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시진핑 중국 주석의 '블록체인 진흥' 발언과 뒤이은 암호법 통과 이후 중국발 블록체인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전세계 암호화폐 업계가 반색하고 있지만, 흐름상 암호화폐를 배제한 블록체인 기술에 방점이 찍히는 모양새다.

10월24일 중국 최고지도자의 발언에 전세계 암호화폐 시장에 불이 붙었다. 비트코인 가격은 시 주석 발언 15시간만인 25일 오전까지 40% 가까이 폭등했다. 이 무렵 위챗, 바이두 등 포털사이트에서는 '블록체인' 키워드를 포함한 검색량이 하루 사이에 10배 이상 늘었다. 주말 후 28일 열린 상하이와 선전의 주식시장에서는 화메이홀딩스(华媒控股), 쥐룽(聚龙) 등 60개가 넘는 블록체인 관련주 주가가 일제히 상한가(10%)를 쳤다.

이후 중국의 대형 기업들은 블록체인 관련 행보에 앞다퉈 발을 들이밀고 있다. 대부분 블록체인을 활용해 물류나 자원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내용들이다. 이전에 공개했던 내용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도 다시 한 번 블록체인 부분을 강조해 홍보에 나서는 기업들도 있다.

중국 3대 통신사 중 하나인 차이나유니콤(China Unicom, 联通)은 지난 4일 대형 통신장비 업체인 중싱(中兴, ZTE)과 함께 'IoT+블록체인의 응용과 발전'이라는 주제의 백서를 발표했다. 차이나유니콤은 지난 9월에는 블록체인을 지원하는 5G 심(SIM)카드 개발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스마트폰에 넣는 SIM 카드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시켜 디지털 신분 인증부터 개인 자산 관리까지 한번에 이어지는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핀테크 부문 계열사 앤트파이낸셜(Ant Financial, 蚂蚁金服)은 지난 8일 중국 우전(乌镇)서 열린 세계 블록체인 서밋에서 향후 3개월간 테스트를 거친 후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인 '앤트블록체인오픈얼라이언스(Ant Blockchain Open Alliance, 蚂蚁区块链开放联盟链)'를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플랫폼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저비용 블록체인 네트워크로, 이미 항저우 인터넷 법원 등 현지 40여 개 정부 기관에 도입돼 호평을 받고 있다고 알리바바는 덧붙였다.

같은날 중국의 대형 리테일기업인 징둥닷컴(JD.com, 京东)도 새로운 버전의 블록체인 재고관리 시스템인 '이지스(宙斯盾)2.0'을 발표했다. 징둥닷컴은 지난 4월부터 상품 품질추적, 디지털 증거, 신용 네트워크, 브랜드 및 상품관리 등의 분야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계속 활용해오고 있다.

중국 최대 민간 택배회사인 순펑(顺丰, SF Express)는 이날 중국 산시(陕西)성 유린에서 열린 양고기 산업 컨퍼런스에서 블록체인 기술 적용 확대 계획을 밝혔다. 산시성 북부지역은 중국의 양고기 특산지 중 하나로, 지난해 이곳에서 생산한 양고기 9만 5700톤 중 70% 가량이 중국 내 다른 지역으로 팔렸다. 순펑은 여기에 블록체인을 이용한 물류 솔루션을 적용해 서비스 품질과 브랜딩을 강화하고 유통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중국 오성홍기.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암호화폐 거래에는 '철퇴'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한 각종 계획이 쏟아지는 한편에선, 규제 당국이 암호화폐 거래에 대해 철퇴를 준비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상하이 총부 인터넷금융정비판공실과 상하이시 금융안정연석판공실은 14일 각 구 정비판공실에 통지문을 보내, 가상화폐 거래 관련 서비스를 모두 조사하고 검열해 오는 22일까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가상화폐 거래를 조직하는 사례, 블록체인 진흥을 빌미로 가상화폐를 발행하는 행위, 국외 ICO 진행 및 가상화폐 플랫폼 홍보, 대리매매 서비스 등이 적발되면 즉각 보고하고 퇴출시키라는 내용이다. 통지문은 15일 웨이보 등 중국 SNS를 통해 확산했으며, 중국 경제전문 매체 차이신은 통지문이 실제 발송된 것이라고 확인했다.

중국 투자자들이 암호화폐를 거쳐 미국 주식에 투자할 수 있다는 서비스를 주장했던 중국 내 암호화폐 거래소 비스(BISS)는 이달 초부터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스는 지난 4일 일부 임직원이 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웨이보에서는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거래"를 동시에 담은 글이 금지됐다. 두 표현을 동시에 적으면 "현행 관련법 또는 웨이보 이용규칙을 위반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글이 게시되지 않는다. 단, 둘 중 하나의 표현만 넣은 경우는 발행이 된다.

거래량 기준 세계 최대로, 중국계로 분류되지만 몰타에 근거를 두고 있는 거래소 바이낸스의 웨이보 계정은 지난 14일 돌연 '법규 위반'을 이유로 사라졌다. 바이낸스는 최근 은행 계좌이체, 알리페이(쯔푸바오), 위챗페이(웨이신) 등 위안화로 암호화폐를 매매할 수 있는 P2P 거래 서비스를 개시한 바 있다.

웨이보나 위챗(웨이신) 등 중국 SNS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이 삭제되거나 발행되지 않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계정이 삭제되는 경우도 있다. 이같은 조처는 공식 발표 없이 진행되며 표면적으로는 해당 기업이 자체적으로 진행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관련 당국이 취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에, 외국에 기회가 올까


시 주석은 지난 10월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제18차 집체학습에서 "중국이 블록체인 기술 융합, 기술 확장, 산업 세분화 등 계기를 붙잡아야 한다"며 "데이터 공유, 업무 프로세스 개선, 운영 원가 절감, 협업 효율 증대, 신뢰 체계 구축 등 기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블록체인 기술 및 산업의 혁신과 발전을 가속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시 주석의 발언이 나온 지 이틀 만인 지난 26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 14차 회의에서 암호화 기술 전반의 규제 내용을 담은 암호법(密码法)을 통과시켰다. 공개된 법안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내년 1월 1일 이후 암호화 산업 및 업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된다. 중국 블록체인 산업에 드리웠던 불확실성이 불과 사흘 만에 제거된 셈이다.

하지만, 국내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모두가 블록체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지만 여전히 중국에서는 암호화폐 거래가 금지되어 있다"면서 "냉정히 보면 시진핑 발언은 블록체인의 호재이지 암호화폐의 호재는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암호화폐가 블록체인 산업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과는 딱히 접점이 없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었다.

국내 한 중국계 암호화폐 거래소의 관계자는 "시 주석이 블록체인 진흥을 들고 나온것은 검열, 중앙집권 등 중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키워드들이 기술의 성격과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블록체인 기술의 특징이 기존 기술들보다 투명성이 향상된다는 겁니다. 인터넷 네트워크가 살아있는 한 계속 알아서 기록이 되고, 누구나 기록된 걸 확인할 수 있죠. 중국은 다방면으로 검열이 상당히 심한 국가인데, 블록체인은 그 검열을 더 투명하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궁합이 잘 맞아요. 공산당의 고질적인 고민거리인 부패 문제도 어느정도 보완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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