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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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기자
정인선 기자 2020년 4월21일 08:00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코리아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코리아

얼마 전 어느 블록체인 기업 관계자들과 식사를 했다. 업계에선 보기 드물게 여성 직원 비율이 40%에 달하는 기업이었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이 개발 인력이란다. 이쪽 업계에서 이런 기업은 본 적 없었다.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IT업계, 그 중에서도 블록체인 업계의 여성 종사자 비중이 왜 적을까’로 이어졌다. 마침 바로 직전에 ‘런드리고’, ‘마켓컬리’ 등 가사노동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서비스들에 대한 예찬이 오간 참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아무래도 그런 서비스들에 비하면 말랑말랑하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나는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국의 유일한 여성 기자다. 평소 이 사실을 자각할 일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이 새삼스런 사실을 되새기게 만드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예를 들면:

ㄱ기업 관계자는 코인데스크코리아가 마련한 행사 뒷풀이가 끝난 뒤, “다음 차는 저희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다”고 나의 남성 동료들에게 말했다. 낮에는 점잖게 인터뷰에 응했던 이가 밤에는 성구매를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 듣고 충격이 컸다. 나는 그날 그 자리에 없었지만, 만약 있었다면 그 사람 눈에는 내가 업무 이야기를 함께 나눌 ‘기자’보다는 눈치 없이 늦게까지 남아 접대를 방해하는 ‘여자 기자’로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뒤로는 취재를 할 때 그 사람에게 전문가로서 어떠한 의견도 구하고 싶지 않았다. 

ㄴ기업 관계자와는 해외 출장을 함께 갔다. 취재도 취재이지만, 현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업계 관계자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쌓고 돌아오는 일이 중요한 일정이었다. 저녁 자리는 술자리로 이어졌다. 참가자 스무명 가량 중 여성은 나 혼자였다. ㄴ기업 관계자는 술잔을 들고 내 옆에 와 앉으며 “술은 여기자님 옆에서 마셔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숙소로 돌아갔지만, ‘내가 과도하게 까칠하게 굴어’ 업무에 걸림돌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일정이 끝날 때까지 전전긍긍해야 했다. 

매체들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ㄷ매체는 유튜브로 진행되는 인터뷰에 기업 대표들을 데려와 앉혀놓고 ‘미남’ ‘미녀’ 운운하며 외모 품평을 한다. 어렵게 시간을 낸 스타트업 대표가 대중에게 뽐내고 싶을 것은 제품과 서비스의 훌륭함이지, 외모의 훌륭함 여부는 아닐테다. 그러나 낯선 카메라 앞에서, 그리고 수백명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앞에서 기자에게 문제를 제기하긴 쉽지 않다.

ㄹ매체는 여성 진행자의 성별과 나이를 콘텐츠 내용과는 무관하게 부각하는 호칭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업계의 주류를 차지하는 남성 시청자에게 호소한다. 그러는 동안 한 줌뿐인 여성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소외된다. 미안하지만 구독 리스트에서 두 매체를 삭제한지 오래다. 

업계의 많지 않은 여성들과 만나 대화해 보면 나만 겪는 일은 결코 아니다. 지금은 업계를 떠난 한 여성 인사는 “비슷한 일을 여러 차례 겪은 뒤로는, 일하며 만난 사람들과는 술을 한 잔 이상 마시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업계 인사들과 스스럼없는 친구 사이가 되고, 중요한 정보를 주고받을 기회가 줄어들게 되니 손해라면 손해를 감수하는 선택이다. (참고로 그도 나도 술자리 좋아하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다.)

나도 몇 번의 일을 겪은 뒤로 내가 ‘기자’가 아니라 ‘여성’임을 먼저 일깨워주는 이와는 굳이 업무 관계를 더 이어가지 않겠다는 나름의 원칙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지난 1년 반동안 이 원칙으로 인해 업무에 지장이 생긴 적은 없었다. (그간 쓴 기사들이 증명해 주리라 감히 말한다.) 

회사의 유일한 여성 기자로 일하며 가장 어려운 건, 궁금한 게 있을 때 믿고 물을 업계 관계자 풀이 상대적으로 좁다는 점이 아니다. 그보다는 앞서 나열한 모든 경험과 그로 인한 판단이 내 확대 해석의 결과물은 아닐까 하는 끝없는 자기검열이 더욱 괴롭다. 모든 기자에게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인데, 다른 동료 기자들은 할 필요가 없는 자기검열에 누구는 시간과 에너지를 더 써야 한다면 불평등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1년 반 전 블록체인 업계를 처음 취재하게 됐을 때 주변에서 여러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어떤 코인 사면 되냐’ 다음으로 많이 들은 말은 ‘비트코인 그거 포르노, 마약 사는 데 많이 쓰인다던데 정말이냐’였다. 막상 취재해 보니 그 말도 사실이었지만 누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술의 오명을 충분히 벗길 수 있다는 걸 느낀 때가 더 많았다. (‘말랑말랑’ 이야기를 한 기업도 그런 훌륭한 기업 중 하나다.)

기술은 언제나 가치중립적이다. 불법 성착취물을 암호화폐로 거래하는 데에도, 또 이를 추적하는 데에도 기술은 쓰인다. 앞서 나열한 문제들이 블록체인 업계에만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당연히 안다. 그러나 혁신을 부르짖는 이들의 낡은 행태가 더욱 모순적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블록체인이라는 내용물이 말랑말랑하고 아니고는 문제가 아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은 그런 걸 기준으로 직업이나 회사를 선택하지 않는다. 문제는 블록체인이라는 혁신적인 내용물을 담은 업계가 시대착오적일만큼 여성친화적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블록체인은 말랑말랑하지 않아서’라는 말은 여성과 남성이 종사하기에 적합한 분야가 따로 있다는 고정관념을 강화할뿐 아니라, IT 및 블록체인 업계 여성 종사자 비율이 작은 원인을 자칫 사회 구조가 아닌 여성 개인의 선택 탓으로 축소할 수 있기에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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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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