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는 제임스 칸(James Caan). 출처=사토시 나카모토 르네상스 홀딩스 홈페이지

이름 제임스 칸(James Caan). 개명 전 본명 빌랄 칼리드(Bilal Khalid). 1978년 9월29일생. 파키스탄 출신으로 현재 영국에 거주하며 의료보험기구(NHS)에 근무중. 파키스탄 알카이르(Al-Khair)대 석사과정 졸업.

자신이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는 '또다른' 인사가 내놓은 본인의 신분이다. 그는 18일(미국 동부시각) 사토시 나카모토 르네상스 홀딩스라는 기업 홈페이지에 '나를 공개하다'(My Reveal)라는 3부작 시리즈를 시작한 인물로, 애초 20일 세번째 글에서 신분을 공개하기로 했으나 "뜨거운 관심" 탓에 일정을 하루 앞당겨 19일 두번째·세번째 글을 합쳐 공개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출생신고 때 이름은 빌랄 칼리드이며, 이 이름으로 (bitcoin.org 도메인을 무기명 등록한 지 석달 뒤인) 2008년 11월 theBCCI.net 도메인을 등록했다고 밝혔다. 나중에 영국에서 제임스 칸으로 개명한 뒤 도메인 등록자 이름도 바꿨다. 제임스 칸이라는 이름은 그가 어릴 적 어머니가 영어명 제임스나 아버지의 종족명 칸(Khan)으로 부르던 것에 기인했다. 이후 영화 '대부'(Godfather)에 출연한 배우 제임스 칸(James Caan)을 보고 칸 스스로가 디지털 현금의 '대부'라는 의미에서 철자를 가져왔다. 정식 이름은 '제임스 빌랄 칼리드 칸'이다.

칸은 2010년부터 영국에 정착했으며, NHS에서 2011년부터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이전까지 그는 의료, 인터넷전화(VOIP), 인터넷망, 헤지펀드 등 다양한 벤처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된 성공을 맛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칸은 그 무렵 영국 정착을 결정하면서 개인적으로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 비트코인 세계와는 거리를 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신분을 감추다, 두 번 거듭해서


칸은 자신이 영어 모국어 사용자가 아니어서 어릴 적부터 영어 학습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사회에선 영어 수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탓도 컸다.

이같은 습관은 비트코인 백서 작성 때도 반영됐다. 전자화폐 업계 종사자 대부분은 서구 출신이었기에, 잘못된 영어 탓에 신분이 드러나기를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칸은 전체 글을 2~3줄짜리 문단으로 쪼개서 주변의 영국인들에게 보내 교정을 요청했다. 이들은 "훌륭한 영어 문법 선생님"이 돼주기도 했지만, 파편같은 글에서 전체 글의 맥락을 눈치챈 이는 없었다.

"내가 교정을 요청했던 사람들, 개인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들이 나를 기억한다면 기꺼이 만나겠다."

이는 칸이 비트코인 개발 초기 여러 나라의 기여자들에게 취했다고 설명한 방식과 유사하다. 각각의 개발자들은 전체 개발 과정에서 일부 내용을 알뿐 전체 그림은 모르도록 진행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 배경과 관련해, 칸은 "두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여자들과의 소통 과정에서 지식을 공유하면서도, 나는 내 신분에 대해 편집증적이고 방어적이었다. ...내 눈에 비트코인은 혁명이었다. 나는 그 이름(비트코인)과 영감을 주류 매체들이 '사악한' 은행이라고 규정한 은행에서 가져왔다. 나의 공포를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칸은 앞서 첫번째 글에서 국제정치에 희생돼 부당하게 문을 닫은 파키스탄의 국제신용상업은행(BCCI)의 명예 회복을 위해, 그 이름에서 비트코인이라는 명칭을 따왔다고 밝힌 바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백서는 마침표(.) 뒤에 새로운 문장을 시작할 때 두 칸을 띄어서 쓰고 있다. 이와 관련해 칸은 자신의 세대와 달리 지금의 50대는 타자기를 쓰던 습관 탓에 '두 칸 띄어쓰기'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실제보다 나이가 더 들어보이기 위해 이같은 습관을 차용했다고 밝혔다.

다만, 비트코인 세계와 거리를 둔 '은둔'의 시간 동안 그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신분을 지우기 위해, 두 칸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마침표 바로 뒤에 새 문장을 시작하거나, 고의적으로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쓰고 철자 오류를 내곤 했다고 했다. 암호화폐에 대한 언급도 삼갔다. 칸은 "사토시로 지목되지 않기 위해 편집증적으로 모든 것에서 몸을 낮췄다"고 말했다.

이 얘기대로라면, 결과적으로 칸은 두 차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살았던 것이 된다. 비트코인을 만들면서 사토시 나카모토가 되기 위해 한 차례 실제 신분을 감췄고, 비트코인 완성 뒤에는 사토시 나카모토로 보이지 않기 위해 다시 한 번 신분을 감춘 셈이다.

 

98만개의 비트코인은…잃어버렸다


칸은 2009년 원격 컴퓨터와 자신의 노트북으로 비트코인 98만개를 채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도 없다.

칸은 자신이 당시 신분 노출을 꺼린 탓에 원격 컴퓨터에서 작업이 끝나면 안전하고 영구적인 방식으로 파일을 삭제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구형 후지쯔 라이프북 노트북과 신형 에이서 어스파이어 노트북 2대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구형 노트북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파일을 삭제해 에이서 노트북으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인 작업 형태였다. 후지쯔가 너무 오래돼서 블록체인에 장애를 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모든 파일은 에이서로 옮긴 상태였다.

제임스 칸이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했다고 밝힌 구형 후지쯔 노트북(왼쪽)과 하드디스크 교체로 비트코인 98만개를 분실한 에이서 노트북. 출처=사토시 나카모토 르네상스 홀딩스 홈페이지

 

2010년 어느날 아침 에이서 노트북의 화면이 제대로 뜨지 않았다. 칸은 에이서 노트북에 자료를 옮기기 전 철저한 테스트를 거친 뒤여서 안심하고 있었기에 '멘붕'이 됐다.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보증기간이 남아 있었고, 노트북을 보내라고 했다. 보내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48시간 뒤에 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재앙'이 왔다.

"48시간 뒤 전화를 걸었더니 그들은 좋은 소식이 있다고 했다. 하드드라이브가 문제가 있어서, 무료로 새 하드드라이브로 교체해 노트북을 돌려보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디스플레이나 램(RAM)이나 그래픽칩을 고쳐서 돌려보낼 것이라 생각했다. ...내 모든 것이 그 하드드라이브에 들어있었다!"

그는 하드드라이브의 모든 자료가 암호화돼있어 서비스 기술진이 손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빼지 않은 채 보냈다면서, 돌아온 노트북에 탑재된 새 하드드라이브엔 "당연히 비트코인은 없었다"고 말했다. 구형 후지쯔 컴퓨터도 복원이 불가능했다. 개인키도 따로 인쇄해놓은 게 없었다. 그는 그날 다리에 마비가 왔다고 전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화면이 제대로 뜨지 않는 걸 보고 기본적인 HDD 체크라도 해야 했나? 그렇다. 그렇게 똑똑한 비트코인의 창시자가 어떻게 그런 바보같은 값비싼 실수를 저지를 수 있나? 할 피니와 상의해야 했을까? 그러지 않았다. 그런 초보적인 실수로 할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고 상의하고 싶지 않았다. 모욕적이었다. 할과의 교신도 중단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망명'에 들어서게 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칸은 더이상 비트코인 채굴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를 돌이키는 것은 지금도 아주 쓰린 일"이라며 "지금도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칸은 "내가 비트코인을 떠난 그 이유가 바로 내가 돌아온 이유이기도 하다"며 "나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비트코인을 더 낫게 만들려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사토시라고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코인을 옮기려 하지 않는다"며 "내가 잃어버린 비트코인 0.0001개라도 옮길 수 있다면 그를 나의 스승(Guru)이라 부르겠다"고 했다.

2011년 칸은 NHS에 취직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컴퓨터를 고치고,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사회에 출석하면서, 각종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등 "필요한 이들을 돕는" 일을 했다. 이후 칸은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메일 계정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2012년 어느 시기부터는 로그인도 되지 않았다. 암호를 잊은 건지 해킹당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마저 축복이라 생각하고 잊어버리기로 했다.

 

엉망진창 블록체인 세상과 '창시자'의 책임


칸은 2015년 허리 수술 뒤 몇달 동안 회복기를 거치면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블록체인 일을 재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암호화폐 투자 관리 플랫폼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고, 빅데이터 분석 헤지펀드 블록체인 플랫폼, 금 가치 블록체인 플랫폼 등 구축에도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트코인의 무지와 욕심, 무능 탓에 IBM 하이퍼레저나 이더리움의 잠재력이 등한시 됐다고 평가했다.

칸은 "많은 기업들이 암호화폐 공개(ICO)의 광풍을 거쳐가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았다"면서 블록체인 업계를 비판했다. 제대로 된 비전도 없이 투자자들과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어 돈을 벌려는 기업만 많을 뿐, 실질적인 기술 발전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신은 ICO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칸은 "사람들의 욕심이 아름다운 프로젝트를 돈 버는 괴물로 만들어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갈취하는 것을 봤다"며 "이를 고칠 사람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진정한 창시자인 나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정말 사토시인가?


이번 글도 첫번째 글과 마찬가지로 사토시 나카모토의 결정적 증거는 없어보인다. 칸 스스로도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근거는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메일은 계정이 해킹당하면서 모두 잃어버렸고, 98만개 비트코인은 하드드라이브가 망가져서 잃어버렸고, 내가 스스로를 밝히려 한 적이 없어 디지털 서명은 애초부터 없었다."

칸은 자신의 아내에게 사토시 나카모토의 신분을 밝히자, "왜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쳤는지 알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칸의 글과 관련한 추측이 무성하게 제기되는 가운데, 그는 2015년 자신이 허리 수술에서 회복하던 무렵 어너카코인(AnnurcaCoin)이라는 '세계 최초의 중앙화 암호화폐 블록체인'을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다만, 아직 백서를 쓴 것은 아니라고 했다. 현재 예고된 다음 글은 라틴어로 '정해진 의견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타뷸라 라사'(Tabula Rasa)라는 제목으로, '비트코인에 대해 새로 제시하는 비전'(my clean-slate vision for Bitcoin)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칸은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는 분위기를 숨기지 않고 있다.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비트코인을 만들었다. 내가 떠나고 나면 누군가 나와 '내가 사토시보다 더 나은 일을 했다. 사토시는 역사일 뿐이다'라고 할 줄 알았다. ...나는 더이상 두려움에 살지 않는다. 나의 자신감과 나의 비전을 향한 강한 열정은 회복했다. 나와 함께 안전하면서도 커뮤니티가 주도하는 세계에서 미래 세대가 살 수 있도록 놀랄만한 혁신을 만들면서 혁명을 함께 하자."
김외현 13년 동안 한겨레에서 정치부와 국제부 기자로 일했고, 코인데스크코리아 합류 직전엔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습니다.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 환경을 경험했으며, 새로운 기술과 오래된 현실이 어우러지는 모습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학에서는 중국을, 대학원에서는 북한을 전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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