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정부 관료들이 19일 워게임 훈련을 하고 있다. 출처=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마침내 중국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가 미국 달러의 기축 통화 지위를 결정적으로 뒤흔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북한이 핵·미사일 생산과 실험 관련 비용을 모두 디지털위안으로 처리했다. 이로써 북한은 미국의 금융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게 됐다. 악의적인 세력이 저마다 주장을 인정받기 위해 국제 은행간통신협회(SWIFT)으로부터 자금을 탈취하려들고 있다. ...아, 아직은 걱정 마시라. 단지 시나리오일 뿐이다. 현재로서는.

미국의 국방·외교·안보·금융 정책을 이끌던 전직 고위 관료들이 지난 19일 밤 하버드대학교에 모여 모의실험을 했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개발하면 동북아시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특히 핵무장을 꾸준히 추진해온 북한이 핵무기를 사는 등 전력을 강화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본 실험이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과 벨퍼센터는 전직 고위 관료들을 초청해 2021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었다. 북한이 디지털 위안화로 사들인 신형 미사일의 성능을 시험한 뒤 긴급 소집된 상황을 가정한 회의였다. 모의실험의 배경과 시나리오는 대략 이렇다.

중앙은행이 개발하는 암호화폐(CBDC)에 관해 전 세계의 이목을 한몸에 받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중국이다. 중국 인민은행이 개발하고 있는 디지털 위안화는 늦어도 내년 중에는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위안화를 많은 나라가 채택하게 되면 자연히 위안화의 위상은 높아지고, 반대로 현재의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의 지위는 흔들리게 된다. 이는 미국이 적대국에 부과하는 경제제재의 위력을 낮춘다. 경제적으로 ‘숨통이 트이면’ 군비를 증강할 여력이 생기고, 특히 디지털 위안화를 이용해 핵무기와 미사일을 살 수도 있다.

"대통령님, 미국 달러화의 경쟁력은 곧 미국의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미국 달러화는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지탱하는 기축통화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안보 전략을 짜는 데 아주 중요한데, 경제제재라는 카드를 무기 삼아 적대국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할 만한 새로운 화폐가 등장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다는 건 곧 미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우리가 디지털 화폐 혁신 경쟁에서 뒤처져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 디지털 화폐 정책 자문위원)

MIT 미디어랩 디지털화폐연구소의 네하 나룰라 소장이 한 말이다. 나룰라 소장은 모의실험에서 미국 디지털 화폐 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 자문위원 역할을 맡았다. 나룰라 소장 외에도 워싱턴의 전직 고위 관료들이 모의실험에 참여했다. 이들의 이름과 과거 맡았던 직책을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 애시 카터(Ash Carter): 국방장관

  • 개리 겐슬러(Gary Gensler): 상품선물거래위원장(CFTC)

  • 니콜라스 번스(Nicholas Burns): 국무부 차관

  • 제니퍼 파울러(Jennifer Fowler): 재무부 부차관보

  • 메건 오설리번(Meghan O'Sullivan): 국가안보리 특별자문위원

  • 에릭 로젠바흐(Eric Rosenbach): 국방부 차관보

  • 래리 서머스(Lawrence Summers): 재무장관

  • 리차드 버마(Richard Verma): 주인도 대사

  • 네하 나룰라(Neha Narula): MIT 미디어랩 디지털화폐연구소장

  • 아디티 쿠마르(Aditi Kumar): 벨퍼센터 이사장


나룰라 소장은 모의실험 전에 이번 실험을 미국 의회와 규제 당국이 관심 있게 지켜봤으면 좋겠다고 코인데스크에 말했다.
“디지털 화폐가 어디까지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관심을 끄는 데 모의실험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모의실험을 보면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이번 모의실험이 디지털 화폐에 관한 논의를 촉발하는 불쏘시개가 되기를 바란다.”

 

전 세계 금융 시스템과 미국의 지배력


래리 서머스 전 장관은 자신이 수행한 재무장관 역할을 그대로 다시 맡았다. 서머스 장관은 미국이 전 세계 금융 질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이를 이용해 적대국을 괴롭히고 압박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한 가지 따른다고 말했다. 바로 다른 나라들의 협력이다. 즉, 다른 나라가 미국의 계획에 동의하고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미국 홀로 제재를 밀어붙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디지털 위안화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디지털 위안화가 곧바로 달러화의 위상을 뒤흔들지는 못하더라도 미-중 외교에는 중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북한에 경제제재를 가할 때 상황은 복잡해진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대북 제재가 실효를 거두느냐 마느냐는 중국의 협조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디지털 위안화가 나오기 전에도 엄연한 사실이었고, 디지털 위안화가 출시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무장관)

모의실험에서 대통령 경제정책 자문위원 역할을 맡은 겐슬러 전 CFTC 위원장은 미국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훨씬 더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안화가 달러화와 전 세계 기축통화 자리를 놓고 정말로 겨루려면 갖춰야 할 인프라부터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달러화를 대체할 만한 통화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시장에 신호를 줄 수 있다. 몇몇 나라는 이미 달러화를 대체할 만한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러시아는 이미 중국과 은행 간 국제송금 시스템(CIPS, 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 경제정책 자문위원)

벨퍼센터의 쿠마르 이사장은 모의실험에서 중국 정부가 “다른 나라에도 얼마든지 적용 가능하다(fully portable)”는 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즉 인민은행이 만든 디지털 화폐 인프라에 원하는 은행이나 결제 기관은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노드로 참여해 자체 디지털 화폐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부통령 역할을 맡은 오설리번 전 국가안보리 특별자문위원은 디지털 위안화가 등장한 상황 자체가 달러화의 위상에 얼마나 위협이 될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지금 이미 전 세계 경제가 두 갈래로 나누어진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갈림길 가운데 하나를 얼마나 밟아온 건지, 다시 돌아가거나 길을 합칠 수는 없는지 살펴봐야 하지 않나요? 지금이라도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면 달러화의 위상을 다시 높이고, 금융 시스템에서 미국이 행사하는 영향력을 회복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반대로 중국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했고, 여기에 몇몇 나라들이 달러화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기회가 왔다며 이를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만으로도 더는 미국이 당연히 왕 노릇을 할 수 없는 금융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미 미국은 금융 세계에서 예전 같은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특히 달러화와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외교 정책을 비롯한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겁니다." (부통령)


서머스 장관은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면서도 미국이 디지털 달러화를 발행하면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판 디지털 위안화가 됐든 디지털 달러든, 국영 벤모가 됐든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마는, 아무튼 그런 건 만들어봤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겁니다." (재무장관)

 

SWIFT에 너무 의존해서 문제?


모의실험 내내 미국이 특히 경제제재를 가하는 데 있어서 SWIFT(국제 은행간 통신협회)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구조적인 약점으로 여러 차례 지적됐다.

모의실험 말미에 가상의 북한 해커 조직이 SWIFT를 해킹해 30억 달러를 빼돌렸다. 이를 현금으로 인출하기는 어렵겠지만, SWIFT에 참여하는 나라들에 SWIFT를 버리고 디지털 위안화로 갈아타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미 SWIFT는 여러 차례 악의적인 해커들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국제 송금에 사용되는 네트워크에 문제가 없지 않은데, 대안이 없는 이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재무장관)

그러나 서머스 (전) 장관은 미국이 SWIFT의 약점을 보완하고 네트워크를 보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야지 연준이 디지털 화폐를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디지털이든 실물화폐든 다른 나라의 통화는 궁극적으로 달러화를 위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서머스 장관은 말했다.
"자, 이 방에 있는 참모들끼리 솔직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어차피 유럽은 박물관, 일본은 양로원, 중국은 감옥이나 다름없는 거 아닙니까? 이런 나라 통화가 미국을, 달러화를 정말로 위협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걱정은 붙들어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SWIFT를 다시 안전하고 탄탄한 시스템으로 보강하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달러화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자원과 주의를 엉뚱한 데 낭비해버리기 딱 좋은, 그래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재무장관)

모의실험에서 주중국 대사 역할을 맡은 버마 전 주인도 대사는 미국이 중국 정부가 만들려는 디지털 결제 수단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훌륭한 파트너가 되는 방법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감히 중국이 우리보다 먼저 이렇게 대단한 걸 발명했다는 사실에 이 방에 계신 분들 모두 단단히 화가 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주중 대사)

중국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화를 만들어도 과연 이를 받아들일 나라나 단체가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카터 전 국방장관은 모의실험에서도 국방장관 직을 맡았는데,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가 과연 SWIFT를 대체할 수 있을지 논리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할 수 있고, 그 점은 최대한 철저히 분석하고 대비를 해야겠죠. 하지만 미국이 지난 수십 년간 큰 문제 없이 잘 써온 송금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경제가 기본적으로 SWIFT 시스템을 채택하고 지지하고 효과적으로 운영해 왔습니다.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시스템을 버리고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중국의 시스템을 도입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국방장관)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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