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16일 암호화폐 토큰을 판매한 업체 두 곳에 증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징계를 내렸다. 증권에 해당하는 암호화폐 토큰을 등록하지 않고 판매했다는 것이 징계 사유였다. SEC의 결정이 ICO에 대한 본격적인 징계의 신호탄이 되리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작 가장 중요한 사실이 간과되고 있어 그 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그 전에 정확히 SEC의 결정이 무엇이었는지부터 다시 살펴보자.

증권거래위원회는 에어폭스(Airfox)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캐리어이큐(CarrierEQ Inc.)와 파라곤 코인(Paragon Coin Inc.) 두 곳에 사기 혐의는 적용하지 않고 토큰을 증권으로 등록하지 않고 판매한 혐의만 적용해 판매 정지 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이제 ICO는 끝났다"는 식의 과장된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SEC가 본격적으로 규제를 집행하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끝장날 것들이 있긴 있다. 알맹이 기술이나 철학 없이 어쭙잖은 마케팅만 잔뜩 집어넣어 가치를 부풀린 토큰, 아무런 사업 계획도 없이 일단 투자부터 받고 보자는 식으로 진행하는 모금, 남들이 하니까 나도 부랴부랴 대충 겉모양만 따라 하는 ICO 모델은 얼마 가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대신 SEC의 규제가 본격화하면 이제 훨씬 현실적이고 탄탄한 구조를 갖춘 토큰만 살아남는 새로운 단계가 시작된다.

앞서 이달 초 SEC의 기업금융팀장 윌리엄 힌만은 위원회가 앞장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 ICO 안내서를 펴낼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 토큰이 증권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은지를 누구나 명확히 알아들을 수 있게 공표하겠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지난 16일 SEC의 결정과 그에 따른 후속 발표를 자세히 분석했지만, 토큰을 증권으로 분류하는 기준에 관한 명확한 지침은 찾아내지 못했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겨냥한 SEC


SEC의 징계 발표문을 보면 SEC는 ICO보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더 겨냥하고 있다. 이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암호화폐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점에 관한 논의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사진=한겨레 자료사진

 

앞서 SEC는 이더델타(EtherDelta)를 세운 재커리 코번(Zachary Coburn)에게 벌금 38만 8천 달러를 물렸다. 이더델타는 이더리움 기반 토큰을 거래하는 탈중앙화 거래소를 표방한 곳으로, SEC는 탈중앙화 거래소라도 증권법상 증권으로 해석할 소지가 다분한 토큰을 위원회에 등록하지 않고 거래소 영업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규제 대상이 되고, 실제로 규제를 집행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인 셈이다. 이더델타는 SEC가 토큰 거래소를 SEC에 등록하지 않고 운영한 혐의로 징계를 가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당시 증권거래위원회는 징계를 발표하며 "거래소"의 특징을 정의하고, 어떤 조건에서 토큰 거래를 중개하고 관장하는 서비스가 SEC에 사업 등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사실상 토큰을 주고받는 플랫폼은 예외 없이 SEC에 거래소로 등록해야 한다고 봐도 무방한 내용이었다.

두 달여 전 뉴욕주 검찰의 암호화폐 거래소 보고서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기어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당시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대대적인 반발을 불러온) 보고서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가상 자산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 가운데 현재 운영되고 있지만 주 정부나 연방정부 산하 규제 기관에 등록하지 않았고, 관련 상품 법을 따르지도 않는 플랫폼"이라고 규정했다. 증권거래위원회와 뉴욕주 검찰은 관할하는 지역이나 기관도 다르고, 규제를 집행하는 방법도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같은 목표 아래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뉴욕주 검찰은 또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디지털 거래소에서는 토큰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직접 자산을 거래하는 형식이라 투자자들이 지는 위험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전통적인 거래소에는 브로커, 딜러, 혹은 두 가지 일을 같이하는 브로커-딜러가 있어 투자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줄여준다. 암호화폐 세상에서는 적어도 아직은 거래소가 거래를 중개, 관장하며 브로커와 딜러의 역할도 같이 하고 있다. 규제 당국이 암호화폐 거래소의 운영을 효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면 ICO와 토큰 판매에 따른 증권법 위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공정한 거래소란 무엇인가


또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SEC가 아직 거래소에 직접 징계를 내리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더델타가 증권법을 어겼다며 징계를 내린 건 거래소가 아니라 거래소를 세웠다가 지난해 말 지분을 처분해 더 이상 거래소의 대주주도 아닌 창립자였다.

그러므로 앞으로 어떤 거래소가 SEC에 증권을 판매한다고 신고하지 않고 영업한 데 대해 징계나 제재를 받게 될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또한, 거래소들이 자발적으로 증권을 판매한다고 신고함으로써 SEC의 규제를 피해 가려 할지도 주목해서 지켜볼 대목이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본다면 그때 가서 증권거래위원회가 사전에 아무런 언질도 없이 규제를 강행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규제가 자리를 잡고, 암호화폐 거래소들도 규제 시스템 내에서 영업할 수 있게 된다면 반길 일이다.

현재 암호화폐 업계와 시장의 관심은 온통 증권으로 등록하는 데 따르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수많은 ICO 프로젝트가 도산할 위기라는 데 쏠려 있다. 그렇게 소멸되는 ICO만큼 해당 토큰에 돈을 투자한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게 된다. 증권거래위원회의 결정이 미치는 여파가 단지 규제 관련 규정을 몇 가지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존폐를 좌지우지할 만큼 지대하기 때문이다.

거래소들이 SEC에 증권 판매 업무를 신고하고 영업해야 한다면 암호화폐 자산도 근본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사업 모델에 따라 몇몇 분야는 지각변동이 예고되며, 특히 규제를 따르는 데 필요한 각종 서류 작업과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예 암호화폐 거래소에 규제 당국과 필요한 부문을 협의하고 조율하는 부서가 따로 생길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거래를 중개하고 관장하는 중개인을 제대로 검증하고 감시해 거래가 일어나는 기본 구조를 투명하고 탄탄하게 하는 일이므로, 규제 당국과 거래소, 관련 기업들이 협력해 훨씬 더 분명한 지침을 바탕으로 암호화폐 거래를 진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글을 쓴 노엘 애치슨(Noelle Acheson)은 기업 분석 전문가로 코인데스크의 Product 팀 소속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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