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형 거래소 뱅코(Bancor)는 지난 2017년 ICO 열풍의 덕을 톡톡히 본 업체 가운데 하나다. 유동성이 낮은 이더리움 토큰까지도 쉽게 거래할 수 있는 거래소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워 1억 5천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지금 기준에서 보면 너무나 쉽게 조달했다.

반대로 지난해 11월 암호화폐 겨울의 한가운데 닻을 올린 분산형 거래소 유니스왑(Uniswap)은 비영리 단체인 이더리움 재단으로부터 지원받은 10만 달러 외에는 따로 확보한 자금이 없다. 투자금 규모에서는 가히 상대되지 않는 유니스왑이 뱅코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뱅코는 벌써 출시한 지 일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거래소 운영에 필요한 여러 자원과 경험도 유니스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다. 그런데도 두 거래소에서 프로그램을 짜서 처리하는 이더리움 거래 규모는 어느덧 엇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블록체인 분석 회사 블록리틱스(Blocklytics)의 자료를 보면 유니스왑은 지난 13일, 사상 처음으로 일일 거래량에서 뱅코를 앞질렀다. 이날 유니스왑에서는 총 54만 1,408달러어치 이더가 거래됐는데, 이는 뱅코에서 처리한 거래량보다 19만 6,478달러 많았다.

뱅코는 이내 유니스왑을 다시 따라잡았다. 다음날인 14일 거래량 차이를 좁히더니 이틀 뒤인 15일에는 이더리움 분산형 거래소 거래량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코인데스크가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자료가 집계된 가장 최근인 지난 17일 기준 뱅코 플랫폼에서 처리된 거래량은 57만 1,395달러로 같은 날 유니스왑의 거래량보다 13만 7,866달러 더 많았다.

이번 자료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유동성을 높이겠다며 출범한 두 분산형 거래소(DEX)의 최근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줄 뿐이지만,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유니스왑이 뱅코의 단점들을 보완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리라는 기대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유니스왑에서는 뱅코처럼 자체 토큰을 사용해 거래하지 않아도 된다.

이더리움 담보부 대출 플랫폼 컴파운드(Compound Finance)의 최고경영자 로버트 레쉬너는 코인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이전에는 뱅코 모델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유니스왑이 등장하자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유니스왑은 자체 토큰을 없애고 단순한 알고리듬을 사용한다. 기존 거래보다 훨씬 비용이 덜 들고, 장기적으로 시장에 더 많은 유동성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자료가 공개되면서 유니스왑 측은 새로운 자신감을 갖게 됐다. 1년도 더 먼저 업계에 발을 들인 뱅코가 유리한 상황을 활용해 우위를 구축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유니스왑 프로젝트를 시작한 헤이덴 아담스는 유니스왑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 플랫폼은 이더리움으로 거래하려는 사람들이 쉽게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한다. 덕분에 유동성 풀이 엄청나게 커졌고, 이는 다시 더 많은 거래와 거래액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뱅코는 이더리움 거래에 국한해서 생각하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꼴이라고 반박했다. 유니스왑과 달리 뱅코에서는 둘 이상의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취급되는 다양한 암호화폐를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데이터를 보면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규모도 작고 아직 걸음마 단계인 유니스왑이 이더 거래 부문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블록리틱스는 2019년 들어 지금까지 길지 않은 기간에 유니스왑의 거래액이 열 배 이상 상승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뱅코와 유니스왑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블록리틱스 공동창립자 캘럽 셔리던은 두 프로젝트의 성격 자체를 보더라도 단순 비교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제3의 기관에서 유동성이 더 큰 보편적인 토큰으로 바꾼 다음에 토큰 거래를 중개한다는 점에서는 두 플랫폼이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뱅코 플랫폼에서 REP를 ZRX로 바꾸려면 우선 REP를 뱅코의 자체 토큰 BNT로 바꾼 다음 이를 다시 ZRX와 교환해야 한다. 유니스왑에서는 자체 토큰 대신 이더(ETH)가 중간 토큰의 역할을 한다.

블록리틱스는 두 거래소의 거래 건수를 계산할 때 중복을 피하고자 한 건의 주문을 한 건의 거래로 간주해 그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몇 건의 세부 거래가 이뤄졌는지는 반영하지 않았다. 다만 블록리틱스가 수집한 자료를 보면 다른 지표들에서도 뱅코가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현재 취급하는 토큰의 가짓수도 뱅코가 유니스왑보다 76개 더 많았다. (ERC-20 토큰 규정에 따라 발행한 이더리움 토큰 기준)

뱅코 측은 2월 3일부터 9일 사이 거래액이 367만 달러였다고 코인데스크에 밝혔다. 같은 기간 블록리틱스가 집계한 수치는 289만 달러다. 뱅코는 일별 거래액을 제공하지 않았고, 블록리틱스 자료에서는 EOS 거래가 제외됐다.

또한, 유니스왑이 메이커다오(MakerDAO)의 이른바 두 토큰 시스템(two-token system)에 쓰이는 거버넌스 토큰인 MKR 토큰을 취급하고, 덩달아 메이커다오의 스테이블코인인 DAI 토큰도 취급한 것이 거래량 상승에 크게 이바지한 측면도 있다. 뱅코는 유니스왑보다 개별 거래에 더 집중하고 있고, 계정 수도 더 많다.

뱅코가 유니스왑에 대한 비교우위로 내세울 수 있는 또 다른 장점은 둘 이상의 블록체인(현재는 이더리움과 EOS)을 취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유니스왑은 이더리움 블록체인만 취급한다. 어떤 면에서는 뱅코와의 직접적인 비교를 어렵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뱅코의 대변인 네이트 힌드맨은 코인데스크에 보낸 이메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더처럼 블록체인의 기본 토큰을 거래의 중심축이 되는 주요 토큰으로 쓰고 의존하는 것은 전체 거래소 네트워크와 프로토콜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ICO에 대한 의문


뱅코와 유니스왑을 비교하다 보면 토큰 판매와 투자금 유치에 관한 오래된 질문들을 다시 묻게 된다. 특히 굳이 새로운 토큰이 필요하지 않은 사업에 ICO를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뱅코의 ICO가 당시 판매액에서 신기록을 세우자 코넬대학교 연구진을 포함한 전문가들은 BNT라는 자체 토큰을 쓰는 것 자체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런데 막상 거래가 시작되자 BNT 거래량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두 가지 토큰을 쉽게 교환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다는 뱅코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2018년 뱅코 시스템에 보안 사고가 나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졌지만, 거래소를 찾는 사람들은 줄지 않았고 뱅코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뱅코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체 토큰을 사용하는 데 있어 갖은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주에 뱅코는 BNT 토큰이 필요한 이유를 트위터에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BNT를 매개로 한 거래는 총 120만 건으로 지갑 4만 개가 관여했으며, 거래액은 15억 달러에 육박한다. BNT 총공급량의 10%가량은 암호화폐를 교환하는 자동화된 마켓메이커가 보유한 채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즉 BNT는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유틸리티 토큰인 셈이다.”

그러나 어느 기준으로 보더라도 뱅코보다 작고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니스왑의 성장세가 놀랍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거래소의 자체 토큰을 활용해 분산형 거래소를 운영하더라도 프로토콜을 잘 설계하면 뱅코와 충분히 경쟁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아담스는 현재 유니스왑이 서비스를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니스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통합이 이뤄지면 거래액과 그에 따른 수수료 수입이 증가할 것이다. 프로젝트의 수익성도 자연이 높아질 것이고, 이는 다시 유동성 공급의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Brady Dale Brady Dale is a senior reporter at CoinDesk. He has worked for the site since October 2017 and lives in Brooklyn.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저작권자 ©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