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플리커
출처=플리커

암호화폐 산업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채굴형 거래소 모델이 에프코인(Fcoin)을 시작으로 여러 실패 사례만을 남긴 채 저물어 가고 있다. 트레이드마이닝(Trade-to-mine)과 거래소토큰이 거래소와 투자자가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모델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모델임이 증명된 것이다. 채굴형 거래소들이 개미 지옥으로 추락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17일 트레이드마이닝을 무기로 채굴형 거래소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에프코인이 1억3000만 달러(약 1570억 원) 어치의 비트코인이 부족해 파산을 선언했다.

에프코인이 최초로 도입했던 트레이드마이닝의 구조는 이렇다. 고객이 에프코인에서 암호화폐를 거래하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의 51%를 자체 거래소토큰인 FT로 되돌려준다. 기존 거래소와 달리 수수료를 고객에게 되돌려 준다는 컨셉은 수많은 암호화폐 유저를 끌어들었다. 여기에 이 과정에서 발행되는 거래소토큰의 가격이 상승하면, 거래하기만 해도 막대한 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며 에프코인의 거래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에프코인은 설립된 지 한 달 만인 2018년 6월 하루 거래량 56억 달러(약 6조2949억 원)를 기록했다. 신생 거래소가 바이낸스, 후오비글로벌, 오케이EX, 빗썸 등 당시 손꼽히는 거래소의 거래량을 불과 한 달 만에 넘어선 것이다.

세상을 놀라게 한 에프코인의 채굴형 거래소 열풍은 국내에도 불어닥쳤다. 코인빗, 코인제스트, 캐셔레스트, 비트소닉 등이 트레이드마이닝을 도입하고 거래소토큰을 발행했다. 이들은 에프코인과 마찬가지로 고객들에 거래만 하면 거래 수수료를 거래소토큰으로 돌려받을 수 있고, 추가적인 수익 배당에 거래소토큰 가격 상승 차익도 얻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그 결과 후발 주자 중소형 거래소였던 코인제스트, 캐셔레스트, 코인빗, 비트소닉 등이 차례로 빗썸과 업비트의 거래량을 넘어서며 국내 거래량 1위를 차지했다. 채굴형 거래소, 거래소토큰을 도입하지 않은 거래소는 바보라는 소리가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막대한 거래량과 수익에 눈이 먼 거래소와 투자자는 채굴형 거래소 모델에 금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거래량 상승이 멈추면 채굴형 거래소도 멈춘다

채굴형 거래소는 거래 수수료를 기반으로 거래소토큰을 발행해 고객에게 되돌려 주는 구조다. 거래소토큰을 많이 보유할수록 추가적인 수수료 배당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더 많은 수수료 배당을 받기 위해서는 거래소토큰을 얻어야 한다. 거래소토큰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는 거래소에서 암호화폐 거래를 많이 해야 한다. 거래량과 거래소토큰 발행, 보유에 따른 수수료 수익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게 바로 거래소가 말하는 선순환 구조다. 문제는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시스템이 무너진다. 거래소의 거래량 상승이 멈추는 순간, 수수료 수입이 줄고, 거래소토큰의 가치는 폭락한다.

"거래량 상승이 멈추는 순간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시작되면서 투자자가 이익을 얻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결국 트레이드 마이닝 모델이 무너지게 된다." - 구태언 법무법인 린 부문장(변호사)

2018년을 지나 2019년에 들어서면서 암호화폐 거래량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채굴형 거래소는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코인제스트, 비트소닉…추락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에프코인의 파산도 충격적이었지만,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채굴형 거래소들이 고꾸라진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2018년 7월 국내에서 처음 채굴형 거래소 모델을 도입한 코인제스트는 거래소토큰 코즈(COZ)를 발행했다. 코즈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코인제스트의 하루 거래량 국내 1위를 견인했다. 하지만 전체 거래량이 한계에 부딪히자 이내 코즈의 가격은 폭락했고, 거래량 함께 추락했다. 코인제스트는 코즈를 대체할 새로운 거래소토큰으로 코즈아이(COZi)를 공개했다. 이 역시 힘이 빠지자 코즈플러스(COZP)라는 거래소토큰을 꺼내 들었다. 거래소토큰을 연달아 발행했지만, 거래량 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하자 코인제스트는 거래소에 보관된 고객 예치금을 또 다른 거래소토큰 코즈에스(COZ-S)로 교환 지급한다고 발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코인제스트의 전체 하루 거래량은 약 2000만 원에 불과하다.

"거래소토큰을 발행하면서 거래량이 늘자 거래소 수익이 급증했다. 거래소토큰 코즈의 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으로 내부에서는 분석했다. 안일했다. 나중을 대비하지 못했다. 코즈가 폭락하자 거래량도 급감했다. 걷잡을 수가 없었다." - 익명을 요청한 코인제스트 퇴사자

또 다른 채굴형 거래소 비트소닉도 코인제스트와 상황은 비슷하다. 거래소토큰인 비트소닉토큰(BSC)을 발행하면서 비트소닉 거래량도 급등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거래량이 줄었고 BSC의 가격은 더욱 가파르게 내려앉았다. 비트소닉은 BSC의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가격 하한가' 정책을 도입했다. 매도 물량이 쌓이면 토큰 가격이 하락해야 하지만, 거래소가 임의로 가격을 고정했다. 거래량이 줄고 BSC 매도 물량이 늘자 비트소닉가스(BSG)라는 거래소토큰을 발행하며 가격하락을 막으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코인빗이 발행한 거래소토큰. 출처=코인빗 홈페이지
코인빗이 발행한 거래소토큰. 출처=코인빗 홈페이지

또다른 채굴형 거래소 코인빗은 채굴 모델의 한계를 추가적인 거래소토큰 발행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코인빗은 덱스(DEX)를 시작으로 덱스터(DXR), 덱스터2(DXR2), 덱스터G(DXG), 넥스트(NET), 판테온(PTO)에 이르는 거래소토큰만 6개를 연달아 출시했다. 이 중 판테온은 코인빗이 자체 발행한 거래소토큰은 아니지만, 판테온을 보유하고 있으면, 코인빗이 거래 수수료의 90%를 준다고 홍보하고 있는 만큼 앞선 거래소토큰과 역할은 동일하다. 다시 말해 기존과 동일한 한계에 같은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있는 셈이다.

 

캐셔레스트 채굴 모델 포기

트레이드마이닝을 도입해서 급성장한 캐셔레스트는 거래소토큰은 그대로 가져가지만 채굴 모델은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캐셔레스트는 2018년 8월 트레이드마이닝을 통해 거래소토큰 캡(CAP) 발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거래량이 무한히 증가하지 않으면 결국 거래소토큰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캐셔레스트는 계획된 발행량 5000억 개를 미처 채우지 못하고, 채굴 모델을 도입한 지 5개월 만에 미발행량 1100억 개를 소각했다. 캐셔레스트는 캡을 대신해 HRT라는 새로운 트레이드마이닝 기반 거래소토큰 발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HRT 역시 발행을 시작한지 약 4개월 만에 또 다시 채굴 종료를 선언했다. 다만, 이미 발행된 캡과 HRT 미소각 물량은 캡페이몰(CAPAY mall)이나 토큰 상장 투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캡과 HRT는 처음부터 설계된 정상적인 과정에 의해 종료됐다. 캡과 HRT 채굴은 종료된 상태지만, 발행된 코인을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나갈 계획이다. 다만, 캡과 HRT의 추가적인 소각 계획이나 발행된 수량은 코인 시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공개하지 못한다." - 캐셔레스트 관계자

트레이드마이닝과 거래소토큰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캐셔레스트는 결국 거래량에 연동돼 토큰을 발행하는 채굴 모델을 포기했다.

 

"잘못된 모델에 욕심이 더해졌다"

트레이드마이닝 모델의 실패에는 거래소의 판단 오류와 방만한 경영도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채굴 모델은 일반적으로 전체 거래 수수료의 약 40%를 거래소토큰으로 발행한다. 거래소가 100원의 수수료 수익을 얻는다면, 고객에게 40원을 되돌려주는 셈이다. 여기에 거래소토큰 보유에 따른 배당 수수료가 추가되면, 실제 거래소의 수수료 수익은 이보다도 줄어든다.

사실 채굴 모델은 고객 유치를 위한 마케팅 수단 성격이 크다. 그런데 이로 인해 거래소가 손실을 봤다면, 이는 경영상 판단 오류나 허점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채굴 모델과 거래소토큰은 후발 주자인 중소형 거래소의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었다.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 거래소 성장이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겠지만, 과도한 지출로 손실이 발생한다면 이건 마케팅 수단의 실패가 아니라 경영상의 판단 오류로 보는 게 합당하다. 채굴 모델을 도입한 거래소 중 상황이 악화한 거래소를 살펴보면 대부분 초반의 성공에 심취해 방만한 경영을 일삼고, 합리적인 경영 판단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빠진 것으로 보인다." - 스카이메도우 한인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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