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네 크리스텐센 메이커다오 CEO. 출처=코인데스크
루네 크리스텐센 메이커다오 CEO. 출처=코인데스크

메이커다오(MakerDAO) 네트워크는 현재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다. 이더(ETH) 가격이 급락하면서 자체 스테이블코인인 다이(DAI)를 빌려줄 때 받은 담보물의 가치가 떨어져 자동청산 시스템이 가동됐다. 지난 11일 개당 200달러 정도에 거래되던 이더 가격은 이튿날인 12일 글로벌 시장의 대혼란 속에 95달러까지 폭락했다가 현재는 110~120달러 선을 지키고 있다.

이더리움 네트워크에는 이미 처리할 거래가 많이 몰려있어 오프라인 보관소 볼트(Vault)에 보관해둔 담보를 재빨리 판매할 수 없었다. 청산인 역할을 하는 자동봇 키퍼(Keeper)도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거래 수수료인 가스(gas)가 이렇게 급격히 오르는 상황에는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시스템이 먹통이 되는 바람에 이더 가격이 반등한 이후에도 불필요한 청산이 진행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어느 한 키퍼가 볼트에서 경매로 나온 이더를 0달러에 구입해 메이커다오 시스템 전체에 현재 가격으로 약 570만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적자를 안겼다. 상황은 계속해서 급박하게 변하고 있다.

탈중앙화 플랫폼 설립자들에게 이러한 위기는 최악의 악몽과도 같다. 많은 사람이 메이커다오가 직면한 지금 상황을 두고 이더 시장이나 그보다 더 광범위한 암호화폐 시장에서 일어난 예측 자체가 불가했던 ‘블랙스완(black swan)’ 현상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상황에 대비할 계획을 미리 세울 수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블랙스완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에 이미 사건의 발생 여부와 시기를 합리적으로 예측하기 불가능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메이커다오가 이번 사태를 예견할 수 없었다고는 해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둘 수는 있었다. 상황이 여전히 빠르게 변하고 있긴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디파이(DeFi, 탈중앙화된 금융 시스템) 설계팀들은 경제적 인센티브와 거버넌스 설계가 나중으로 미룰 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용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상황에 따라 변하는 모든 위험요소를 적극 고려해야 하며, 이번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를 갖추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거버넌스란?

이전 칼럼에서도 소개했지만,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거버넌스란 단순한 운영 구조나 규칙과는 좀 다른 개념이다.

블록체인 플랫폼을 처음 설계할 때 대개는 운영 구조에 치중한다. 운영 구조란 ‘플랫폼의 일상적인 기능과 이용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상호 합의된 규칙 또는 절차’를 말한다. 다음 블록 생성과 관련된 결정을 내리는 알고리듬이나, 검증자에게 제공하는 보상 규모 같은 것들이 운영 구조다. 계약이나 시장설계 같은 경제적 설계도 많은 부분 운영 구조에 포함된다.

반면, 거버넌스는 ‘플랫폼의 운영 규칙을 바꿔야 하거나 운영 규칙으로 해결할 수 없어서 이해당사자들이 모여서 다함께 결정을 내릴 때 기준이 되는 일련의 메커니즘’을 말한다. 운영 규칙이 명백한 절차와 합의를 말한다면 거버넌스는 운영 규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나머지를 다루기 위한 절차인 셈이다.

시장 상황의 변화가 불가피하고 블랙스완 현상을 피할 수 없는 지금, 경제적 관점으로 본다면 거버넌스는 모든 블록체인 플랫폼에 필수 요소다. 시스템이 얼마나 잘 설계돼 있건, 플랫폼 알고리듬이 얼마나 구체적이건, 이용자들이 프로토콜 규칙을 바꿔야 하는 상황은 항상 있을 수 있다. 대개 기업이나 기관에서는 임원들이 그 역할을 맡지만,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플랫폼에서는 커뮤니티 차원에서 공동으로 결정을 내려야한다. 따라서 그때 기준으로 삼을 만한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거버넌스 체계를 설계하는 과정에선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먼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범위를 명확히 정의할 규칙이 필요하고, 취해야 하는 조치를 제안하는 방식은 어떻게 할지, 투표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로 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또 결과를 공유하는 방식이나 결정 사안을 이행하는 방식도 정해야 한다. 제대로 설계된 거버넌스 절차라면 반드시 위기상황의 거버넌스를 포함하고 있다.

 

메이커다오 사태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지금 메이커다오 커뮤니티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잘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거버넌스 설계와 관련해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

위기 거버넌스는 플랫폼 설립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플랫폼 설립자들 입장에서는, 이용자들이 자신의 개인적 이득을 위해 플랫폼을 이용할 거란 생각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플랫폼 설립자들은 위기상황 발생 시 모든 이용자가 플랫폼 편에 서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위기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이해당사자들이 개입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메이커다오 플랫폼에서 핵심 역할을 맡는 이해당사자가 바로 키퍼다. 메이커다오의 백서에 따르면 키퍼란 ‘탈중앙화된 시스템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유동성을 제공하며 차익거래 기회를 인센티브 삼아 활동하는 주로 자동화된 외부 주체’를 말한다. 키퍼란 메이커프로토콜(Maker Protocol)에 따라 다이를 목표 가격(1달러)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참여자를 일컫는다. 키퍼들은 다이의 시장 가격이 목표보다 높으면 팔고, 낮으면 사들인다.

이더 가격이 하락해 볼트가 자동 청산됐을 때 키퍼들은 청산된 볼트에 있던 이더를 구매하는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보통 이런 경매가 이뤄지면 키퍼 여럿이 입찰에 참여해 다이와 이더 간 경쟁력 있는 환율을 만들어 내게 된다. 하지만 최근 사태에서는 많은 청산 물량이 쏟아져 나오면서 한 키퍼가 2~3시간에 걸쳐 볼트에서 청산된 이더에 다이 0개를 지불하는 입찰을 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마이너스 시스템 흑자’로 불리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채무가 발생했다. 메이커다오는 이 문제를 직접 수습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이었다면, 설령 다이 0개를 입찰가로 제시하는 게 시스템상 가능할지라도, 플랫폼 설계팀은 전체 시스템의 신뢰도와 평판을 떨어뜨릴 것을 알면서 그런 입찰가를 진짜로 써낼 키퍼는 없을 거라고 주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사태가 발생하자, 공동의 안녕을 우려하는 마음 만으로는 자신이 청산 경매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유일한 키퍼라는 사실을 악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위기 거버넌스는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에 구체적으로 정해둬야 한다.

원래 메이커다오는 견실한 프로젝트인 동시에 디파이의 표본으로 여겨졌다. 지난해 말에는 벤처투자사들이 메이커다오의 거버넌스 토큰 메이커(MKR)를 3400만달러 이상 구매해 메이커 플랫폼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메이커 시스템 중 일부, 특히 위기 거버넌스 절차가 충분히 구체화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메이커다오 백서에 따르면, 메이커다오의 거버넌스 토큰인 메이커를 보유한 이들과 메이커다오 재단(MakerDAO Foundation)이 플랫폼의 긴급 폐쇄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플랫폼 폐쇄를 결정하는 데 적용할 구체적 기준이 없었다. 이더 시장에서 발생한 정체로 볼트에 담보를 추가로 예치하지 못한 사람들은 플랫폼이 과연 폐쇄될 것인지, 아니면 자동 청산으로 입은 손실을 과연 메이커다오가 보상해 줄 것인지 혼란스러워했다. 메이커다오 채팅 포럼과 서브레딧(subreddit)에서 확인할 수 있듯 메이커다오 임원들이 이와 관련해서 해명하는 글을 블로그에 게재했지만 커뮤니티의 혼란은 지속되고 있다.

현재 메이커 팀에서 플랫폼을 수정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고, 실제로 적극적으로 수정하고 있지만, 그간 발생한 혼란으로 인해 커뮤니티는 이미 상당한 고통을 겪었다. 향후 대응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투입되는 시간도 막대하다. 많은 이들이 이번 청산이 부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고, 사전에 안내한 13% 청산 벌금보다 훨씬 높은 벌금을 물어야 했다고 말하고 있다.

위기 거버넌스에 플랫폼의 기본 변수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할 수도 있다.

볼트를 청산하는 경매에서 키퍼들이 변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탓에 키퍼가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볼트에서 청산된 이더에 대한 최저 입찰가를 사전에 매겨 놓았더라면 이더가 다이 0개에 팔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 메이커 팀에서 최저 입찰가를 높여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실제로 최저 입찰가를 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기 거버넌스를 통해 청산 경매의 최저 입찰가 등 플랫폼의 기본 변수들을 좀 더 빠르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플랫폼 폐쇄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도, 이더 구매 요청에 빠르게 다이의 최저 입찰가를 설정하는 의사결정 절차가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은 더 나았을 것이다. 위기 거버넌스 절차뿐 아니라 그 절차로 해결할 수 있는 요소도 미리 신중하게 규정해 놓는다면, 위기 거버넌스 절차의 효과가 훨씬 더 증대될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을 설계하는 초기 단계에서 위기 상황을 대비해 거버넌스를 미리 설계하자는 논의를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희망적인 것만 생각하고 싶은 팀원들은 자신의 프로젝트가 위기에 처할 수 있고 신속한 개입에 필요한 대처 수단이 필요하다는 상황 자체를 생각하기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를 사전에 준비해놓지 않고 설계팀에 유연성과 권한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면, 지난주 발생한 사태와 같이 예측 불가능하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위기상황이 발생할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겠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는 미리미리 대비하는 편이 낫다.

글쓴이 캐시 바레라는 경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리즘 그룹(Prysm Group)의 창립회원으로서 집리크루터(ZipRecruiter)에서 수석 경제학자를 지낸 코인데스크 칼럼니스트다. 바레라 박사는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영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Cathy Barrera 경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리즘 그룹(Prysm Group)의 창립회원으로서 집리크루터(ZipRecruiter)에서 수석 경제학자를 지낸 코인데스크 칼럼니스트다. 바레라 박사는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영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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