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박사’ 조주빈(24)씨가 박사방 거래에 이용한 암호화폐 지갑(은행계좌에 해당)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자금 흐름이 확인됐다. 경찰은 조씨 집에서 압수한 1억3천만원의 현금과 함께 이 자금도 범죄 수익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하고 있다.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24일 코인데스크코리아가 조씨가 박사방에 ‘돈을 보내라’고 공지한 암호화폐 지갑을 추적한 결과, 조씨가 박사방 운영 등에 활용한 ‘이더리움’ 암호화폐 지갑에서 최대 32억원에 이르는 자금 흐름이 포착됐다. 국내 301개, 국외 80개, 개인 지갑 132개 등 모두 513개의 지갑으로부터 8825이더(이더리움 단위)가 입금된 내역이다. 

한겨레 취재에 따르면, 조씨는 2018년부터 성착취물을 제작했고 지난해 7월부터 엔번방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박사방 가입비로 최대 200만원가량의 암호화폐를 회원들에게 요구했다. 경찰 수사 결과, 조씨는 총기와 마약 판매 등을 미끼로 다수의 사기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경찰이 성착취를 비롯한 각종 범죄 수익 거래에 이 암호화폐 지갑이 사용됐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하고 있는 까닭이다.

박사방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지난해부터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수천회에 걸쳐 쪼개고 합치는 ‘믹싱 앤 텀블러’ 기법을 사용했다. 데이터 분석업체 크립토퀀트 관계자는 “지갑의 입금 규모가 커지면서 추적을 피하는 방법을 사용한 게 감지된다. 지난해 이후 흐름을 보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다른 지갑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지난 11일 조씨가 박사방에 ‘후원금을 입금할 주소’라며 ‘모네로’와 이더리움, ‘비트코인’ 지갑 주소를 공지한 직후 이를 포착해 분석에 착수했다. 서울지방경찰청도 이와 관련해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 4곳을 압수수색했다. 조씨는 당시 “가장 안전한 게 모네로 코인”이라고 밝혔다. 모네로는 박사가 초창기부터 주로 사용하던 암호화폐 지갑으로 박사의 주거래 계좌다. 모네로를 거래한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관계자는 “경찰로부터 조씨의 거래 내역에 대한 협조 공문을 받고 자료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한 보안업체 관계자는 “모네로를 거래하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거래 내역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씨의 추가 범죄 은닉 수익을 찾기 위한 광범위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성착취범 조주빈(24)씨가 ‘박사방’에 자신의 암호화폐 지갑 주소라고 공지한 계좌는 모두 3개다. 암호화폐 지갑 주소는 은행 계좌번호에 해당하는데, 소유자가 누군지 알 수 없도록 숫자와 문자로 구성돼 있다. 조씨는 암호화폐로 입장료를 받고 성착취 동영상을 유통하는 텔레그램방에 회원들을 입장시켜주는 시스템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인물로 꼽힌다. 자신의 신원을 감추고 수사를 피하기 위해 텔레그램과 암호화폐라는 두가지 ‘방패’를 사용했다.

조씨는 고액방 입장을 원하는 회원에게만 일대일 비밀채팅으로 자신의 암호화폐 지갑 주소를 알려줬다. 또 무료로 입장이 가능한 ‘맛보기방’ ‘자유방’ 등에서 “암호화폐를 후원금으로 송금하면 언제든 고액방에 입장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그래서 정작 박사방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암호화폐 지갑 주소를 아는 회원은 많지 않았다.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한 뒤 텔레그램에 비밀방을 만들어 유포한 텔레그램 성착취 엔(n)번방 사건의 핵심인 ‘박사’로 추정되는 20대 남성이 지난 1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한 뒤 텔레그램에 비밀방을 만들어 유포한 텔레그램 성착취 엔(n)번방 사건의 핵심인 ‘박사’로 추정되는 20대 남성이 지난 1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조씨가 자신의 이런 규칙을 깬 건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던 지난 11일이다. 그는 이날 ‘문의방’을 만들어 회원 11명에게 후원금을 입금할 암호화폐 지갑 주소 3개를 공지한다. ‘모네로’와 ‘이더리움’, ‘비트코인’ 지갑 주소였다. 이 가운데 이더리움과 비트코인은 지갑 주소를 알면 입출금 내역 추적이 가능하다. 다만 조씨의 주거래 계좌인 모네로는 익명성을 특징으로 하는 암호화폐라 지갑 주소만으로는 자름 흐름을 추적할 수 없다. 모네로는 거래소가 거래 내역과 사용자 정보를 보관하기 때문에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통해 자금 내역을 확인해야 한다. 한겨레 취재 결과, 조씨의 모네로 계좌에는 조씨의 집에서 압수한 현금 1억3천만원보다 많은 2억~3억원 안팎의 암호화폐가 보관된 것으로 확인됐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더스팅’ 기법으로 이더리움과 비트코인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 더스팅 기법은 최초 암호화폐 입금 시점을 기준으로 자금 이동 흐름을 따라가며 모든 거래 내역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수십억원에 이르는 뭉칫돈 흐름이 포착됐다.

상세 분석을 보면, 이더리움 계좌는 2017년 5월8일 다른 암호화폐 지갑에서 9.49이더(104만원, 이하 당시 시세)가 입금되면서 첫 거래가 이뤄졌다. 이 계좌는 이후 소액이 계속 입금되면서 2018년 4월25일 무렵 2000이더(10억원)까지 자금 규모가 커졌다. 이후 이 돈은 연계된 또 다른 암호화폐 지갑으로 거의 대부분 이체됐다. 대신 다른 지갑들에서 돈이 일제히 넘어와 한때 8056이더(32억원)에 이르렀다. 이 지갑에선 박사방이 활발히 활동한 지난해 9월 이후에도 거래가 유지됐다.

이 돈은 사법당국의 추적을 피하고자 암호화폐를 수천차례에 걸쳐 쪼개고 합치는 수법인 ‘믹싱 앤 텀블러’ 방식으로 분산됐다. 이렇게 ‘세탁’된 암호화폐는 국외 거래소로 이체됐다. 조씨의 이더리움 계좌를 분석한 암호화폐 전문가는 “이런 방식은 자금세탁을 하거나 암호화폐에 대한 추적을 피해야 하는 사람들이 주로 활용하는 기법인데, 조씨가 그런 능력을 갖췄는지는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조씨의 또 다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지갑은 2015년 1월 최초 거래가 발생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소규모 이체 기록만 있었다. 2017년 1월부터 7월까지 그동안 해당 지갑에 모인 비트코인 중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빗’과 ‘크라켄’에 각각 10.02비티시(BTC·비트코인 단위, 2천만원 상당), 8.838비티시(1700만원 상당) 등 모두 18.858비티시(3700만원 상당)가 이체됐고, 현재 해당 지갑에는 자금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조씨의 암호화폐 지갑의 자금 흐름을 분석한 보안 솔루션 개발사 ‘웁살라시큐리티’ 관계자는 “이더리움과 비트코인 계좌가 전혀 다른 자금 흐름 양상을 보인다”며 “비트코인 계좌는 단순 입출금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한때 32억원이 거래된 이더리움 계좌가 범죄 수익 거래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더 큰 까닭이다.

경찰이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24일 오후 조씨가 구속 수감된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 취재진이 모여 있다. 출처=박종식/한겨레
경찰이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24일 오후 조씨가 구속 수감된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 취재진이 모여 있다. 출처=박종식/한겨레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거래자들도 공범으로 보고 모두 처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성착취물을 보는 데 돈을 기꺼이 낼 사람들이 있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해도 더 많은 돈을 내고 들어오는 사람이 존재하는 현실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구조에 기여하고 있다”며 “조씨와 공범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 더 이상 여성을 도구화한 성착취가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경각심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신수경 변호사는 “조씨에게 고액의 암호화폐를 지불한 사람들은 아마도 미성년자나 성인 여성 피해자들의 ‘스너프 필름’(실제 살인이나 가학·피학 성행위 장면 등을 담은 영상물) 같은 것을 보겠다고 생각해 그 정도 고액을 지불했을 것”이라며 “박사방에 들어가면 맞춤형 제작을 해줄 거라는 걸 알고 돈을 지불한 것이므로 아동 성착취물 제작의 공동정범으로 조씨와 똑같이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한겨레신문사의 자회사인 22세기미디어㈜가 운영합니다. 이 기사는 코인데스크코리아 박근모, 김병철 기자와 한겨레 김완, 오연서 기자가 취재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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