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뉴욕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블록체인 이벤트 ‘컨센서스’의 풍경은 해마다 크게 변한다. 암호화폐 가격 폭등으로 벼락부자들이 넘쳐났던 지난해에는 행사장 앞에 람보르기니가 줄을 지었다. 가격 폭락으로 그들의 재산이 크게 쪼그라든 올해에는 그런 허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참가자 수도 작년의 9000명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하지만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 행사를 지켜본 이들은 업계가 차분하고 더 단단해진 느낌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밋빛 미래를 떠벌리는 허풍선은 없었다. 각자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열정적으로, 그렇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발언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나 세계 최대 증권사로 꼽히는 티디아메리트레이드(TD Ameritrade)의 스티븐 쿼크 부회장, 전설적인 벤처투자자 프레드 윌슨 등 쟁쟁한 연사들의 발표는 정말 좋은 공부가 됐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국 규제기관들의 참여였다. 글로벌 금융제재를 총괄하는 미 재무부 시걸 맨델커 차관이 30분에 걸쳐 암호화폐 기업들에게 자금세탁방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금융범죄단속반(FinCEN) 등 암호화폐와 관련 있는 모든 기관의 고위직부터 실무자까지 두루 무대에 올라 자신이 소속된 기관의 업무와 계획을 설명하고 기업인들과 토론을 벌였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는 아예 암호화폐 기업들과 나란히 전시 부스를 차리고 공익제보자 보상 프로그램을 홍보했다. 암호화폐 사기를 알거든 신고하란 뜻이다. 이들의 메시지는 한결 같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컨센서스 행사장에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전시부스를 차렸다. 출처=유신재

 

규제기관들이 민간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려는 태도가 참 부러웠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것이 단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증권거래위원회가 핀테크 포럼을 열었다. 위원회가 암호화폐에 대해 더 깊이 배우기 위해 마련한 행사라고 했지만, 정작 외부 참가자들은 위원회가 이미 이 산업과 기술을 매우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위원회 소속 관료들이 아토믹스왑, 에어드롭, 포크, 노드, 컨센서스 메커니즘, 스마트계약 등 암호화폐의 기술적 세부사항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전문가들과 토론을 벌였다. 열린 태도의 배경에는 깊은 내공이 있었던 것이다. 컨센서스 행사장에서 헤스터 퍼스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이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미국은 늘 혁신에 우호적인 국가였고, 앞으로도 그러길 바란다. (암호화폐에) 우려스러운 점이 많으니까 그런 것에 관심 없다, 그런 것이 우리 나라에 없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렇게 접근하다가는 파도를 놓치게 된다.”

뉴욕 출장을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트코인 가격이 1000만원을 넘어섰다. 한국 정부가 긴급회의를 열었다. 암호화폐 투자는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니 유의하라는 메시지가 전부였다. 2년 전 뉴스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 6월6일자와 인터넷한겨레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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