시작된다. 비트코인 백서에서 씨앗을 심은 사람은 사토시 나카모토였다. 그러고 나면 사람들이 와서 물을 준다(초기 개발자). 이어 더 많은 사람이 손을 보태는데, 다른 개발자와 기업, 개인들이 지원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점점 자라나는 이 작은 나무의 가지를 가져와 자기만의 나무를 길러낸다.

새로 키운 나무는 뿌리가 되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복제 나무도 있고, 종자만 같은 것도 있다. 돌연변이도 있고, 잡초 같은 것도 있으며, 일부는 말라 죽기도 한다. 엄청난 수의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비료를 뿌려서 숲을 조성한다. 후반부로 가면서 상황은 점점 더 까다로워진다. 시스템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이해관계자도 늘어나고 의견 충돌도 많아진다.

변화와 분열, 해체와 분립이 있으리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숲의 어느 쪽에서 시간을 보낼지는 각자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사람들의 의견이 충돌할 때, (아이디어로서의) 비트코인에는 독특한 대응 메커니즘이 있다. (비트코인의 형태와 본질을 모방한 다른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비트코인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표를 갖고 함께 모인 거대한 네트워크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비트코인 진화의 모든 면을 좋아할 수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네트워크를 원활히 작동시킬 공동의 동기가 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네트워크 효과가 분명하고 또 안전한 이상, 우리는 계속해서 비트코인이라는 숲을 가꿔나갈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통한 의사표시


비트코인이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동원된 생각 없는 이들이 의사결정을 장악하는 중우정치(mob rule)에 빠지지 않도록 설계되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세계 어느 곳의 정치사를 보더라도 군중에 맞서 군중을 통제하고 해산시켜 영향력을 줄이려는 많은 노력이 있었다.

암호화폐 세상에서는 이런 군중을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게 해주는 식으로 통제한다. 블록체인에서는 특정 규칙에 동의하는 이들이 모여 그 규칙을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운영하는데, 규칙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서로 갈라져 다른 네트워크를 만들면 그만이다.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동원돼 숫자만 앞세운 이들은 자기만의 네트워크는 얼마든지 운영할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군중들이 동의할 수 없는) 새로운 규칙을 정해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새로운 네트워크가 군중들의 네트워크보다 더 잘 운영되면 사람들이 계속 더 모여들 것이다.

중요한 문서들이 으레 그렇듯 비트코인의 주요 그룹들도 백서를 둘러싼 해석의 차이로 점차 갈라섰다. 비트코인에서는 기본적으로 각각의 그룹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규칙을 바탕으로 선호하는 코드를 실행할 수 있다. 사람들은 백서의 의미에 대해 (혹은 무엇이 가치가 있고 중요한지에 대해) 자신만의 해석을 할 자유가 있다.

비트코인이 성공을 거두고 인기가 높아지면 새로운 거버넌스 방식이 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 즉, 각자 선호하는 코드를 가져와 상업적인 용도나 의사소통에 이용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이 사실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주요 개발자나 기업이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장악해 중앙집중화시키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그러나 중앙에 권한이 집중돼 있거나 영향력이 큰 인물은 다른 프로젝트에 더 많이 있다. 특정 인물이 특정 프로젝트에 아무리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더라도 실질적인 통제력과 권력을 가지려면 의사결정 과정을 장악하고 있어야만 한다. (비트코인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분산형 오픈소스 프로젝트만의 위대한 특징이자, 아이디어로서 비트코인이 특히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코드를 운영하는 것은 자신만의 헌법을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것은 동원된 다수를 이용해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하려는 세력을 무력화하는 일련의 규칙에 동의하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거나 신념에 변화가 생긴다면, 시스템상에서 우리가 선호하는 규칙으로 수정하고 변경할 수도 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거기에 맞춰 세우는 대책의 뿌리는 비트코인 백서가 될 것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1_김진화 코빗 공동창업자: 사토시 페이퍼 10년, 그리고 ‘래디컬 마켓’

#2_김재윤 디사이퍼 회장: 당신의 블록체인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3_정우현 아톰릭스컨설팅 대표: 이처럼 이과적 소양과 문과적 감성 모두 요구하는 게 또 있을까

#4_문영훈 논스 대표: 미래의 혁명가들이여, 논스로 오라!

#5_김종승 SKT 블록체인사업개발Unit Token X Hub TF장: 화폐 르네상스,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6_이송이 37coins 창업자: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세계평화’의 꿈은 현재진행형

#7_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 사토시, 비탈릭, 그리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자세

#8_이준행 고팍스 대표: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투명한 자본조달 구조 바꿔보자

#9_김휘상 해시드 CIO: 블록체인이 우리의 노동과 데이터 주권을 뒤바꿀 것이다

#10_찰리 슈렘 비트인스턴트 창업자: 베네수엘라, 터키 경제위기를 ‘남의 일’로 여기는 당신께

#11_아담 크렐렌스타인 심비온트 공동창업자: 사토시의 비전은 암호화폐보다 분산원장 기술에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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