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의 한 스타트업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는 루이스 소사(39)는 10년 전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친구들이 높은 투자 수익을 올린 후에도 소사는 비트코인 투자에 신중했다.

지금은 암호화폐에 대한 소사의 생각이 바뀌고 있지만, 이제라도 투자에 뛰어들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멕시코의 금융 규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자꾸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특히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구매할 때 더욱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소사만이 아니다. 해외에서는 아직 잘 느껴지지 않지만, 멕시코에서는 아주 빠른 속도로 암호화폐가 도입되고 있다.

멕시코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빗소(Bitso)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8개월 동안 거래 규모가 342%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올해 초에는 거래소 이용자가 100만명을 넘어섰으며, 그중 92%가 멕시코 국민이라고 빗소는 밝혔다.

멕시코 금융증권위원회(CNBV)에 따르면 멕시코 내에서 전통적인 금융중개업을 하는 업체는 35곳이며, 실질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금융 계좌는 40만개를 밑돈다.

컨설팅 기업 크립토핀테크(CryptoFinTech)의 CEO이자 멕시코 증권거래소 교수로 있는 엘로이자 카데네스는 “암호화폐 거래소 한 곳이 35개 전문 금융투자회사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잠재력을 보여줬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멕시코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빗소, 2019년 9월과 2020년 5월 사이 342% 성장. 출처=코인데스크 리서치
멕시코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빗소, 2019년 9월과 2020년 5월 사이 342% 성장. 출처=빗소

 

그 이유는?

소사가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멕시코 내에서 돈을 송금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 척결에 나선 멕시코 정부는 일반 시민의 일상적인 자금 거래마저 어렵게 만들었다.

탈세와 자금세탁은 멕시코의 오랜 골칫거리다. 이에 멕시코 정부는 2년 전 범죄 예방을 이유로 강력한 조치를 시행했다. 빗소의 거래 규모가 급증하기 직전인 지난해 8월에는 은행과 민간 자본시장에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핀테크 법을 도입했다. 개인사업자와 크라우드펀딩 기관도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새로운 법에 따르면 멕시코 내에서 예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테크 기업은 금융 기관으로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등록 비용만 3만5천달러가 넘고, 스타트업을 포함한 모든 대상 기업 가운데 연간 수익이 10만달러 이상이어야 한다는 등록 조건을 만족하는 업체가 많지 않았다. 당시 멕시코 언론은 증권시장에 상장된 스타트업 500곳 중 201곳이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영업을 지속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법 시행 이후 금융 기관 등록 신청을 한 업체는 85곳에 불과하다. 당국의 승인을 받은 기업 중 한 곳인 빗소는 멕시코에서 영업을 지속할 수 있게 됐다.

페이팔(PayPal)은 멕시코의 금융 규제 강화로 이용자 자금을 계정에 보관하는 기능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다고 밝히면서 앞으로는 결제 중개 업무만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소사 역시 페이팔 계정 잔액을 모두 정리해야 한다. 뉴욕에 사는 어머니가 소사에게 돈을 송금하기 위해 페이팔이나 웨스턴 유니언(Western Union)을 이용하려면 거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에 소사의 어머니는 애플페이(Apple Pay)를 이용해 소사의 애플페이 계정으로 돈을 송금하는데, 소사는 미국에 입국할 때까지 이 돈을 인출할 수 없다.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에서는 은행보다 싼 비용으로 더 빠르게 돈을 보낼 수 있다. 금융공학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카데네스는 멕시코의 금융 규제 강화, 높은 금융 서비스 비용, 저조한 금융 접근성 등 여러 요소가 맞물려 암호화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른 나라처럼 아직 멕시코에서도 암호화폐가 주로 투기나 트레이딩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을 비롯해 국외에서 멕시코로 송금되는 돈이 수십억달러에 이르고, 멕시코 내에서는 자금 송금이 어렵기 때문에 더 쉽고 저렴한 송금 수단인 암호화폐 플랫폼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멕시코 안에서만 놓고 보면 금융 기관보다 암호화폐가 낫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상 최대의 자금 유입

빗소는 2014년 문을 연 멕시코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다.

빗소의 공동창립자이자 CEO인 다니엘 보겔은 2016년 멕시코 청년들이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 스팀(Steam)에서 비디오게임을 하기 위해 비트코인으로 대금을 지불하면서 빗소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듬해 비트코인 가격이 몇 개월 만에 900달러에서 2만달러로 급등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그해 말 비트코인 거래 수수료가 급증하면서 수수료가 단일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0%까지 올랐다. 청년들이 감당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커진 것이다.

보겔은 거래 수수료가 “지붕을 뚫고 나갔다”고 표현하면서 스팀에서 기존에 0.01달러도 되지 않았던 수수료가 20~30달러로 치솟으면서 수요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투기의 해였던 2017년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6천억달러에 육박했고, 미국의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는 아이튠즈 전체 앱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겔은 “멕시코는 사정이 달랐다”고 강조한다. 미국이나 유럽, 아시아 만큼 멕시코 사람들의 가처분 소득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빗소의 거래 수익이 증가한 것은 맞지만, 세계 다른 거래소만큼 성장하기는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고 있었다. 해외에서 대량으로 유입되는 자금이었다. 당시 빗소는 결제 플랫폼 리플(Ripple)과 손잡고 암호화폐 XRP의 유동성을 이용해 달러와 페소를 빠르게 환전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빗소는 이를 이용해 송금 업무에 나서기 시작했다.

보겔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면서 “매주 미국에서 멕시코로 송금되는 자금의 10%, 그리고 매달 송금되는 돈의 7%를 빗소가 처리했다”고 말했다.

역내 코로나19 확산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멕시코 중앙은행은 지난 6월 미국에 사는 멕시코 국민이 본국으로 송금한 자금이 지난해보다 11% 늘어난 35억6천만달러에 육박했다고 밝혔다.

이 중 대부분은 은행 계좌나 웨스턴 유니언, 페이팔의 송금 플랫폼 줌(Xoom), 그리고 빗소와 같은 암호화폐 거래소 등을 통한 전자 송금으로 이뤄졌다. 다만 여기에는 수수료가 붙는다. 지난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웨스턴 유니언과 줌이 책정한 높은 송금 수수료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실제로 줌은 최대 4%의 거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으며, 멕시코로 돈을 송금하는 모든 거래마다 환율 차익도 챙긴다.

암호화폐 거래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돈을 암호화폐를 이용해 송금하면 거래 수수료는 0.1%까지 낮아질 수 있다. 빗소 홈페이지에 따르면 거래소를 통해 송금을 받는 이용자들은 무료로 자금을 인출할 수 있으며, 바로 은행 계좌로 송금할 수도 있다.

카데네스는 빗소가 지난 1월 멕시코로 송금되는 자금의 3.5%를 처리했지만, 몇 주 만에 그 비중이 5.3%로 올랐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세계은행이 2018년 세계 각국의 금융 접근성을 평가하기 위해 발간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은행 계좌가 없는 15세 이상 성인 비중은 63.1%에 육박한다.

 

은행에 대한 불신

멕시코에 초점을 맞춘 신흥시장 컨설팅 기업 EMPRA의 경제·공공정책 애널리스트 조나단 털르크에 따르면, 멕시코 국민 대다수는 금융 시장을 이용하지 못한다. 또한, 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근로자와 업체들로 구성돼 현금 거래가 주로 이뤄지는 암시장의 규모도 상당히 크다.

멕시코 근로자 중 55~60%가 여기에 포함되며, 이들은 임금도 현금으로 받는다.

은행 계좌가 없는 멕시코 국민들은 프렌차이즈 편의점 옥쏘(Oxxo) 등이 제공하는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이용한다. 식료품부터 통신료, 전기료 등 모든 것을 현금으로 결제할 수 있다. 온라인 결제도 처리할 수 있으며, 직불 카드나 은행 계좌에 돈을 보낼 수도 있다. 줌, 웨스턴 유니언과 제휴돼 있어서 근처 옥쏘 매장에 가서 송금받은 돈을 현금으로 인출할 수도 있다.

소사는 이에 대해 “사람들이 그만큼 신용카드나 은행을 믿지 못하고, 현금 사용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대안이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데네스는 멕시코 국민이 은행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전통적으로 비싼 멕시코의 금융 비용을 꼽았다. 콜롬비아의 신용카드 연 이자율은 평균 27.4% 정도에 형성되지만, 멕시코의 씨티바나멕스(Citibanamex)가 발급하는 기본 신용카드의 연 가중평균 이자율은 56.3%에 육박한다. 카데네스는 개인 대출에 대한 연 이자율도 콜롬비아는 21%, 페루는 45.34% 정도지만 멕시코는 무려 67.2%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카데네스는 멕시코 정부가 제공하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돌려보며 “만약 오늘 내가 1만달러를 빌리면 5년 후에는 3만달러를 갚아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는 누구나 계정과 지갑을 만들어 거래를 시작할 수 있다. 대부분 무료로 지갑을 만들 수 있으며, 여기에 거래 수수료가 부과된다. 빗소의 경우 내야 하는 거래 수수료는 0.05~0.5% 수준이다.

빗소는 P2P 대출 앱 밴모(Venmo)와 같이 자금 예치와 송금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대부분 암호화폐 플랫폼은 은행 계좌가 없는 대다수 멕시코 국민이 이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자금 인출 방식을 지원한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로 직접 돈을 받을 수도 있고, 디지털 쿠폰을 이용해 은행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세금

전통적 금융시장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멕시코 국민이 암호화폐에 끌리는 이유는 또 있다. 암호화폐 플랫폼은 멕시코 당국의 규제를 받지만, 아직 제대로 된 과세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전문 변호사이자 멕시코에 있는 한 법무법인의 공동창립자인 디에고 라모스 카스틸로는 코인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멕시코의 암호화폐 기업들은 자금세탁방지 규제에 따라 한번에 또는 6개월간 2500달러를 초과하는 거래를 금융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밖에는 암호화폐와 관련한 별도의 규제가 없다. 멕시코 당국이 과세 방법을 고민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

라모스는 암호화폐를 이용해 자금을 관리하면 납세 차원에서 혜택을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멕시코에서는 계좌에 외화가 포함돼 있으면 환율 변동으로 인한 계좌 잔액 변경 내용을 모두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자금을 스테이블코인 형태로 들고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테이블코인은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한 암호화폐로, 외화로 분류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 달러에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을 갖고 있다면 사실상 미국 달러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스테이블코인을 처분할 때까지는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익을 신고할 필요가 없다.

 

규제

지난해 신설된 핀테크 법은 하나의 장 전체를 가상 자산에 할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암호화폐 거래소는 법정화폐를 보유하거나 수탁할 수 없게 됐다.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을 내야 하므로, 암호화폐 스타트업과 개인사업자가 문을 닫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이 법은 또 가상 자산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를 만들어 집행할 것을 멕시코 중앙은행에 요구하고 있다. 라모스는 이 규제에 따라 금융 기관이 “암호화폐의 리스크”를 그 어떤 방식으로도 만들어내거나 고객에게 전가하는 것은 금지됐지만, 내부적으로는 암호화폐 사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사실 중앙은행이 내놓은 규제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강압적이지 않다. 암호화폐를 전면 금지하거나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모스는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멕시코 정부는 암호화폐를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암호화폐 거래와 암호화폐를 이용한 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이를 인지한 중앙은행이 내놓은 규제의 요지는 금융 기관이 암호화폐를 다룰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가능하다면 적극적인 참여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새로운 핀테크 규제로 멕시코에서 암호화폐 사업을 하기는 더욱 어려워졌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는 충분히 들어온다는 이야기다.

 

전망

암호화폐가 멕시코의 주요 송금 수단이나 디지털 결제 시스템이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아직 멕시코 전역에서는 현금 결제가 선호되고 있고, 암호화폐 도입 수준도 높지 않다. 암호화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분야이며, 가까운 옥쏘 매장를 찾아가는 것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소사 역시 비트코인 지갑을 실제로 개설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설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너무 버거운 분야다. 나 역시도 어머니에게 암호화폐 지갑을 개설하라고 말씀드리지는 못할 것 같다. 아마 일주일 내내 설명해드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멕시코의 암호화폐 업계에 진입하려는 스타트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빗소는 이미 멕시코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더 많은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빗소 같은 업체와 달리 암호화폐 거래소 멕소(Mexo)와 같은 스타트업들은 국내 고객 유치에 초점을 맞춘다. 멕소의 공동창립자 보 저우는 코인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플랫폼을 설계할 때 멕소 홈페이지를 스페인어로 작성하는 등 멕시코 국민의 국내 거래를 장려하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멕시코에 본사를 둔 에어티엠(AirTM)은 블록체인 기반 달러 계정을 전 세계에 제공하고 있다. 이를 이용해 지난해에는 도움이 필요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30만달러를 기부금을 나눠주기도 했다.

이처럼 국민 대다수가 기존 금융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 수단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돼 있는 멕시코에서는 암호화폐의 대중화를 앞당길 수 있는 요소들이 거의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카데네스는 암호화폐가 멕시코의 금융 포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멕시코에서 암호화폐는 투자 기회를 찾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생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접근성이 높은 금융 자산을 찾는 개인과 기업에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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