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안드리유닌 갓비트 창업자. 출처=코인데스크
알렉세이 안드리유닌 갓비트 창업자. 출처=코인데스크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하는 22살 알렉세이 안드리유닌(Alexey Andryunin)은 평범한 대학생이 아니다. 암호화폐 거래량을 부풀려 시세를 조작하는 봇을 운영하는 회사 갓비트(Gotbit)를 세워 이른바 ICO 열풍 이후 큰 재미를 본 사업가다.

안드리유닌은 11개월 전 코인데스크에 이름 없는 소규모 토큰들이 마찬가지로 잘 알려지지 않은 거래소에서 마켓메이커(market makers)를 고용해 거래량을 부풀리고 살아남는지 그 과정을 아주 솔직하게 설명했다. 물론 그 의미를 엄격히 적용하면, 봇을 이용해 거래량을 부풀리고 시세를 조작하는 갓비트 같은 업체를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마켓메이커(시장 조성자)로 부르는 건 잘못됐다.

1년 전 코인데스크와 인터뷰할 때만 해도 안드리유닌은 자신의 사업이 곧 문을 닫아야 할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ICO 열풍은 오래전에 사그라들어 소멸 직전이었다. 토큰 시장 규모 자체도 상당히 쪼그라들었고, 규제 당국이 암호화폐 산업 곳곳을 압박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만난 안드리유닌은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말한다. 갓비트도 계속해서 견실히 성장하고 있다. 토큰 프로젝트를 잘 육성하고 알려서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시켜 달라며 갓비트에 돈을 대겠다는 고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갓비트에 악재가 아니라 호재였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기회를 노리는 투자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분석을 도입하는 방안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 건 갑자기 암호화폐 시장이 다시 우리 회사를 원했기 때문이다.” - 알렉세이 안드리유닌, 갓비트 창업자

초기에는 봇을 이용해 거래량을 부풀려주는 일을 주로 했다면, 이제 갓비트는 토큰 프로젝트와 관련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 거듭났다. 프로젝트 창업자라는 사람이 그저 아이디어만 있는 경우에도 (돈만 내면) 갓비트가 알아서 코드도 짜준다.

처음에는 직원도 안드리유닌과 공동창업자 한 명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임직원 7명에 이르는 업체가 됐다. 여기에 안드리유닌이 3학년에 재학 중인 모스크바 대학교 수학과에만 가도 갓비트에서 프로젝트별로 각자 사정에 맞춰 일하고 싶다는 프리랜서 개발자들이 줄을 선다.

안드리유닌은 사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자, 이번 학기만 마치고 학교를 중퇴할 생각이다.

“기본적인 학문인 수학을 공부하는 일과 사업을 꾸려나가는 일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학업을 그만두고 아예 사업에 전념하기로 한 결정이 이해될 만큼 갓비트를 찾는 업체가 많다. ICO 열풍은 오래전에 사그라들었지만, 아직도 토큰을 판매해 사업 자금이나 기금을 투자받으려는 이들이 꽤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투자자들이 토큰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토큰을 발행하거나 판매를 중개하는 업체들도 다시 늘어났다.

물론 요즘 이야기되는 토큰 판매 규모나 투자금 액수는 2017년 ICO 열풍이 불던 때보다 훨씬 작다. 그러나 중요한 건 토큰 시장이 여전히 활발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0일 사이 코인마켓캡(CoinMarketCap)에 새로 등록된 토큰이 60개가 넘는다. 코인마켓캡은 최근 바이낸스에 인수됐다.

보잘것없는 토큰, 아주 작은 소규모 거래소에도 여전히 돈이 공급된다고 안드리유닌은 말한다. 매달 새로운 토큰을 출시하고 상장해 판매하는 걸 도와주고 갓비트 같은 회사가 받는 수수료 매출이 비트코인 1천개, 약 110억원은 될 거라고 안드리유닌은 추산했다.

 

팬데믹 덕분에

토큰 프로젝트의 암호화폐 거래소 상장을 중개하는 업체 리스팅닷헬프(Listing.Help)의 창업자 세르게이 키트로프는 올봄에 상장을 도와주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고 말한다.

“팬데믹으로 많은 사업체가 타격을 입었다.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눈을 돌리는 회사들이 많아졌고, 이는 자연히 상장 수요 상승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봄부터 여러 암호화폐 거래소가 상장 수수료를 낮추면서 수요가 더 늘어난 측면도 있다.

키트로프는 ICO를 통해 세상에 나온 토큰의 95% 정도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토큰의 시가총액을 봐도 2017년의 1/70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토큰을 이용해 사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는 암호화폐 거래소공개(IEO)를 진행하는 플랫폼 바이낸스 런치패드(Binance Launchpad)를 운영한다. 런치패드 플랫폼에선 전통적인 IEO 방식, 혹은 복권 방식으로 신규 토큰을 판매, 지급한다.

“2019년부터 IEO를 찾는 수요가 계속해서 줄었다. 하지만 바이낸스 이용자들 사이에선 런치패드의 인기가 아주 높은 편이다. 한 번 IEO를 하면 2만2천명 정도 고객이 참여한다.” - 리아 리, 바이낸스 대변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통적인 오프라인 사업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투자자들은 온라인, 디지털 분야로 눈을 놀렸다. 토큰 상장을 도와주는 또 다른 회사 B&R 그룹의 CEO 니키타 브루드노프는 “보통 오프라인의 전통적인 사업에 투자하던 사람들도 온라인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B&R 그룹은 갓비트의 서비스를 사서 고객사에 제공하기도 한다. 봇을 이용해 거래량을 부풀리는 서비스를 발주하면 갓비트가 해당 토큰의 거래량을 부풀리는 식이다.

부르드노프는 신규 토큰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는 회사들이 대부분 게임, 엔터테인먼트, 금융 회사라고 말했다.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온라인으로 투자하고 거래하는 데 들이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부르드노프는 지난 3월 중순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했을 때를 예로 들었다.

“많은 사람이 암호화폐 시장에 새로 유입됐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했을 때 이 신규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많이 샀다.”

부르드노프도, 안드리유닌도 고객이 원하면 토큰을 발행하고 상장하는 걸 도와주긴 하지만, 기존 사업이 탄탄한 회사들이 왜 굳이 토큰을 판매해 투자금을 모으려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암호화폐가 필요하신지?’

“가끔 지금 사업에서 암호화폐가 왜 필요한지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곤 한다. 적잖은 경우 본인도 그 이유를 대지 못할 때가 많다. 다들 ICO 얘기밖에 안 하던 2017년에 이 바닥에 발을 들여놓고 나서 그냥 관성적으로 계속해오고 있는 거다. 몇몇 프로젝트는 이미 업계에서 누군가 성공적으로 진행한 걸 답습하고 있는데, 회사들은 전에 누가 성공했으니 그대로 하면 잘 될 거란 말만 한다. 물론 규제 당국은 달가워하지 않지만, 아주 쉽게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기업공개(IPO)는 아주 복잡하고 통과하기 매우 어려운 절차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은 사업이 있어야 하고, 시가총액 기준도 있으며, 오랫동안 꾸준히 성장해온 기록도 있어야 한다. 반대로 토큰을 새로 만들 때 필요한 건? 비트코인 한개, 다섯줄가량 되는 코드. 그리고 이더리움에서 발행한 토큰만 있으면 된다.” - 알렉세이 안드리유닌

그러나 갓비트도 초기보다 훨씬 더 고객을 엄선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사업 모델의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판단해 가려내는 거다. 안드리유닌의 표현을 빌리면 “대충 토큰 띄워서 돈 좀 벌고 ‘먹튀’하려는 업체”를 걸러내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 고객 중에 스포츠게임 스타트업이 있다. 이 회사의 토큰 발행과 상장을 도와줬는데, 이 회사는 사업 모델도 훌륭하고 미래가 유망하다고 판단해 우리 회사가 받는 수수료도 할인해줬고, 심지어 수수료 결제를 일부는 그 회사의 토큰으로 받는다.”

현재 갓비트의 고객사는 80곳이 넘는다. 이 가운데 34곳이 토큰을 발행했고, 암호화폐 거래소 5곳과 계약을 앞두고 있다. 많은 고객이 암호화폐 산업 규모가 큰 아시아에 있고, 중동이나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에도 고객이 있다고 안드리유닌은 말했다.

 

상장하기까지

갓비트의 고객사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수준이 높아졌다. 토큰을 판매하는 스타트업들은 과거 공개 판매 전략에서 사모 판매나 친구, 가족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부르드노프는 ICO 열풍이 가고 IEO를 통해 토큰 판매가 다시 반짝 활기를 띠었지만, 이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는 요란한 초기 판매가 의미가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말한다.

“IEO를 했는데, 진짜 거의 한 푼도 투자를 못 받은 고객도 있다. 다 해서 1천달러 남짓밖에 투자를 못 받은 거다.”

하지만 바이낸스나 쿠코인(KuCoin), 후오비(Huobi) 등 주요 거래소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안드리유닌은 갓비트가 6개월 안에 고객의 토큰을 이런 주요 거래소 가운데 하나에 상장하는 전략을 세워 집행한다고 말한다. 처음엔 간단한 마케팅, 커뮤니티 개발 등을 통해 토큰을 알리고, 먼저 해당 토큰을 군소 거래소 몇 군데에 상장한다. 이어 거래량을 부풀린다.

바이낸스 런치패드 같은 주요 거래소의 IEO 플랫폼에선 새로운 토큰을 상장할지 말지를 커뮤니티 내에서 투표로 결정한다. 커뮤니티의 지지를 받아 토큰이 상장되고 나면 그때부턴 걱정할 일이 거의 없다고 안드리유닌은 말한다.

“고객은 이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릴 일도, 거래하는 고객이 부족해 걱정할 일도 없게 된다. 이름 있는 플랫폼을 통해 공개한 토큰인 만큼 투자자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안드리유닌은 갓비트가 봇을 이용해 거래량을 부풀리는 건 소규모 거래소에서만 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바이낸스 같은 주요 거래소에서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름 있는 거래소에 토큰을 상장하고 나면 오히려 중소 거래소에서 앞다퉈 해당 토큰을 상장하려고 모셔간다. 처음 보는 토큰을 향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있을 때 그 거래 수익과 수수료를 같이 누리려는, 당연한 논리다.

안드리유닌은 이름 있는 대형 거래소 산하 IEO 플랫폼 한 곳에서 갓비트가 도와준 토큰 프로젝트 16개가 커뮤니티 투표를 통과했고, 이 가운데 4개는 이미 상장됐다고 말했다.

 

초반 스프린트가 중요하다

안드리유닌은 토큰을 발매한 아주 초반에 거래량을 부풀리고 시세를 조작하는 작업을 집중한다고 설명한다.

“처음에 토큰을 발매했는데, 아무런 관심도 못 받고 거래가 전혀 일어나지 않으면 토큰은 그대로 사장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막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어 주요 거래소 IEO 플랫폼의 커뮤니티 투표가 진행될 때까지 토큰이 투자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꾸준히 거래량을 유지해준다.”

최종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커뮤니티 투표 전까지는 사실 토큰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가격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 비트코인 정도 되면 조금만 가격이 변해도 여기서 이윤을 내는 알고리듬 거래 툴이 있지만, 이름 없는 토큰에는 그런 것도 당연히 없다.

갓비트는 6개월 동안 다양한 작업을 통해 토큰을 상장해주고, 수수료로 6만~10만달러 정도를 청구한다. 상장까지 드는 품과 서비스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어떤 토큰은 거래소에 상장한 뒤에도 한동안 거래량을 부풀려야 한다. 상장 토큰이라도 최소 거래량을 채우지 못하면 상장을 취소하는 거래소도 있는데, 거래량 요건을 실제 투자자들의 관심만으로 채우기 어렵다.

바이낸스는 새로운 토큰 프로젝트의 창립자와 수시로 연락하며 프로젝트 관련 정보와 신고한 거래량 등을 꼼꼼히 점검한다고 리아 리 대변인은 말했다.

“신고한 내용이 정확한지, 또 거래소에 솔직하게 정보를 제공했는지를 두루 살피는 것이다. 커뮤니티 투표에 올리는 프로젝트를 선별할 때도 팀원들이 검증됐는지, 제공하는 상품이 쓸모 있는지, 이용자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특히 팀원들이 해당 프로젝트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개발이 어느 정도 믿을 만큼 진행됐는지도 중요하다. 바이낸스는 우리가 정한 엄격한 토큰 판매 기준에 맞는 프로젝트인지를 부지런히 검증하고 있다.”

기존 거래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수많은 고려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리 대변인은 말한다.

“어느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토큰인지만 봐도 거래량이 얼마나 진실을 반영한 수치인지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진짜 마켓메이커를 향하여

안드리유닌은 지금은 토큰 시장보다 거래소 고객에 더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특히 선물계약을 취급하는 거래소가 갓비트의 새로운 목표다.

지난 3월 갓비트는 그런 거래소들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대개 바이낸스 같은 대형 거래소의 오더북을 그대로 옮겨 적용했다. 예를 들어 대형 거래소의 매수 주문을 가져오면 작은 거래소의 매도 주문을 체결하고도 남았다.

“선물 거래소에서는 정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자기가 대단한 트레이더라고 생각하면서 별 고민 없이 100배나 되는 레버리지를 적용해 비트코인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주문은 사실 시장에 엄청난 비효율성을 발생시키는데, 곧바로 가격이 변해 해당 주문을 체결할 때마다 차익을 낼 여지가 생긴다. 우리는 바로 그 차익을 노리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거다.”

(이 기사에서만 쓸 수 있는 느슨한 의미의) 마켓메이커 회사 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한 지 1년 만에 안드리유닌은 본격적으로 사업을 키울 생각을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규제 당국이 내건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진짜 마켓메이커로 거듭나는 게 갓비트의 목표다. 바이낸스, 후오비의 경쟁사가 되는 거다. 그러려면 당연히 적잖은 돈을 투자받아야 한다.

“보통 거래쌍을 40~50개는 들고 있어야 하는데, 거래 하나에 5만달러라고 해도 2천만달러 정도가 고정 자금으로 필요한 셈이다. 그런데 그 돈이 있으면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매달 10~15%의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사업이다. 지금은 그럴 돈이 없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할 것이다.” - 알렉세이 안드리유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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