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스톨만. 이미지=Wikimedia Commons/NicoBZH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free software movement)의 창시자 리처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은 “자유주의자(libertarian)”라는 용어에 관해 이야기하다 갑자기 말을 멈추고는 “저기요?”라고 물었다.

내가 듣고 있다고 말하자 나한테 한 말이 아니라고 했다. 내 목소리도 자신의 목소리도 아닌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자유”라고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런 소리를 자주 들으시나요?”라고 묻자 스톨만은 그렇다고 하며 “아는 사람 목소리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잡음이 들려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스톨만에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NSA나 FBI 요원들에게 “스노든의 선례를 따르라”며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이니 그럴 법도 하다.

스톨만은 전통적인 사이퍼펑크(cypherpunk, 암호기술을 이용하여 기존의 중앙집권화된 국가와 기업구조에 저항하는 사회운동가)의 특징은 다 갖춘 사람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추종자인 데다 70년대와 80년대를 주름잡은 해커 출신이고, 익명성과 프라이버시 운동가이며 지속적으로 자유를 주창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스톨만이 비트코인과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암호화폐 옹호론자들도 나타났다.

하지만 김빠지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톨만은 비트코인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이야기가 갑자기 끊기기 전에 스톨만은 비트코인 얼리 어답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우익 인사들은 얼리 어답터라는 호칭을 얻을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비트코인 마니아들의 “반사회주의(anti-socialism)”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유에 대한 견해가 더 “자유주의적(libertarian)”이라고도 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스톨만이 세상에 나온 지 10년 된 비트코인 기술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정치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는 비트코인을 사용해본 적이 없어요.”

스톨만이 말했다. 스톨만은 미묘한 구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GNU와 리눅스라는 용어 간의 차이에 대해 9천 단어 분량의 설명문을 작성한 적도 있다.

GNU는 스톨만이 1983년에 제안한 자유 소프트웨어만을 사용하는 운영 시스템이다.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가 몇 년 후에 만든 리눅스는 커널(kernel, 오픈 소스 모놀리딕 유닉스 계열 컴퓨터 운영체제)이다. 많은 사람이 둘을 패키지로 묶어 “리눅스”라고 부르지만, 스톨만은 정확한 용어는 GNU/리눅스나 GNU라고 주장한다.

또한, 스톨만은 자유 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간의 차이에 대해서도 3천 단어 분량의 글을 썼다. 자유 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둘 다 지지하는 사람들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연구하고 변경하고 재배포할 자유를 주장하지만, 스톨만은 둘의 유사점으로 인해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이 강조하는 자유와 인권에 대한 “매우 중요한 도덕적 의견 불일치”가 가려진다고 말한다.

스톨만이 창립한 GNU 프로젝트는 암호화폐에 기초한 탈러(Taler)라는 대안적인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만들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탈러가 암호화폐는 아니다.

탈러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크리스천 그로소프는 탈러가 “블록체인 이후의” 세상을 위해 설계되었다고 말했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


이 기술이 블록체인 이후의 세상을 이미 생각하고 있을 만큼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톨만에게 비트코인은 디지털 결제 시스템으로 부적절하다.

비트코인의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이 약하다는 점이 스톨만에게는 가장 큰 불만이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다양한 종류의 가게에서 익명으로 구매하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비트코인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스톨만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사용하게 되면 회사,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사용자를 식별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비트코인을 직접 채굴하는 것은 큰 투자이고, “채굴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도 했다.

소위 말하는 프라이버시 코인에 대한 생각을 묻자 스톨만은 이 코인들의 가능성에 대해 평가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있다고 말하며, 이 전문가가 보안이나 확장성 등 코인들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지적해줄 것이라고 했다.

“비트코인이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면, 지금쯤 이미 내가 비트코인을 사용해보았을 겁니다.”

 

“완벽한” 프라이버시는 없다


GNU 프로젝트의 탈러는 암호화폐 프로젝트와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 가장 큰 공통점은 탈러와 암호화폐의 출범 의도가 같다는 것이다.

탈러의 계보부터 살펴보자. 탈러는 데이비드 차움이 개발한 암호화폐 기술인 블라인드 서명에 근간을 두고 있다. 데이비드 차움의 디지캐시(DigiCash)는 보안이 확실한 전자화폐를 만들고자 했던 초기 암호화폐였다. 또한, 탈러가 정부와 결제를 처리하는 회사의 감시에 저항하는 디지털 화폐를 만들고자 하는 것도 다양한 암호화폐 프로젝트와 결을 같이한다.

그러나 탈러는 중앙화된 기관을 우회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결제는 채굴자들의 P2P 네트워크보다는 공개적으로 중앙화된 “거래소”들에 의해 처리된다. 그로소프는 이러한 시스템이 “위험한 자금 세탁 등의 활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탈러는 비트코인과 기타 암호화폐들의 특징인 반정부 기조를 깨고 탈세 등을 방지하기 위한 설계를 명시적으로 채택했다.

“국가는 많은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펀드 리서치, 펀드 교육, 모든 이를 위한 의료 서비스 제공, 도로 건설, 질서 확립, 정의 실현 등을 권력 있고 부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제공해야 하고, 여기에는 많은 돈이 들죠.”

많은 비트코인 지지자들의 정치적인 견해와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스톨만은 이어서 이런 말도 했다.

“완벽한 프라이버시가 실현되면 범죄를 전혀 조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완벽한 프라이버시도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범죄를 수사해야 하니까요.”

따라서 탈러 시스템에서 프라이버시는 디지털 현금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에게만 국한된다. 사용자들은 감시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는데, 그로소프는 “코인이 교환될 때 거래소에서는 각자 다른 고객들이 똑같이 보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식별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누구도 누가 토큰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거죠.”

반면 금액을 지급받는 상인들(이나 다른 이들)은 정부가 소득을 기반으로 세금을 책정할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대금을 지급받게 된다. 따라서 세금을 탈루하기 훨씬 어려워지는 것이다.

 

암호화폐를 위한 공간?


탈러는 암호화폐나 네이티브 자산(탈러나 탈러코인 등이 없다)이 아니지만, 기존의 자산에 대한 새로운 결제 서비스로서 암호화폐를 지원할 수 있다.

(시스템이 지원할 첫 화폐인) 유로와 마찬가지로 탈러를 사용해서 비트코인처럼 미국 달러와 일본 엔을 송금할 수 있다.

또한 탈러가 블록체인은 아니지만,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이 시스템 내 은행에서 작동할 수 있다.

사용자들이 탈러 월렛으로 유로를 옮기도록 해 주기 위해 탈러 거래소는 돈을 인출할 수 있는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과 연계해야 할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은 탈러 거래소와 연계해서 사용자들이 암호화폐를 사용하도록 해줄 수 있다.

그로소프는 은행 예금을 탈러 디지털 월렛으로 옮기는 것을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찾는 행위에 빗대어 설명했다. 월렛 안의 코인들은 사용자의 기기에 저장되고, 사용자가 월렛 키를 잃어버리면 이것을 복구할 방법이 없다. 암호화폐의 프라이빗/퍼블릭 키와 비슷하다.

현재 탈러는 탈러 월렛으로 예금을 인출할 수 있게 하려고 유럽 은행들과 논의 중이며, 탈러 시스템에서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으로 다시 예금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웹사이트 론칭일은 여전히 2018년 안으로 예정되어 있지만, 그로소프는 은행들과의 논의가 얼마나 빨리 마무리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상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탈러의 기능(규제 준수는 아마 제외하고)에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 그 자체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그로소프는 원칙상 탈러가 연결하는 “등록 기반 시스템”은 은행 계좌가 될 수도 있고, 이론상 블록체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탈러가 견인력을 얻기 시작하면, 개발자들은 은행이나 블록체인, 또는 자신들이 선호하는 등록 시스템을 시도해볼 수 있다. 그로소프의 말처럼 어쨌든 탈러는 “자유 소프트웨어”니까 말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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