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chanics of Market Manipulation
1930년대 연방연극프로젝트의 꼭두각시 인형 제작자들. 출처=위키미디어커먼스

지난 5월 17일, 비트코인 가격이 갑자기 추락했다. 룩셈브루크의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스탬스(Bitstamp)에서 달러로 표시된 비트코인 가격이 몇 분 만에 18% 이상 하락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여파로 다수의 거래소에서 집계된 시세를 복합적으로 반영하는 코인데스크 비트코인가격지수(BPI)도 6% 가량 급락했다.

당시 비트스탬프는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소 비트멕스(BitMEX)가 자체 비트코인 지수를 산정할 때 사용하는 현물시장 3곳 중 하나였다. 비트멕스는 비트코인 파생상품 중 유동성이 가장 높은 XBT/USD 무기한 스왑 상품을 다룬다. 나머지 2곳은 코인베이스프로(Coinbase Pro)와 크라켄(Kraken)이다. 비트멕스 지수는 이들 시장 3곳의 시세를 집계해 동등한 비율로 반영하는데, 이 가운데 비트스탬프의 거래 규모가 가장 작았다.

비트스탬프에서만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값에 대량의 비트코인을 한꺼번에 팔겠다는 매도 주문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 주문을 맞추려다 보니 비트코인 가격은 하염없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비트멕스에서 수억 달러어치 롱포지션이 자동으로 청산됐다. 반대로 쇼트포지션을 취한 투자자들은 이득을 보았다. (롱포지션: 자산 가격이 오르리란 전망을 하고 자산을 사들이는 전략, 쇼트포지션: 자산 가격이 내리리란 전망을 하고 자산을 파는 전략)

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5월 17일 비트스탬프에서 발생한 비트코인 폭락 사태를 단계별로 설명하고, 만약 그것이 일부 세력의 시장 조작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해당 세력이 감수한 리스크 대비 이득은 얼마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당시 사태의 원인이 된 유동성 불균형에 대한 생각과 재발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이와 같은 조작 행위를 가능하게 했던 새로운 형태의 시장 구조와 유동성의 분포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새로운 형태의 시장 구조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투자자가 거래소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비트코인의 기본 취지도 투자자들이 중개인 없이 익명으로 자산을 사고 팔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암호화폐를 다루는 파생상품 거래소는 이에 맞춰 시장 구조를 완전히 새롭게 구축해야 했다.

전통적인 파생상품 거래에서는 시세가 급변해 한쪽 거래당사자가 파산에 이를 수 있는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브로커와 청산소가 존재한다. 거래에 관여하는 모든 주체는 당장의 파생상품 계약 내용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음날 또 다른 거래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반면, 암호화폐 파생상품은 하나의 거래소에서 매일 계정을 바꿔가며 자유자재로 거래에 참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거래에 대한 제약이 없고 익명으로 직접 거래가 가능하다는 특성 때문에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 규모가 가장 큰 거래소들은 업계에서 가장 유동성이 높은 시장으로 자리잡게 된다.

청산 시점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비트멕스 등 대형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소들은 자동 청산(auto-liquidation) 기능을 사용한다. 암호화폐 시세가 특정 파생상품의 계약 가격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해당 계약은 자동으로 청산(취소)된다. 자동 청산으로 얻은 초과 수익금은 별도의 보험 기금에 저장된다. 이 기금은 만기 시점 이전에 자동 청산이 이뤄지게 될 경우 사용되며, 해당 거래에 배정된 기금이 소진되면 자동자산청산(auto-deleveraging)이 이뤄져 양쪽 거래 포지션이 모두 취소된다.

 

유동성의 분포 


유동성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한 명의 투자자가 전반적인 시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상당량의 자산을 움직일 수 있을 때 해당 자산은 유동성이 높다고 한다. 시장의 깊이, 곧 물량이 특정 규모로 제한돼 있을 때 기록될 수 있는 가장 낮은 가격의 측정치와도 연관된 개념이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거래소 10여 곳과 소규모 거래소 수백 개가 전체 물량을 나눠 갖고 있다. 비트코인, 이더 등 대표적인 암호화폐 역시 전체 물량이 여러 거래소에 조금씩 나뉘어져 있어 개별 거래소의 유동성은 높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종합시장정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올해 대형 거래소에서 기록된 매수 및 매도호가의 가격 차이(스프레드)가 점차 벌어졌다. 이는 시장의 깊이가 얕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가격 예시 기능을 하는 개별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물량이 줄어드는 탓에 조금만 큰 규모의 주문이 들어와도 시세는 급변할 수 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파생상품 시장은 기초자산의 가격을 결정짓는 현물시장보다 유동성이 훨씬 높은 경우가 많다.

 

5 17일에 벌어진




  • 5월 17일 비트스탬프 분단위 USD/BTC 매도호가 변화 추이

  • 각 원은 매도 주문의 호가를 표시. 대부분 거래가 비트코인 10개 미만이다.

  • 새벽 3시: 누군가 비트코인 3737개를 시세보다 약 500달러 낮은 $7212에 팔겠다는 주문을 낸다.

  • 새벽 3시 9분: 비트코인 831개를 제외한 나머지 비트코인은 판매가 완료됐다. 그 결과 비트코인 가격은 $6276까지 급락했다.

  • 새벽 3시 22분: 비트스탬프 USD/BTC 시장이 다시 정상화됐고, 비트코인 거래 주문의 거래량은 다시 비트코인 10개 이하로 돌아왔다.


 

위의 그래프는 지난 5월 17일 이른 아침 (UTC 기준) 비트스탬프의 BTC/USD 현물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초 단위로 보여준다. 그래프의 각 점은 코인루츠(CoinRoutes)가 제공한 분별 최저 매도호가를 나타낸다. 점의 크기는 물량의 크기다.

새벽 3시경, 해당 시각에 기록되는 주문량보다 수백 배는 큰 규모의 매도 주문이 시세보다 약 6% 낮은 가격으로 전송됐다. 이 가격에 제시된 물량에 대한 주문이 모두 체결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더 낮은 가격의 매도호가가 제시됐다. 매도 주문은 비트코인 시세가 6276달러까지 떨어진 이후 비로소 멈춰 섰다. 해당 시점에 이뤄진 거래 내역을 종합해 보면 총 2905.7개의 비트코인이 판매됐는데, 판매 금액은 당시 원래 시세인 7700달러에 판매했다고 가정했을 때보다 약 250만 달러 낮은 금액이었다. 한편, 데이터 분석업체 스큐(Skew.)에 따르면 같은 시각 비트멕스에서 청산된 롱포지션 규모는 2억 달러를 넘어섰다. 시장 조작 행위가 맞다면, 그 주체가 감수한 리스크 대비 수익은 최대 80배나 더 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10여분 만에 끝이 났다.

 

결론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보안 모델은 합리적 선택 이론을 직관적으로 반영한다. 네트워크에 새로운 거래를 기록하는 채굴자는 그 대가로 보상을 받는다. 전력 등 가치를 지니는 무언가를 투입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 한 채굴자가 거래 기록을 조작하려고 하면, 나머지 채굴자들이 해당 기록에 대한 검증을 거부하기 때문에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거래 기록을 조작하기 위해 드는 비용과 실패 가능성 등의 차원에서 본다면 거래 기록을 조작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올바른 행동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크지 않다.

이처럼 비트코인은 신원 확인이나 신뢰할 수 있는 제3자의 개입 없이도 시장 조작을 억제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기초 자산으로 두는 시장 구조에는 아직 이와 같은 억제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비트멕스는 지난 11월 자체 비트코인 지수를 구성하는 현물시장 두 곳을 새롭게 추가했다. 그 중 한 곳은 새로운 청산 방법을 추진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데리비트(Deribit)이다. 데리비트는 현재 가장 많은 양의 비트코인 옵션 거래를 취급하고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이기도 하다.

특정 자산에 대한 유동성이 낮은 거래소에서 발생한 일회성 움직임이 유동성이 풍부한 거래소의 거래가격을 결정짓는 근본적 문제가 지속된다면, 비트코인 시장은 계속해서 왜곡될 것이다. 그리고 이 왜곡을 악용해 시장을 조작하려는 세력이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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