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뉴욕주는 세계 최초로 암호화폐를 규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뉴욕 금융감독청은 암호화폐 관련 기업이 주 안에서 기업활동을 하려면 “비트라이센스(BitLicense)”를 취득해야 한다고 정했다. 당시 금융감독청장이었던 벤 로스키는 관련 법 제정을 공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가진 신흥 기업들이 더욱 견실한 금융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장려하고 또 지원하고자 한다. 규제기관이 정한 기준이 항상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기준을 세우고 시작해야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스키가 세운 기준은 다소 빗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2015년 당시까지만 해도 소규모였고 여전히 유동적이던 암호화폐 업계를 통제하는 규칙을 빠른 속도로 공식화했다.

비트코인 전문가들과 기업가들은 지나친 규제를 지켜야 하는 부담과 비용 때문에 새로운 기업 활동이 억제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공개된 법 초안에는 4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은 비판적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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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이 시행되자, 비트코인 관련 스타트업 상당수가 – 크라켄(Kraken), 셰이프시프트(Shapeshift), 비트파이넥스(Bitfinex), 폴로니엑스(Poloniex) 등 – 뉴욕을 떠났다. <뉴욕 비즈니스 저널>은 “비트코인 대탈출로 뉴욕의 비트코인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그리고 ‘비트코인 대탈출’ 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뉴욕을 떠난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뉴욕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거래소를 제외하면 돌아온 기업도 몇몇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먼저 자금 규모로 1억 달러가 넘는 금융계 분산원장 컨소시엄 R3는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다. 디지털애셋홀딩스(Digital Asset Holdings), 심바이온트(Symbiont), 액소니(Axoni)와 같은 자금 집중형 블록체인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뉴욕 월스트리트의 중추라 할 수 있는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제이피모건(JPMorgan), 뉴욕증권거래소의 모회사인 인터콘티넨털거래소(ICE) 같은 기업도 암호화폐 시장에 발을 들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금융 기업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이더리움 기반 벤처 스튜디오인 콘센시스(Consensys)는 지난해 브루클린 본사 직원을 100명에서 400명으로 증원했다. 최근에 대규모 정리해고를 발표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현재 세계 각지에서 10여 개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분산형 앱을 위한 새로운 인터넷”이라는 슬로건 아래 블록체인 인터넷을 개발, 운영하는 블록스택(Blockstack)도 본사가 뉴욕에 있다. 뉴욕에서 열리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모임에는 참석 인원이 각각 5천 명이 넘는다.

비트라이센스라는 규제 조치에도 뉴욕의 암호화폐는 여전히 건재하다. 또한, 비트라이센스는 최초 입안자가 의도했던 것처럼 혁신적 규제 모델로 자리 잡지도 못했다. 실제 규제를 집행하고 운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는 법원 등 사법부는 비트라이센스의 지나친 규제 조항들을 배제했다.

 

규제기관의 딜레마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보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분야에서 규제기관은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다.

너무 섣불리 제도를 도입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진부한 규칙으로 신기술을 옭아매려 든다면, 기업은 혁신적 활동을 멈추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규제 시기를 늦췄다가 자칫하면 일반 대중이 피해를 볼 수 있고, 훗날 기술을 도입하는 데 훨씬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만약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이 자명하면 규제기관은 이를 마땅히 저지해야 한다. 그러나 비트라이센스의 경우처럼 불분명한 규제는 불확실성을 높일 뿐이다. 물론 규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명한 규제기관이라면 혁신적 기업활동을 장려하면서도 문제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1994년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013년 뉴욕이 비트코인과 관련해서 겪은 상황과 유사한 문제에 직면한 바 있다. ‘관세를 내지 않는 부적격 업체가 인터넷을 통해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해 달라는 청원이 접수되었다. 당시 새로이 등장했던 인터넷 전화 서비스 업체들, 즉 VOIP 스타트업들은 기존 전화회사들이 따라야 했던 가격 책정, 서비스 기여, 소비자 보호, 긴급상황 서비스 등의 규제 밖에 있었다.

FCC는 과잉 규제도 과소 규제도 아닌 중도의 길을 택하는 데 성공했고, VOIP 서비스의 성숙에 발맞춰 점차 규제를 확대해 나갔다. 오늘날 일반전화를 사용하는 미국 가정 중 상당수는 VOIP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동시에 스카이프(Skype)나 페이스타임(Facetime), 왓츠앱(WhatsApp) 등의 실시간 영상통화 서비스도 새롭게 등장하여 기존 전화와 다른 혁신적 서비스로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암호화폐 규제가 FCC의 선례를 따를 수 있다면, 암호화폐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기존의 판을 뒤엎는 혁신적인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규제가 무조건 사라진다고 유리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력을 이용해서 웹 기반 서비스 업체들을 위협했을 때, 미국 정부는 독점금지법을 통해 이를 막고 나섰다.

만약 정부의 규제가 없었다면 웹브라우저 경쟁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모든 전자상거래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계획한 대로 소정의 수수료를 부과했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스크톱 장악력은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고, 지금 우리가 아는 인터넷과는 완전히 다른 인터넷 환경이 구축됐을 것이다.

또한, 정부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용자의 신뢰도가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감시 기관이 있어서 사람들은 ‘가상 거래’라는 낯설고 새로운 기술에 보다 쉽게 마음을 열고 페이팔로 결제를 하고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고 넷플릭스를 구독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터넷 지지자들은 정부가 개입하여 망중립성 원칙 및 개인정보 보호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망중립성은 통신망 제공업체가 다른 서비스 제공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막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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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의 징표


물론 어떤 기술에 대해 어디까지 감시를 해야 하고, 어디까지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려도 좋을지 선을 긋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범죄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은 다른 기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블록체인을 이용하려 들 것이다. 그러면 정부는 어느 정도 과잉 반응을 보일 것이고, 적법한 기업활동에도 악영향을 주는 법규를 제정할지 모른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일이 처음 겪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규제에 대한 요구는 암호화폐 혁신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블록체인이 성숙해지고 있다는 징표라 할 수 있다.

누가 어떻게 주장하건 사토시 나카모토는 ‘신뢰가 필요하지 않은(trustless)’ 기술을 창조한 것이 아니다. 암호화폐를 비롯해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들은 고비용이 드는 신뢰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더 신뢰할 수 있는 거래 방식을 구현하려 한다. 시가총액 수천억 달러의 암호화폐가 아무런 물질적 담보 없이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집단적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가발전적 신뢰를 보여준다.

법과 규칙, 통제는 때로 고압적 강제 장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의 목표는 결코 처벌이 아니다. 오히려 게임의 규칙을 정함으로써 행동의 자유를 열어주는 것이 목표이다.

축구 경기에서 핸들링 반칙을 범한 선수에게 심판이 카드를 꺼내 들었다면 그것은 혁신적 경기 방법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게임의 원칙을 지키며 축구다운 축구를 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사기, 절도, 범법 행위, 부적절한 규제 차익, 통제권 상실, 부정부패, 조작 등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장의 성장에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그리고 그 변화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법과 규제와 더욱 친해질 준비를 해야 한다.

 


 

* 케빈 워바흐(Kevin Werbach)는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경영대학원에서 법률과 경영 윤리를 가르치는 교수다. 저서로는 <블록체인과 새로운 신뢰의 구축(The Blockchain and the New Architecture of Trust)>가 있다. 칼럼에는 이 책의 내용 일부가 포함됐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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