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체인엑스(ChainX)가 느닷없이 거래량 1위에 올랐다. 그 배경엔 대규모 자전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경원 체인엑스 대표는 코인데스크코리아 인터뷰에서 ‘유동성 공급’을 위한 자전거래가 이뤄졌다고 시인하면서도, 직접적인 개입은 부인했다.

한국의 가장 유명한 거래소가 어딘지 물으면 대개는 빗썸이나 업비트를 꼽을 것이다. 암호화폐 열풍이 불었던 2017년 이래 거래량과 이용자 면에서 가장 압도적인 곳이라 평가받아온 곳들이다.

그러나 2020년 1~2월 데이터를 보면 얘기가 다르다. 이 기간 암호화폐 시세 사이트 코인마켓캡의 거래소 조정 거래량 통계를 종합해보면 국내 1위는 체인엑스였다. 이 거래소의 2월말 24시간 거래액은 20억1734만달러(약 2조4510억원)로, 2위(코인빗), 3위(빗썸), 4위(업비트)의 6~7배에 달했다.

체인엑스에서 이뤄지는 거래의 대부분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집중됐다. 2월27일 통계를보면 전체 85.96%가 비트코인-원화 거래, 12.64%는 이더리움-원화 거래다. 비트코인 거래량 통계만 떼어서 보면 거래소 간 격차는 더욱 극명하다. 최근 가장 거래가 활발했던 2월20일 체인엑스에서 거래된 비트코인 수량은 약 25만2735개로 같은 날 6643개가 거래된 업비트의 38배 수준이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이 ‘신기한’ 1등 거래소의 이용자를 수소문했으나 실사용자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접촉한 이경원 체인엑스 대표는 28일 전화 인터뷰에서 해당 거래량이 자전거래에 의한 것이라고 시인했다. 이 대표는 "체인엑스에 해외 사용자가 많은데 정작 거래소는 원화 기반"이라면서 "거래 유동성을 공급하려다 보니 그렇게(자전거래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매수-매도 호가 119만원 차에도 거래 잇따라

사실 취재 과정에서 복수의 업계 전문가들은 체인엑스 홈페이지 화면만 보고도 자전거래가 강하게 의심된다는 의견을 냈다. 

한 암호화폐 분야 엑셀러레이터 업체 관계자는 “거래 체결창을 몇 분만 지켜봐도 건당 거래되는 액수의 단위가 너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을 한번에 수천만원, 많게는 1억원 이상 사고 파는 사람들은 있는데, 몇십만원씩 거래하는 물량은 거의 없다”면서 “꼭 전문가가 아니어도 비트코인 투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게 실수요자들 간의 거래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맵스(comaps)의 조승기 대표는 "거래소 호가 창만 봐도 자전거래인지 아닌지를 짐작할 수 있다"며 "매수·매도 호가의 간격이 넓게 벌어져 있는데도 체결이 잘 되면서, 거래량도 많은 거래소는 대체로 자전거래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통상 실제 이용자가 많을수록 시장논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매수·매도 호가의 간격이 좁다. 반대로 이 간격이 벌어져 있는 거래소는 투자비용이 높기 때문에 실사용자가 많기 어렵다. 그런 곳에서 체인엑스처럼 압도적인 거래량이 나올 방법은 자전거래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 2월27일 체인엑스의 비트코인-원화 거래 호가창을 보면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가 119만원 정도 차이가 났다. 이 시기 비트코인 가격은 개당 1100만원 정도였는데 사려는 사람이 제시하는 금액과 팔려는 사람이 제시하는 금액 차가 100만원이 넘는다는 얘기다. 거래하기 쉽지 않은 조건인데도 이 거래소에서는 온종일, 많게는 한번에 10 BTC씩 거래가 체결됐다. 대부분 거래가 2~4초의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체결돼 ‘봇 트레이딩’ 의혹도 제기된다. 호가 창에 표시되는 매수 잔량과 매도 잔량을 모두 합쳐도 1 BTC가 되지 않는데다, 이 숫자는 거의 변하는 법도 없었다. 

27일 체인엑스의 비트코인-원화 거래 호가창과 실시간 체결창. 매수·매도 호가 차이가 100만원이 넘는다. 대부분의 거래는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2~4초 간격을 두고 체결된다.
27일 체인엑스의 비트코인-원화 거래 호가창과 실시간 체결창. 매수·매도 호가 차이가 100만원이 넘는다. 대부분의 거래는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2~4초 간격을 두고 체결된다.

바이낸스 3배를 보유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이경원 체인엑스 대표는 ‘유동성 공급’ 차원에서 자전거래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논란의 여지는 남는다. 가장 큰 문제는 체인엑스가 해당 거래량을 모두 소화할 만큼 암호화폐를 보유했는지다. 만약 거래소의 거래창에 ‘매도’와 ‘매수’ 주문이 잔뜩 있지만 실제 거래소 안에 그만큼의 암호화폐가 없다면 ‘허위 거래’, 곧 가장매매(Wash Trade)가 되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급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도 거래소 자전거래의 허위성 등 혐의로 기소됐다가 지난 1월 말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업비트는 재판 과정에서 '마켓메이킹'을 위해 실보유 자산 잔고 범위 안에서 자전거래가 진행됐다고 설명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체인엑스의 자전거래는 규모가 너무 커서 허위 거래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암호화폐 분석 업체 크립토퀀트의 장병국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올해 2월25일치 코인마켓캡 자료를 보면 이 거래소의 하루 비트코인 현물 거래량은 세계 2위로, 글로벌 최고 수준 거래소 바이낸스의 비트코인 현물 거래량의 3배"라며 "체인엑스가 바이낸스보다 3배 많은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면 모를까, 상당 부분이 가장매매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아니다. 자전거래는 모두 프로젝트가 했다”

체인엑스는 자전거래를 행한 주체가 거래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경원 체인엑스 대표는 "자전거래를 하는 것은 맞지만 대부분 거래소에 상장된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고, 그쪽(프로젝트)에서 하는 게 전체 유동성 공급 물량의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곧 거래소의 책임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동시에 프로젝트가 보유한 범위에서 이뤄진 자전거래이므로, 거래소 자체의 암호화폐 보유량과 관계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설명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체인엑스 거래량의 대부분(98.6%)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 설명대로,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거래소에 코인을 상장한 뒤 직접 유동성 공급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프로젝트는 자신이 발행한 코인의 유동성을 공급한다. 자기 코인이 아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유동성을 공급할 이유는 없다.

이경원 체인엑스 대표. 출처=블록미디어
이경원 체인엑스 대표. 출처=블록미디어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이와 관련해 이경원 대표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그는 즉답을 피했다.

―프로젝트가 왜 비트코인, 이더리움 유동성을 공급하는가?

=정확한 물량은 분석을 해봐야 알것 같지만 대부분 상장 프로젝트에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거래소 차원에서 하는 유동성 공급 작업은 거래소가 직접하는가? 아니면 별도의 유동성 공급 업체를 쓰는가?

=내부적으로 하지는 않고 있다. 

―지금까지 체인엑스의 자전거래 대부분을 상장 프로젝트들이 진행한거라면,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비슷한 거래량이 유지된다는 뜻인가?

=시장을 투명하게 하는 것에 방해가 되거나 안좋은 영향이 있거나 하는 경우에는 (프로젝트에) 얘기를 해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할 생각이다.

 

위법을 얘기할 거리가 없다, 아직은

만약 체인엑스의 자전거래가 허위성 가장매매(Wash Trade)였다면, 거래량을 실제보다 많은 것처럼 부풀린 셈이 된다. 투자자들이 거래량 많은 거래소를 선호한다는 점을 악용해 일종의 눈속임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려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유동성 공급, 마켓메이킹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장매매는 다른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자전거래로 거래가 활발한 듯 고객들을 속여놓고, 실제로는 영업부진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도산하거나 폐업하기라도 하면, 그 피해는 자산을 예탁한 투자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이런 탓에 국내 증시에서 자전거래는 법으로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가장매매나 통정매매(2인 이상)는 불법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은 “매매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 듯이 잘못 알게 하”면서 시장을 호도하는 등의 시세 조종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적발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이익의 3~5배 상당 벌금의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176조) 법령에 따른 안정적 자금 조달이나 유동성 공급 등 예외조항이 있고, 동일 투자자 내 지분 이전 등 불가피한 자전거래는 사전 신고를 하게 돼있다.

증시에서는 거래소가 직접 자전거래에 뛰어들 수도 없지만, 암호화폐 거래소에서는 심지어 가장매매도 처벌하기가 힘들다. 자본시장법이 암호화폐 시장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거래참여 여부에 대한 적절성, 비난가능성에 대한 판단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현행 법령상 가상화폐 거래소의 거래참여 자체가 금지된다거나 신의성실의 원칙상 가상화폐 거래소가 거래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 당연히 기대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 1월31일 두나무(업비트 운영사) 관계자들의 사기 및 사전자기록 위조 등 혐의 관련 1심 판결문 

업계에서는 체인엑스 경우처럼 스프레드(매도와 매수 호가의 차이)가 벌어진 상태에서 그 사이 존재하지 않는 가격대의 자전거래를 통해 거래량을 늘리는 것이, “매매가 성황을 이루는 듯” 보이게 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으로 본다. 그러나 어떤 작은 거래소가 지나친 가장매매를 자행해 설령 거래량이 한국 1위에 이르렀다 해도,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에 대한 규제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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