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 비트코인 더하면 글로벌 은행이 탄생한다
암호화폐 선물거래소 ‘백트’에 투자
비트코인 매개로 글로벌 금융사 도전
이미 남미에서 스타벅스 은행 실험 중
“기술 발달이 업권의 경계 무너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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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기자
정인선 기자 2020년 2월18일 07:00
2017년 6월 스타벅스 상장 25주년을 기념하는 나스닥 전광판의 모습.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해 ‘커피제국’을 일군 스타벅스는 이제 ‘금융제국’으로 영토 확장을 노리고 있다. 출처=스타벅스
2017년 6월 스타벅스 상장 25주년을 기념하는 나스닥 전광판의 모습.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해 ‘커피제국’을 일군 스타벅스는 이제 ‘금융제국’으로 영토 확장을 노리고 있다. 출처=스타벅스

30대 직장인 이아무개씨는 스타벅스 카드를 일주일에 두번 이상 사용한다. 특히 줄을 서지 않고도 앱에서 바로 주문과 결제를 하는 사이렌오더 기능을 자주 쓴다. 이씨는 출장이나 여행 등으로 외국에 나가서도 스타벅스를 즐겨 찾는다. 어떤 도시들에선 그 나라에서만 쓸 수 있는 스타벅스 카드를 구입해 커피를 사 마신 뒤, 카드에 일정 금액을 남겨둔다. 마음에 든 여행지를 다음번에 꼭 다시 찾아, 남은 돈을 쓰겠다 다짐하는 소소한 의식이다.

이씨의 이런 여행지 의식은 수년 안에 그 의미를 잃게 될지 모른다. 스타벅스가 그리는 ‘전세계 대통합’ 그림 때문이다. 현재 스타벅스는 진출 국가마다 멤버십 제도를 따로 운영한다. 국내에서 충전한 원화는 국내 스타벅스 매장에서만, 미국에서 충전한 달러는 미국 매장에서만 쓸 수 있다. 블록체인 업계에선 최근 스타벅스가 이를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로 통합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글로벌 은행’ 꿈꾸는 스타벅스

2018년 스타벅스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모회사인 인터콘티넨털익스체인지(ICE)의 암호화폐 선물 거래 플랫폼 백트(Bakkt)에 투자했다. 당시 마리아 스미스 스타벅스 파트너십 및 지불 부문 부사장은 “(백트의) 주요 가맹사로서 스타벅스는 소비자들이 디지털 자산을 미국 달러로 전환해 스타벅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신뢰 가능하며 규제를 준수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할 것”이라며 “1500만 이상의 스타벅스 리워드 서비스 회원을 가진 모바일 결제 분야 선두 주자로서, 고객이 활용할 수 있는 지불 옵션을 넓혀 혁신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에스앤피(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의 2016년 조사를 보면, 스타벅스는 2016년 선불카드와 앱으로 미국에서만 1조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웬만한 미국 중소 은행 보유 예금과 맞먹는 규모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스타벅스는 국내에서 940억원 규모의 선수금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마이 스타벅스 리워드’ 회원이 5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마이 스타벅스 리워드는 선불 충전 카드 이용 고객에게 포인트(별) 적립과 쿠폰 지급 등 혜택을 제공하는 로열티 프로그램으로, 2011년 9월 첫선을 보였다. 또한 지난해 4월부터 일부 매장에서 신용카드와 스타벅스 카드, 모바일 페이 등 현금 이외 결제 수단만 쓸 수 있는 ‘현금 없는 매장’을 운영하며, 고객들에게 스타벅스 카드 가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2019년 10월 기준 전국 1200여개 매장의 3분의 1가량인 403곳이 현금 없는 매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참고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엔에이치엔(NHN)페이코 등 국내 간편결제 및 송금 업체 55곳은 총 1조5000억원가량의 선불충전금 잔액을 갖고 있다. 한대훈 에스케이(SK)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은 “전세계 스타벅스에 예치된 선불충전금이 2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며 “암호화폐를 매개로 호환성을 해결할 수 있다면 스타벅스가 금융 플랫폼 사업자로 거듭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백트가 뭐길래

스타벅스가 비트코인을 매개로 78개국 매장을 통합할 수 있다면, 소비자 입장에선 국가를 옮겨 다닐 때마다 환전을 하거나 카드 해외 결제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어진다. 알리페이, 위챗페이의 사용처가 늘수록 중국인 관광객들의 외국 여행이 편리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스타벅스 입장에서는 대규모 선불충전금을 활용해 금융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을 공동의 결제 장부 삼아 세계 시장에서 확보한 자금을 한데 모아 다른 곳에 투자를 해 수익을 내거나, 스타벅스 애플리케이션 내에서 고객들에게 대출 등 직접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시나리오를 상상해볼 수 있다. 특히 백트가 현물결제가 아닌 실물인수도 방식의 비트코인 선물 거래소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물인수도란 정산 시점이 아닌 거래가 체결되는 시점에 비트코인이 실제로 오가는 방식이다. 따라서 백트는 거래소 기능뿐 아니라 디지털 자산 수탁기관 구실 또한 수행하게 된다.

 스타벅스와 같은 기업이 디지털 자산을 직접 보관하고 관리하기엔 보안 측면에서도 비용 측면에서도 부담스럽다. 반면 백트와 같은 플랫폼을 거치면 이런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암호화폐가 앞단에선 고객 편의를, 뒷단에선 자산 운용 편의를 높여주는 도구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더구나 스타벅스는 은행도, 전자지불사업자도 아니기에 지불준비금 등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용약관상 선불충전금에 대해 고객에게 이자를 지불할 필요도 없다.

 한대훈 연구위원은 특히 남미와 같이 은행에 대한 신뢰가 낮은 지역에서 ‘스타벅스 은행’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스타벅스는 2018년 10월 아르헨티나 현지 은행 ‘방코 갈리시아’(Banco Galicia)와 손을 잡고, 스타벅스 은행 지점을 여는 실험에 나섰다. 고객들은 스타벅스 매장에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고, 스타벅스는 은행의 업무 노하우를 얻어올 수 있다.

 한 연구위원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조기 집행에도 불구하고 페소 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하락하는 가운데, 아르헨티나 국민들 입장에서는 스타벅스라는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 자국 은행보다 믿음직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앞세워 금융 넘보는 기업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지난달 신년사에서 스타벅스가 더이상 단순한 커피회사가 아니라 ‘규제받지 않는 은행’이라며 “기술의 발달이 업권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이 가져다준 편의와 규제 공백을 등에 업은 글로벌 기업과 암호화폐 관련 업체들은 적극적으로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다.

 백트의 모회사 인터콘티넨털익스체인지는 이달 초 미국의 로열티 솔루션 업체 브리지2솔루션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브리지2솔루션이 운영 중인 대형 로열티 포인트 교환 사이트엔 약 6000억달러 규모의 포인트가 예치돼 있다. 애덤 화이트 백트 회장은 지난달 한 행사에서 소비자용 백트 애플리케이션이 암호화폐뿐 아니라 주식과 로열티 포인트 기반 거래 또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브리지2솔루션이 이미 확보한 은행·기업과의 협업 관계나 이용자를 백트가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백트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자산 생태계는 무궁무진하게 확장 가능하다.

 일본 전자상거래 공룡 라쿠텐은 지난해 8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비트코인캐시를 일본 엔화로 사고팔 수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 ‘라쿠텐월릿’을 출시했다. 엔화뿐 아니라 라쿠텐 포인트로도 암호화폐를 살 수 있다. 라쿠텐에서 소비를 하고 얻은 포인트가 더는 ‘보너스’가 아니라 돈이 된다는 의미다.

 국내 결제 서비스 기업 다날의 암호화폐 결제 플랫폼 페이코인은 최근 신세계그룹의 간편결제 서비스 ‘쓱(SSG)페이’와 제휴를 맺었다. 이에 따라 쓱페이 앱에서 암호화폐 페이코인을 쓱머니로 전환할 수 있다. 쓱머니라는 중간 단계를 한번 거쳐야 하긴 하지만, 이마트와 스타벅스, 신세계백화점, 스타필드 등 신세계 계열사를 포함한 모든 쓱머니 온·오프라인 가맹점에서 페이코인을 현금처럼 쓸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전통 은행들이 방어할 수 있을까

국내 금융 기업들도 신기술을 활용한 새 비즈니스 모색에 적극적인 건 마찬가지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4월 금융규제 샌드박스 시행 이후 6개월 동안 8차례에 걸쳐 총 60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하며 이런 시도를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

 신한금융투자의 ‘해외주식 소수점 매매 서비스’는 지난해 10월 증권사 서비스 최초로 혁신금융서비스에 지정됐다. 주당 가격이 높은 해외 주식을 소수점 단위로 사고팔 수 있도록 해, 자투리 투자에 관심 있는 소액 투자자들을 끌어모은다는 구상이다. 우리은행 또한 지난해 10월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갖춘 소매점과 협업해, 은행 지점에 방문하지 않고도 스마트폰 앱으로 미리 환전한 돈을 차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드라이브스루 환전 서비스로 혁신금융서비스를 따냈다. 하지만 환전 서비스에 필요한 보안 체계와 인프라, 현금 수송 등 문제로 서비스 출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한중섭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는 이러한 국내 금융 기업들의 디지털 혁신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브랜드 파워나 자본력 면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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