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사토시 나카모토 르네상스 홀딩스 홈페이지


 

10년 전 비트코인을 창시한 뒤 지금껏 신분을 공개하지 않아온 사토시 나카모토가 정체를 드러낼 것인가.

사토시 나카모토 르네상스 홀딩스라는 기업은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 동부시각 18일부터 하루에 1건씩 3차례에 걸쳐 사토시 나카모토의 신분을 공개하는 '나를 공개하다'(My Reveal) 시리즈를 연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리즈를 안내하는 공지문과 18일 올라온 첫번째 글은 사토시 나카모토의 1인칭으로 서술됐다. 그는 자신이 비트코인 98만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어느 곳으로도 옮기지 않았다고 밝혔다.

'비트코인과 내 가명의 유래'라는 제목의 첫번째 글은 필자가 파키스탄인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필자는 자신의 어릴 적 별명이 샤이코(Shaikho)였다고 밝혔다. 이는 파키스탄식 이름이다.

또 글 내용에는 파키스탄의 은행가인 아가 하산 아베디(Agha Hasan Abedi)를 언급하면서 그가 세운 은행인 유나이티드뱅크(UBL)에서 필자의 아버지가 일했다는 대목도 있다. 아베디는 국제신용상업은행(BCCI, Bank of Credit and Commerce International)이란 은행도 만들어 한때 세계 7대 은행으로까지 성장시켰는데, 필자는 아버지로부터 BCCI가 잉글랜드은행이 제기한 자금세탁, 뇌물수수, 밀수 등 혐의로 부당하게 문을 닫게된 과정에 대해 배웠다고 밝혔다.

 

비트코인='부당한 폐업' BCCI 은행의 부활


필자는 BCCI의 이름을 재구성한 것이 바로 비트코인이라고 밝혔다. 물론 비트(bit)라는 정보통신(IT) 계열 용어를 차용한 것도 있지만, 그가 더욱 방점을 찍고 싶은 것은 BCCI의 '누명'을 벗겨주는 것이었다. 결국 그가 착안한 것은 Bank of CredIT and COmmerce INternational, 곧 국제관계와 국내정치가 '오물을 뒤집어씌운' 이름의 온전한 부활이었다.

그는 2008년 8월18일 bitcoin.org라는 도메인을 무기명으로 등록한 뒤, 석달 뒤 theBCCI.net이라는 도메인을 기명으로 등록했다. 필자는 그러나 훗날 영국에서 이름을 개명했다고 덧붙였다.

필자는 1999~2000년 '아직' 이름을 밝히지 않은 대학에서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의 디지캐시(DigiCash)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5년 영국에 처음 왔을 때 자신이 주소가 없어서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없어 온라인 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던 것에 좌절했다고 밝혔다.

"은행이 다른 사람들의 돈을 조종하고 이용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최소한 이걸 바꾸고 싶었다. 나는 실패한 사람처럼 느껴졌고, 은행에 모욕당했다고 느꼈다. 평범한 비전문가들이 거대 은행을 통하지 않고서도 돈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을 나의 미션으로 삼았다. 가난한 사람에게 힘을 주고, 작은 사람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경계도 국적도 차별도 없는 사람들의 은행처럼, 사람들의 돈에 접근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정부에 통제되지 않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 누구도 잘못된 정치를 위해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거나 망가뜨리지 않는 것 말이다."

 

칼데아 숫자점에서 유래한 사토시 나카모토


필자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자신의 가명에서 사토시는 스미타 사토시(1916~2008) 전 일본은행 총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밝혔다. 스미타 전 총재는 1980년대 통화정책 완화로 일본 자산 가격 버블을 불러왔다는 평가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책임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필자는 가명을 구성하면서 어릴 적부터 배워온 칼데아 숫자점을 이용했는데, 자신의 본명보다 더 많은 운을 가져다줬던 별명 샤이코(Shaikho)와 사토시는 숫자점(24)이 일치했다.

칼데아 숫자점표. 출처=사토시 나카모토 르네상스 홀딩스 홈페이지

애초 필자는 가명에 성(姓)까지 필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할 피니, 개빈 안드레센, 닉 재보 등과 비트코인 논의를 이어가던 중 할 피니가 "사토시 누구?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물어본 것이 성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였다고 했다. 칼데아 숫자점으로 나카모토(Nakamoto)는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숫자(55)가 된다. 게다가 자신이 하려는 일에 너무나 어울리기에 좋아했던 성경 구절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도 이사야 55장이었다.

 

할 피니를 추도함


필자는 첫번째 글의 상당 부분을 2009년 비트코인의 첫번째 거래 대상이었던 할 피니(1956~2014)에 대한 추도로 채웠다. 필자는 "할은 이상주의자이자 진정한 사이퍼펑크였으며 성공 가능성을 따지지 않았다. 반면 나는 BCCI를 디지털 거래 형태로 부활시키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필자가 금융 분야의 성공 가능성을 추구할 때, 피니가 기술 분야를 책임졌다는 것이다. 필자는 피니를 "내가 그에게 전하는 비전을 위해 끊임없이 일했던 나의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도 했다. 애플이 초창기 시절 사업 분야에서는 스티브 잡스, 기술 분야에서는 워즈니악에 의해 두각을 보였던 것처럼 자신과 피니가 비트코인의 사업성과 기술 분야 두 축을 만들었다는 뜻으로 보인다.

필자는 자신이 파키스탄과 영국을 오가면서 미국 캘리포니아의 피니와 교류했으며, 2009년 당시 구형 XP-SP2 노트북을 쓰고 있는 자신을 위해 피니가 미국 여러 곳에 원격 컴퓨터를 제공해줬으며 이를 통해 주요 작업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어느날 할은 내가 사이퍼펑크도 아니고 하드코어한 기술자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는 늘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나의 진지함과 총명함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니도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는 결국 알지 못했다. 2013년 3월 비트코인토크에서 피니는 "사토시가 누구인지는 오늘날 미스테리가 돼버렸다"며 "당시 나는 아주 똑똑하고 진지한 일본계 청년과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난 평생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나는 행운을 가져왔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런지 잘 안다"고 말했다.

2014년 피니의 거주지와 같은 캘리포니아 템플시티에 사는 도리안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실존 인물이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의해 '사토시 나카모토'로 '잘못' 지목된 일도 있었다. 당시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메일 계정에서 '나는 도리안 나카모토가 아니다'라는 내용이 발신된 적이 있지만, 이 글의 필자는 당시 메일은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당시 자신이 이용했던 계정은 숱하게 해킹당했기 때문이다.

2014년 피니가 루게릭병으로 사망했을 때 필자는 자신이 신분을 밝히고 추도의 뜻을 밝히려 했지만 '위험 요소'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적었다.

"나는 그에게 진 빚이 많다. 그는 진정한 천재였다. 내 인생 어느 순간에라도,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도록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난 그렇게 할 것이다. 편히 잠드시오, 할 피니."

 

정말 사토시 나카모토일까?


이 글이 실제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작성된 것인지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어보인다. 첫번째 글 만으로는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됐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직 실제 이름이나 사진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첫번째 글의 제목에 딸려있는 "아이비 맥러모어에게 이야기한 내용"이라는 부제도 눈길을 끈다. 홍보·마케팅기업인 아이비 맥러모어(IM&A)는 지난주 자료를 내어, "사토시 나카모토 르네상스 홀딩스의 업무를 대행하게 됐으며, 이 혁명적인 새 기업이 월등한 블록체인 기술로 사람들의 삶을 바꾸도록 기여하는 것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IM&A는 또 "우리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백서 이후 블록체인 기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진전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밝혀, 비트코인과 관련된 사업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필자는 글에서 비트코인이 "불법적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나의 비트코인 창시와 내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두기로 결정했고, 몇 가지 일을 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비트코인이 "욕심에 악용"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해온 크레이그 라이트의 주장과도 통하는 부분이다.

공지문에 따르면, 3편의 글은 18일 오후 4시(한국시각 19일 새벽 5시), 19일 오후 4시(한국시각 20일), 20일 오후 4시에 올라올 예정이며, 연재가 시작된 18일은 bitcoin.org 도메인 등록 11주년이다. 실제 신분이 공개되는 것은 3일째인 20일이다.

김외현 13년 동안 한겨레에서 정치부와 국제부 기자로 일했고, 코인데스크코리아 합류 직전엔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습니다.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 환경을 경험했으며, 새로운 기술과 오래된 현실이 어우러지는 모습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학에서는 중국을, 대학원에서는 북한을 전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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