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훈 논스 CEO. 출처=김외현/코인데스크코리아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현대 정치·경제의 ‘주의’(-ism)들은 각각 디지털 시대에 어떤 모습을 갖게 될까. 생산은 무엇이며, 소비는 무엇일까. 민주는 무엇이고, 자유와 평등은 어떤 의미일까. ‘인간의 얼굴을 한 ~주의’를 차용해 이제는 ‘기계의 얼굴을 한 ~주의’가 되는 것일까?

논스 CEO 문영훈(29)씨는 디지털 시대 새로운 경제 모델과 정치 모델이 다시금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본질을 되묻게 할 것이라고 본다. 이드콘 발표를 나흘 앞두고 23일 논스에서 그를 만났다.

-제목(블록체인과 21세기 디지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스케일이 굉장히 크다.

“지금의 10~20대와 그보다 윗세대의 가장 큰 차이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개념일 것 같다. 젊은 세대는 디지털 자산의 가치에 거부감이 없을텐데, 어른들은 실물 가치가 없다고 볼 것이다. 젊은 세대는 점점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례없는 대이동이 진행중이다. 부동산, 자재, 노동력 등의 자원을 투입해 나온 생산물의 배분 등을 놓고 인류 사회가 발전해왔고 정치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그 기반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갔을 때 어떤 정치 시스템을 만들어갈지 논의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은 뭘까?

“자동차 공장을 생각해보면, 원료와 노동력 등 생산수단을 투입해 자동차가 나온다. 그와 마찬가지로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보면 이용자의 각종 데이터를 투입하면, 인공지능(AI)이 이를 가공해 이용자의 다음 행동에 대한 예측을 내놓는다. 곧 인간의 데이터가 생산수단이고 최종생산품은 인간 행동에 대한 예측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은 자원인 데이터를 거대 플랫폼들이 독점한다.”

-거대 플랫폼이 독점하는 구조의 문제는?

감시 자본주의의 시대(The Age of Surveillance Capitalism)라는 책을 최근에 읽었다. 이같은 구조의 디지털자본주의는 인류에 해가 된다며 비판하는 내용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하려면 내 데이터를 모두 내줘야 한다. 게다가 입력 작업은 일종의 디지털 노동이다. 그런데 플랫폼 사업자가 자원(데이터, 노동)도 모두 가져가고, 그 부가가치인 생산품(행동 예측)도 자기들이 상품으로 삼는다. 나는 데이터 주권자로서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지만, 가질 수 있는 건 없다. 플랫폼 사업자는 심지어 신분 증명도 한다. 오프라인에서 개인의 신분 증명을 하는 것은 국가인데, 온라인에서 그들이 국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나를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 온라인 세상의 ‘나’는 점점 중요해지는데 컨트롤할 수 있는 주체가 그들에게 넘어갔다.”

-개인이 찾아와야 한다? 어떻게?

“지금 트위터를 10년 동안 쓰다가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면 기존 자료가 다 사라진다. 그러나 블록체인을 이용한다면, 이용자들이 디지털 노조를 꾸려서 블록체인에 데이터를 올리고 자기들이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어느 플랫폼을 쓸지는 노조가 결정한다. 그러면 다양한 플랫폼들이 이 데이터를 얻기 위해 경쟁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불공정했던 독과점이 개선될 수 있다. 앞으로 데이터를 통해 창출된 부가 어떻게 분배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블록체인이 등장하면서 개인은 중앙화된 모델에 견줘 엄청난 도구를 갖게됐다.”

-마치 재산을 지키려는 노력과도 같아보인다.

“미국에서는 국가의 무력 사용권과 개인의 재산 보호권 사이의 갈등 및 논쟁 끝에 총기 소유 합법화가 자리잡게 됐다. 여기에 빗대면, 디지털 세상에선 블록체인이 총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총으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의 패턴을 바꿀 수 있다.”

-개발자들은 어떤 정치적 역할을 하나?

“개발자 커뮤니티는 새로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정당, 의회와 같은 집단이다. 비트코인 블록사이즈의 크기를 얼마나 할지, 해킹 사건이 일어났을 때 포크를 할지 말지 등 과거 여러 논의는 정치 행위였다.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비트코인 등장 이후 달라진 것은 엄청난 돈이 걸려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대한 업그레이드 등 상태 변경 시도는 여러 이익집단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

-의회처럼 협상과 토론, 설득과 합의가 중요해진다?

“그렇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개발자 활동을 골라 얼마나 지원할지 결정하는 것은 예산 편성과도 다르지 않다. 이렇듯 단순하게 기술만 보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생태계의 조화와 가치 증대 방안을 고민하는 정치적 마인드의 개발자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다.”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 보는가?

“오프라인은 구시대, 온라인은 신시대일 것 같다. 인터넷이 시작한 1990년대 이후 디지털 세상은 데이터에 모두가 깃발을 꽂고서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식민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했듯이, 이런 상황도 바뀔 수 있다. 초기엔 모두 몰랐으니 식민주의가 가능했지만, 블록체인으로 힘의 균형을 찾을 거라고 본다. 물론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가 있으니 오프라인이 완전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규모는 어느 쪽이 더 클까? 전례없는 규모의 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김외현 13년 동안 한겨레에서 정치부와 국제부 기자로 일했고, 코인데스크코리아 합류 직전엔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습니다.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 환경을 경험했으며, 새로운 기술과 오래된 현실이 어우러지는 모습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학에서는 중국을, 대학원에서는 북한을 전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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