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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캐시(BCH)가 하드포크를 단행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둘로 갈라진 양쪽 어디에서도 하드포크를 물릴 생각은 없어 보인다. 하드포크 전에는 일단 비트코인캐시 거래를 중지하고 상황을 지켜보던 암호화폐 거래소들도 비트코인캐시가 둘로 갈라선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Coinbase)가 지난 20일 "비트코인캐시 거래를 재개할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코인베이스는 비트코인 ABC와 비트코인 SV 둘로 나뉜 블록체인 가운데 비트코인 ABC의 손을 들어주었다. 블록 크기 한도를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을 담은 비트코인ABC (Adjustable Blocksize Cap)를 기존 비트코인캐시를 표시하던 티커 BCH 아래서 거래할 수 있게 하고, 사토시의 비전을 따랐다는 뜻을 담은 비트코인 SV (Satoshi Vision)는 서비스하지 않기로 했다. 코인베이스는 고객들이 비트코인 SV를 인출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다만 원활한 인출 서비스를 구현해 선보이는 데 적어도 몇 주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폴로니엑스(Poloniex)와 비트파이넥스(Bitfinex)는 하드포크로 갈라진 두 블록체인의 거래를 모두 취급한다고 밝혔다. 두 거래소에서는 기존의 BCH라는 티커는 없어지고, 새로 비트코인 ABC는 BCHABC 혹은 BAB, 비트코인 SV는 BCHSV 혹은 BSV라는 티커가 쓰인다.

코인댄스(Coin Dance)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블록 개수나 작업증명에 드는 해시레이트 등 여러 지표에서 비트코인 ABC가 비트코인 SV를 앞서고 있다.

비트코인 SV 지지자들은 시장 가격이나 채굴량, 거래량 등에서 비트코인 SV가 열세임을 인정하면서도 언젠가는 비트코인 ABC를 넘어설 날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비트코인 SV의 로드맵을 개발한 엔체인(nChain)의 수석 과학자 크레이그 라이트는 코인데스크에 이렇게 말했다.

"아직 승패가 났다고 말할 수 없다. 승패를 가리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는 단순히 블록체인이 둘로 갈라진 것이 아니라 한쪽만 살아남고 다른 쪽은 사라져야 하는 싸움이다.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는 쪽이 될 것이다."

라이트는 비트코인 SV 블록체인이 상대방을 파산시키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하며, 비트코인 ABC 네트워크를 지지하는 해시파워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비트코인 ABC의 해시파워가 낮아지고 채굴 속도도 늦어지면 언젠가 비트코인 SV가 둘 중에 승자로 판명되고, 비트코인 ABC를 완전히 폐쇄해버릴 수 있게 될 거라고 말했다. 라이트는 이를 "끈질긴 사냥(persistence hunting)"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비트코인 ABC 진영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비트코인 채굴풀인 비트코인닷컴(bitcoin.com)의 CEO 로저 버는 비트코인 ABC가 적어도 앞으로 몇 달 동안은 지금 수준의 해시파워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버는 비트코인 관련 주간 소식을 직접 갈무리해 소개하는 비트코인닷컴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라이트를 비롯해) 비트코인 ABC의 해시파워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이렇게 말했다.

"안타깝지만, 이 어마어마한 해시파워가 어디서 왔는지는 당신들이 알 바 아니고요, 한 가지만 분명히 해두자면 이 정도 해시파워를 기록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거 보셨죠?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1년이고 10년이고 이 정도 해시파워를 유지할 수 있답니다."

 

끈질긴 사냥


실제로 상대방 블록체인을 압도한 뒤 도태시켜 버리겠다는 말이 그저 공허한 협박이 아니라 실제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트코인 ABC와 비트코인 SV의 싸움이 끝나려면 한참 멀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라이트는 하드포크 이전부터 이미 앞으로 비트코인 SV 네트워크가 충분한 해시파워를 쌓게 되면 그때 51% 공격을 감행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위협해 왔다. 비트코인 ABC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해시파워 절반 이상을 장악하면 비트코인 ABC 네트워크에서 빈 블록을 채굴하거나 거래를 왜곡해 네트워크를 도태시키겠다는 것이다.

하드포크 이후 비트코인 ABC의 블록체인이 해시파워도 더 높고 우세한 블록체인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사람들은 비트코인 SV 측이 곧바로 공격에 나설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라이트는 코인데스크에 섣불리 공격할 생각은 없다며 천천히 상황을 지켜보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일단 뒤에서 (비트코인 ABC를) 쫓아가며 끈질기게 추적하고 달라붙을 것이다. 탈진해 도태될 때까지 계속해서 돈을 쓰지 않을 수 없게 상대를 압박할 것이다."

그러나 비트코인 ABC 측에서 51% 공격을 막을 방책을 이미 마련했다는 주장도 있다. 비트코인 ABC의 개발자 크리스 파시아는 하드포크 직후 <미디엄>에 올린 글을 통해 ABC 블록체인의 정상적인 블록을 함부로 섞어버리지 못하도록 하는 방책을 마련해두었다고 설명했다.

비트코인 ABC 네트워크에만 특화된 이른바 검문소(checkpoints) 기능을 전체 네트워크에 삽입한 건데, 검문소 기능은 블록체인상에서 매 단계 특정 검문소의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블록을 바꾸거나 새로 채굴한 블록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는 기능이다. 검문소의 승인이 없으면 가장 오래된 체인도 새로 블록을 쌓지 못한다.

블록체인 합의 알고리듬의 핵심적인 원칙 가운데 하나인 탈중앙화 속성을 거스른 방식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파시아는 이런 식의 검문소 기능은 사실 2010년부터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도 51% 공격을 막기 위해 사용한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세 갈래 접근법


다만 비트코인 ABC에 접목된 검문소 기능은 하드포크 이후에 생성된 블록을 향한 공격은 막지 못한다. 쉽게 말하면 검문소를 지나야 닿을 수 있는 블록만 보호되는데, 하드포크 이후에 채굴한 새로운 블록은 검문소를 통과하기 전에 쌓아두는 것이다. 즉, 파시아가 말한 대로 검문소는 비트코인 SV 채굴자들이 비트코인캐시가 둘로 나뉘기 전 기존 비트코인캐시 블록체인에서 몰래 채굴을 통해 감행하는 51% 공격만 막아낼 수 있다.

비트코인 ABC 블록체인에 매일 새로 쌓이는 블록을 향해 비트코인 SV 측에서 해시파워를 동원해 채굴을 방해하고 51%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은 여전히 없지 않다. 하지만 비트코인 ABC의 개발자이자 채굴자인 조나단 투밈은 이런 공격을 막아내거나 무력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여전히 몇 가지 있다고 말한다.

우선 로저 버가 제안하는 것처럼 비트코인 ABC가 계속해서 비트코인캐시에서 갈라져 나온 블록체인에서 채굴하는 방법이 있다. 비트코인 ABC는 이어 비트코인캐시 블록체인에서 채굴하다 비트코인 SV의 공격이 임박할 때만 임시로 해시파워를 높여 공격을 막으면 된다. 투밈은 블록 순서를 뒤섞거나 재편해버리는 문제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해시레이트를 높이거나 조정하지 않고도 이른바 블록 섞기 공격(reorg attack)을 기술적으로 예방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면 블록 여섯 개 이상 순서를 바꾸지 못하는 코드를 짜서 실행할 수도 있다. 위의 두 가지 방법 중에 하나만 제대로 시행하더라도 비트코인(BTC)과 비슷한 채굴 효율을 기록하며 비트코인 ABC 블록체인은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비트코인 ABC의 채굴자들이 비트코인 SV의 공격을 무마하는 차원에서 먼저 공격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투밈은 "비트코인 ABC가 해시파워가 더 높으므로 공격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라며 선을 그었다.

"비트코인 ABC 블록체인을 지지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스스로 세운 원칙에 따라 암호화폐를 운영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코인을 만들고 이를 운영하며 혁신을 추구하는 일이 다른 이의 허락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 ABC는 해시파워를 비트코인 SV를 파괴하는 데 단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건 기본적으로 우리의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먼저 비트코인 SV를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양쪽 모두 손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비트코인 SV와 비트코인 ABC 채굴자들 모두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코인댄스의 데이터를 보면 비트코인캐시 채굴자는 블록체인이 둘로 나뉘지 않았다면 75% 더 높은 이윤을 누렸을 것이다. 특히 비트코인캐시를 채굴하려고 비트코인의 해시파워를 일부러 비트코인캐시 쪽으로 몰았던 비트코인닷컴의 피해가 크다.

비트코인캐시 가격이 하드포크 이후 폭락한 것도 채굴자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다. 트레이딩뷰의 데이터에 따르면 비트코인캐시는 하드포크를 하루 앞두고 매수 주문이 몰리면서 $504.04까지 가격이 올랐다. 하지만 하드포크 이후 비트코인 ABC의 가격은 $300 언저리에 묶여있다. 비트코인 SV의 가격은 여기에도 한참 못 미쳐 하드포크 이후 반짝 오름세를 기록하며 $170.97을 기록했지만, 현재는 $60 선까지 내렸다.

결국, 하드포크를 단행한 시점에 전체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하면서 ABC나 SV 어느 쪽에 섰든지 간에 적지 않은 손해를 보지 않고 배길 방법이 없었다. 비트코인캐시 측의 잘못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암호화폐 가격이 일제히 폭락한 탓에 갓 태어난 두 암호화폐의 가치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당분간 시장에 뚜렷한 반등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비트코인 ABC와 SV 모두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계기를 마련하기 어려울 거란 분석이 나온다.

디지털 결제 네트워크 프로미스 프로토콜(Promise Protocols)의 CEO 타릭 루이스는 쉽지 않은 상황이겠지만, 두 블록체인 모두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으로 내다봤다.

"비트코인 ABC와 비트코인 SV 모두 살아남을 것이다. 도지코인도, 비트코인 골드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 살아남지 않았나. 과거 사례를 보면 그 암호화폐를 지지하는 커뮤니티가 무너지지 않는 한 암호화폐도 살아남는다."

둘 다 살아남는다면 여전히 남는 질문은 처음 던진 그 질문이다. 비트코인 ABC는 지금처럼 계속 해시파워를 비롯한 여러 지표에서 우위를 유지하며 비트코인캐시의 적자로 남을까? 아니면 비트코인 SV 측이 공언한 대로 끈질긴 사냥 끝에 언젠가 비트코인 SV가 쓸 수 있는 자원을 모두 동원해 비트코인 ABC를 공격해 끌어내리게 될까?

로저 버가 트위터에 남겼듯이 지금처럼 갈등이 계속되면 마지막에 남는 쪽도 진정한 승자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전쟁에서 승자는 없다. 한쪽이 다른 쪽보다 피해를 좀 덜 보고 상황이 좀 더 나은 패자가 될 뿐.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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