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데스크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이 지나온 2018년을 돌아보고 새해를 전망하는 전문가들의 글을 모아 ‘2018 Year in Review’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을 파르잠 에사니(Farzam Ehsani) 디지털 자산 거래 플랫폼인 VALR,com 공동창업자이며 최고경영자입니다.

코인데스크 2018 리뷰


지난해 암호화폐 시장이 약세를 보인 가운데도 기업의 블록체인 마케팅은 활기를 띠었다. 기업들은 마치 블록체인 기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양 블록체인 도입 사례를 잇달아 언론을 통해 홍보했다.

당신이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꿀 이 발명품에 환호했을 것이다. 전화기 덕분에 부부간의 소통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을 법하다. 하지만 전화기는 소통하는 방식만 바꾸었을 뿐 부부간의 대화를 개선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블록체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과대 선전되고 있는 지금의 양상은 전화기가 발명되었을 때와 아주 흡사하다. 블록체인은 강력한 도구이지만, 생각만큼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이 세상에서 누구를 ‘신뢰’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한다. 부패한 정부와 탐욕스러운 기업, 그리고 조작된 선거 제도 등 믿지 못할 제도를 신뢰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등기소에서 공급망 관리, 선거 제도, 신원 확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프로세스가 송두리째 바뀌기 때문에 인간, 기관, 정부 등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주장은 근거 없이 진실을 오도하는 허황한 이야기일 뿐이다.

 

디지털 혁명


블록체인이 매우 유망한 기술이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물리적 세계가 아닌 디지털 세계에 적용되는 기술이다. 다시 말해서 블록체인 기술은 디지털 자산, 다시 말해서 블록체인상에서 만들어지고, 거래되고, 때에 따라 폐기되는, 순수한 디지털 자산의 중개인 역할을 대체한다. 암호화폐가 좋은 예다. 블록체인에 기록된 내용이 순수한 디지털 자산인 암호화폐의 발행과 소유권을 정의하는 유일한 문서다. 블록체인에 기록된 내용이 디지털 자산의 공식적인 장부 역할을 하므로 다른 데이터베이스나 물리적 장부와 대조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물리적 세계에 존재하는 자산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부동산을 예로 들어 보자. 블록체인 기술을 부동산에 이용하려면 당장 여러 가지 문제가 따른다. 블록체인의 특징 중 하나는 디지털화한 소유권이다. 다시 말해서, 프라이빗키를 가진 사람이 상응하는 퍼블릭 어드레스에 있는 자산을 소유하게 되고, 그 자산을 소비하거나 이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그렇지만 프라이빗키를 분실할 경우 소유권도 함께 잃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

이 디지털 소유권은 신뢰할 수 없는 인간과 기관을 중개인으로 삼을 필요가 없도록 해준다. 바로 “검열에 저항하는” 블록체인의 특성 덕분이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전통적인 데이터베이스가 효율적이다


그렇다면 어떤 국가가 모든 부동산을 블록체인에 등록한다고 가정하고, 여러분이 집을 소유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프라이빗키를 분실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어떤 블록체인을 사용하고, 누가 노드를 운영하고, 어떤 알고리듬을 사용하고, 누가 소프트웨어와 프로토콜을 유지·보수할 것인지 등 지엽적인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당신이 집의 프라이빗키를 분실하면 더는 소유주가 아니고, 팔 수도 없게 될까?

분명 당신의 “잃어버린 집”을 되찾을 수 있는 절차가 있을 것이다. 만일 이 절차에 따라 당신의 집에 대한 권리를 되찾게 해달라고 중앙 기관에 요청하고, 이 기관이 블록체인의 기록을 뒤집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하자. 집을 되찾아서 다행이긴 한데, 그렇다면 ‘바꿀 수 없는 데이터베이스’라던 블록체인의 의미가 퇴색하는 일 아닌가?

또한 중앙 기관이 당신의 집에 대한 소유권을 다시 회복해 줄 수 있다는 것은 부패한 관리가 당신의 집을 다른 사람에게 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 된다. 누군가 당신의 땅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 경우는 또 어떠한가? 당신이 프라이빗키를 가지고 있다 해도 내쫓을 수도 없고, 재산권을 주장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당신 땅에서 나가도록 무단 점유자를 설득하든 혹은 협박하든 당신이 직접 해결에 나서던가, 아니면 당신 땅에 대한 권리를 지켜 달라고 공권력에 호소해야 한다. 블록체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뜻이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정부가 여러분의 권리를 보호해주리라고 신뢰한다면, 데이터베이스도 정부에 믿고 맡길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하드포크가 발생하면 블록체인에 기록된 물리적 부동산은 어떻게 처리될까?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는 하나의 부동산에 대해 두 개의 토큰이 각각 다른 블록체인에 존재하게 된다. 이 경우 중앙 기관이 개입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하지만 중앙 기관이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탈중앙화한 블록체인이 존재하는 이유를 부정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중앙 기관이 분산원장을 운영하고, 하드포크를 막는다면 애초에 블록체인 대신 전통적인 데이터베이스를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비용도 절감하고 효율성도 높일 수 있으므로 블록체인은 필요가 없다.

과거 수년간 조지아, 가나, 온두라스, 스웨덴 등 여러 나라가 토지 등록을 관리하기 위한 블록체인 활용 방안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일부 프로젝트는 아직 연구나 시험 단계에 있고, 나머지는 진전이 없다고 알려졌다.

 

블록체인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2019년에도 블록체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활용 사례가 블록체인의 외피를 쓴 채 화두를 장식할 것이다. 토지 등록은 블록체인 기술이 물리적 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을 탈바꿈시킨다는 잘못된 생각의 한 예에 불과하다.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 사이의 장부 대조는 최소한 현재와 예측할 수 있는 미래의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물리적 세계에 살고 있으므로 물리적 자산을 상징하는 디지털 토큰이 블록체인에서 발행되면 이 디지털 토큰이 실제로 물리적 자산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이 검증 작업을 한다는 것은 현실성도 없을뿐더러 경제적으로도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다. 검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신뢰하는 중개인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블록체인은 이런 종류의 ‘신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이제는 누구나 전화기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잘 구분한다. 같은 맥락에서 세상 사람들이 블록체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해결할 수 없는 이유를 머지않아 구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저작권자 ©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