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파이넥스 사태의 역설…은행·당국 개입해야 암호화폐 세상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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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J Casey
Michael J Casey 2019년 5월12일 16:00
출처=셔터스톡


5년 전 홍콩에서 비트코인 초기 스타트업들을 만나 가장 큰 어려움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한결같이 계좌를 개설해주는 은행을 찾기 힘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트코인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분야였다. 그러니 홍콩 은행이 앞장서서 거래를 거절한 것도 아니었다. 이들과 거래하는 미국 은행들이 매우 강력한 규제를 엄격히 적용하고 있었다. 미국 은행들은 홍콩 은행들에 유난히 까다로운 고객신원확인(KYC) 절차를 요구했다. 홍콩 은행들은 달러를 공급하는 미국 은행과 관계가 틀어지면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 자연히 은행 문을 두드리는 비트코인 기업들을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미국 달러가 세계 기축 통화인 상황에선, 이처럼 미국 금융 기관과 규제 당국의 영향력은 전 세계에 미친다. 홍콩의 사례처럼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혁신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하게 된다.

2019년으로 돌아와 보자. 최근 홍콩의 한 유명 암호화폐 거래소와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파나마 금융 업체 사이에 벌어진 사태를 보면 5년이 지난 오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뢰할 만한 금융 기관들은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출을 해주거나 관련 금융 업무를 맡기를 여전히 꺼린다. 때문에 암호화폐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대안을 찾아 나서며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암호화폐 업계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아있다.

수년간 암호화폐 업계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일지 모른다.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파이넥스(Bitfinex)가 8억 5천만 달러의 고객 자금이 동결된 것을 은폐하고 이에 따른 손실을 메우기 위해 계열사인 스테이블코인 테더(Tether)의 예치금을 몰래 끌어다 쓰려던 것이 발각돼 뉴욕 검찰이 두 업체의 모회사를 기소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대체로 은행권과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희망이 보인다.

새로운 암호화폐 기술과 사업 모델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오늘날의 은행들은 어쩔 수 없이 욕심과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고, 결국 암호화폐 기업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비트파이넥스와 테더, 결국은 금융 접근성 문제


아직은 여전히 암호화폐 기업과 선뜻 거래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은행이 대부분이다. 비트파이넥스와 테더 사태도 결국 암호화폐 기업이 신뢰할 만한 거래 은행을 찾지 못한 데서 문제가 비롯됐다.

비트파이넥스의 건전성에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문제가 된 파나마 결제 업체 크립토 캐피털(Crypto Capital)에 비트파이넥스가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애초에 정상적인 은행과 거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뉴욕 검찰은 비트파이넥스가 크립토 캐피털에 보냈다가 동결된 자금 8억 5천만 달러를 급하게 융통하기 위해 테더의 예치금을 몰래 빌려 썼다고 발표하며, 이 8억 5천만 달러를 경영 손실이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비트파이넥스 같은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평소에 지금보다 쉽게 일반 은행들과 거래를 틀 수 있었다면, 테더 같은 스테이블코인에 의존하지 않고도 편리하게 유동성과 거래소 청산 업무를 관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테더는 2014년 리얼코인(Realcoin)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2015년 이름을 테더로 바꾼 후 비트파이넥스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됐다. 비트파이넥스는 테더 토큰(USDT)을 바탕으로 거래를 개시했다. 테더 토큰은 발행사 테더가 그 가치를 미국 달러화와 1:1로 보장해주는 스테이블코인이다. 비트파이넥스에는 (원래는 은행으로부터 얻었어야 할) 유동성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비트파이넥스가 성장하면서 비트파이넥스와 거래하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늘어났고, 이들 거래소도 같은 용도로 테더 토큰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달러의 역할을 하는 테더 토큰을 사고팔면서 암호화폐와 법정화폐를 자유자재로 교환해 고객들의 거래를 청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머리 아픈 규제를 따라야 하는 은행들과 거래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테더 토큰 한 개를 언제든지 1달러로 바꿔줄 수 있다는 테더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근본적 원인은 같았다.

테더 토큰의 가치를 개당 미화 1달러로 유지하려면 발행한 토큰 총량에 상응하는 달러화를 신뢰할 수 있는 은행에 보관해두고 있어야 한다. 이론적으로 모든 토큰 보유자가 토큰을 달러로 바꿔달라고 할 때 이를 지체없이 바꿔줄 수 없다면 토큰이 1달러의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더에 대한 감사 결과가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테더와 주요 감사 기관의 제휴 관계가 매번 어그러지면서 결국, 제대로 된 감사 보고서를 시장에 내놓지 못했다. 은행으로서는 테더와 거래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스테이블코인의 지위가 흔들리자 발행사인 테더의 신뢰도 추락했다. 토큰 가치는 한때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달러화 대신 테더 토큰을 유동성 공급과 거래 수단으로 사용하는 비트파이넥스도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게 됐다. 크립토 캐피털과의 문제는 깊어져만 갔다.

비트코인을 취급하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제도권 은행과 정상적인 거래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러므로 비트파이넥스와 테더의 사업 모델도 곧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인식, 이번 사태도 결국 여기서 비롯한 셈이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것이 이 이야기의 전부라면, 그 끝은 알 수 없는 어둠 속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비트파이넥스 사태로 비트코인의 유동성과 가격 변동성에 대한 불확실성은 증폭됐다. 비트코인에 대한 금융당국과 은행 규제 담당 부서의 인식은 더욱 나빠졌다.

그러나 끝모를 악순환에서도 빠져나올 방법은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와 리스크 심화, 규제 강화 등 수익성이 낮아지는 악조건 속에서 은행들은 새로운 이윤을 낼 수 있는 사업 기회에 목말라 있다. 암호화폐처럼 암호화 기술을 기반으로 한 여러 자산과 프로젝트들은 은행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이다. 증권형 토큰이 어느 정도 발전해 성숙한 자산이 되어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는다면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과 펀드매니저들에게 보다 폭넓고 효율적으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증권형 토큰은 주식, 채권, 부동산 같은 현물 자산을 기초로 하고 있어 전통적 금융자산의 편의성을 지니면서 기존 규제의 틀 안에 있다. 게다가 중개인 없이 발행할 수 있고 스마트계약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기업 자산 및 지분 현황 관리와 청산, 결제, 거래 조정(reconciliation) 등의 절차도 자동으로 이뤄지는, 효율성은 높으면서도 관리 비용은 낮은 자산이다.

증권형 토큰 발행(STO)은 암호화폐공개(ICO) 만큼 파격적이지 않다. ICO를 통해 공개하는 자산은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자산으로 취급할 수 있는 이른바 ‘소프트웨어 유틸리티’다. 즉 암호화폐 토큰은 해당 코인이 구동되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경제적 보상 체계에 따라 실질적 가치가 매겨진다. 이런 맥락에서 암호화폐 ‘원리주의자’들은 STO를 비판한다. 규제 당국의 인가를 받은 제3자가 토큰의 기반이 되는 자산 가치를 보장할 때만 STO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정부와 규제 당국의 방침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월스트리트 금융 기관들은 그렇기 때문에 STO에 주목한다. 실제로 최근 프랑스의 소시에테제네랄(Societe General)이 이더리움 기반 퍼블릭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STO를 시범적으로 시행한 뒤 STO에 대한 관심은 한층 더 높아졌다.

STO가 활성화되면 금융 기관의 비영업 부서, 즉 백오피스 업무가 불필요해질 수 있다. STO를 위한 시장 조성이나 리스크 관리, 증권 인수 등의 업무에서 얻을 수 있는 수수료는 손실을 그 이상으로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한 조각


그러나 완벽한 STO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한 가지 남아있다. 바로 결제 토큰(payment token)이다.

최근 법정화폐와 연동되는 비교적 발전된 형태의 스테이블코인을 취급하고 지원하는 은행들이 늘어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미니(Gemini), 팩소스(Paxos), 그리고 서클(Circle)과 코인베이스(Coinbase)가 함께 구성한 컨소시엄에서 내놓은 스테이블코인은 테더 토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제도권 금융기관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 이들 코인을 JP모건의 JPM 코인보다 선호하는 은행들이 많은데, JP 모건과 경쟁 관계에 있는 이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당연한 현상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 금융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면서 성장을 이어가면, 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탄생한 일반 암호화폐 시장의 안정적인 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실질적인 유동성을 공급해줄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디지털 자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언젠가는 고객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법정화폐를 맡겨놓고 이를 암호화폐로 바꿔 거래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쿼드리가 사태 같은 일도 더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암호화폐 업계가 전반적으로 성숙해지면서 암호화폐는 보편적으로 통용될 것이고, 법정화폐의 약점을 보완하는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다.

금융은 완전히 탈중앙화되어야 하고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를 대신해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아이러니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그들이 그리는 세상은 제도권 은행과 규제 당국의 개입을 통해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
· Translated by NewsPepper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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