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퍼랩스의 제품 총괄 킴 코프(오른쪽)가 2019년 콘센서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코인데스크
대퍼랩스의 제품 총괄 킴 코프(오른쪽)가 2019년 콘센서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코인데스크

초기 이더리움 생태계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앱을 만들었던 한 회사가 이제는 이더리움을 떠나 직접 체인을 개발해 신규 사업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지난 2017년 말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고양이 수집 게임 크립토키티(CryptoKitties)로 성공을 거둔 뒤 벤처투자자들로부터 3900만 달러 가까운 자금을 모은 스타트업 대퍼랩스(Dapper Labs)가 자체 개발 예정인 블록체인 ‘플로우(Flow)’의 시뮬레이터를 5일 출시했다.

이로써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이더리움에서 구동해오던 대퍼랩스는 이제 이더리움에서 벗어나 자체 프로토콜을 만드는 스타트업 대열에 합류했다.

대퍼랩스의 공동설립자 디터 셜리는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다른 블록체인을 원했고, 그렇게 이 블록체인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플로우 놀이터(Flow Playground)라는 이름의 시뮬레이터는 앱 개발자들을 모집하는 데 사용된다.

셜리는 새로운 프로그램 언어인 케이던스(Cadence)에 관해 설명하면서 “새로운 프로그램 도메인이 생기면 자연히 새로운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대퍼랩스가 이더리움의 프로그램 언어인 솔리디티(Solidity)에서 다른 언어로 바꾸게 된 것이 확장성의 한계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이더리움 2.0 출시를 앞두고 이더리움의 샤딩(sharding)에 대한 접근 방식이 스마트계약에 심각한 제약을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자사 개발팀에서 크립토키티가 이전에 이더리움 블록체인에서 일으켰던 네트워크 병목 현상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적잖은 게임 용량을 처리할 수 있는 좀 더 소비자 친화적인 플랫폼을 원했다고 설명했다.

대퍼랩스가 개발한 이더리움 고양이 수집 게임 크립토키티는 출시 직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인기가 지속하지는 못했다. 댑레이더에 따르면 이번 주 크립토키티 이용자 수는 2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지난 2017년 한때 하루 활성 사용자 수가 14914명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그러나 최근 대퍼랩스가 UFC나 NBA 등 스포츠 리그와 잇따라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을 보면 시장이 대퍼랩스에 분명한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전에도 이러한 기업들 덕분에 이더리움의 대체불가능토큰(NFT) 표준 ERC-721이 인기를 끌었다.

셜리는 100여 명의 직원이 차기 신작의 대성공을 바라는 가운데 대퍼랩스는 올해 공인투자자들을 상대로 토큰을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 세부사항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블록체인은 토큰을 판매함으로써 자체적으로 수입을 올린다”며 법을 어길 소지가 아주 작아질 때까지는 일반 투자자를 상대로 토큰을 판매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블록체인 개발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게임 사업으로부터의 자금 조달과는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임 사업은 별개로 잘 운영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퍼랩스는 새로 개발한 블록체인의 초기 테스트를 위해 학계 파트너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데이비드 브로커 퍼듀대 연구원은 그의 팀에서 플로우 노드 운영 계획을 세워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더리움이 블록체인 2.0이라면 플로우는 4.0버전이라고 생각한다. 플로우는 대중 소비자들이 있는 시장에서 인기를 얻을 블록체인 기술이라고 본다.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더욱 폭넓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운 프로그램 언어와 블록체인 구조를 개발하는 데는 수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프리랜서 소프트웨어 개발자 유발 코그먼은 토큰 판매를 통해 자체 언어를 개발하는 기업들이 얼마나 많건, 거기엔 많은 문제가 뒤따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출시된 지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제품상의 하자로 개발자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놀림을 받는 자바스크립트를 예로 들었다.

“언어를 설계하는 작업은 너무도 복잡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분명한 원칙과 요건을 염두에 두고 언어 자체에 집중하지 않은 이상 실제 성공적으로 프로그램하거나 스크립트를 개발한 시스템은 본 적이 없다.” -유발 코그먼, 소프트웨어 개발자

이런 이유로 이더리움과 경쟁을 벌이는 기업들이 경쟁 제품 개발을 위한 기초 작업을 그렇게 오랫동안 하고 있고, 그 사이 시뮬레이터나 대회 등을 통해 제한된 개발자의 인지도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선두 차지?

이런 식으로 새로운 블록체인을 개발하는 곳이 대퍼랩스 만은 아니다. 현재 수많은 스타트업이 이더리움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치아(Chia)의 CEO 브램 코헨 역시 벤처 투자를 받아 향후 출시될 치아 네트워크(Chia Network)에 사용할 언어를 개발하고 있다. 그는 앞서 언급된 두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처럼 결국 치아가 토큰 판매와 스마트계약을 통해 이더리움을 완벽히 밀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치아와 플로우 모두 메인넷 출시 예정일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면서 이더리움 2.0의 지분증명(PoS) 모델이 근본적으로 중앙화 특성이 있는데, 치아의 생태계는 이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셜리는 네트워크 운영을 위해 이해당사자들이 자금을 묶어둘 수 있는 이더리움의 전략을 따를 예정이다. 그러면서도 이더리움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프로젝트로 게임 개발자들 사이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트론(Tron)’과 같은 프로젝트는, 그가 추구하는 목표보다 너무 중앙화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지는 않을 거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 두 사람의 중앙화가 가져올 위험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달랐다.

토큰 판매를 통해 설립된 스타트업 아이오텍스(IoTex)의 사업개발 부문 총괄 래리 팽 역시 대퍼랩스 같은 기업들이 앞으로 보조금, 이벤트, 기타 후원 혜택이 사라지면 이더리움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대퍼랩스의 경우 어떠한 보조금도 지원받은 바 없으나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이 대퍼랩스의 투자사 펜부시 디지털(Fenbushi Digital)을 소유하고 있는 펀드에서 고문직을 맡은 바 있다.)

아이오텍스는 치아나 대퍼랩스와 달리 자사 토큰을 위한 고유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하지 않았다. 아이오텍스는 지난 2018년 암호화폐공개(ICO)를 통해 3천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모았다.

“우리 블록체인은 고(Go) 언어로 코딩돼 있다. 스스로 완전히 단절시키지 않는 게 중요했다. 또 스마트계약을 사물인터넷(IoT) 세계에서 가져오는 일도 중요했다.” - 래리 팽, 아이오텍스 사업개발 부문 총괄

대퍼랩스에 투자한 워너 뮤직(Warner Music Group)과 같은 고객들을 위해 액시스포인트(AxisPoint)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개발자 신디 지머맨은 이 세 회사가 결국 이더리움의 선두 자리를 빼앗든 아니든 기업 고객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이더리움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드 운영비와 이더리움 네트워크상의 지체 현상 심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었다(워너 뮤직에도 취재를 요청했으나 출고 시점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

“워너 뮤직이 자체 블록체인 솔루션을 개발한다면 정보, 보안 등 여러 방면에서 해당 블록체인에 대한 통제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럼 당장 해당 솔루션을 고객들과 업계 내 다른 관계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느냐가 문제로 떠오른다.” -신디 지머맨, 개발자

여기에 중요한 질문이 들어있다. 바로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스타트업들이 앞다투어 경쟁을 벌일 만큼 블록체인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원하는 수요가 큰가?’ 하는 것이다.

아이오텍스의 래리 팽은 “프로세스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으며, 그들의 눈높이에 우리가 맞춰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대퍼랩스의 셜리는 당분간은 새로 개발한 블록체인을 위해서 개발자와 이해당사자들을 모으고 의견을 듣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시 시점에는 자사 투자자와 파트너들 등 우리가 아는 이들이 노드를 운영하겠지만, 블록체인의 아키텍처(시스템 구성) 설계상 보안을 위해서는 소수의 아는 참여자 그 이상이 필요하다. 수천 명에 달하는 익명의 참여자들에게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디터 셜리, 대퍼랩스 공동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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