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국가 지도. 출처=게티이미지
동유럽 국가 지도. 출처=게티이미지

블록체인 분석기업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투자자들의 암호화폐 이용률이 특히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높은 양상을 보였고, 그중에서도 우크라이나가 1위를 차지했다.

체이널리시스는 암호화폐 사용 글로벌 트렌드 분석 보고서를 발간하기에 앞서 지난 8일 ‘글로벌 암호화폐 이용 지표(Global Cryptocurrency Adoption Index)’를 공개하고 암호화폐 이용률 순위가 가장 높은 국가로 우크라이나, 러시아, 베네수엘라를 꼽았다.

물론 거래 규모 면에서는 여전히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이지만, 암호화폐를 다량 보유한 이른바 고래 투자자들을 제외하면 일반 투자자의 디지털화폐 이용률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높았다. 그다음은 중국, 케냐, 미국 순이었다.

체이널리시스는 각국으로 들어온 온체인(on-chain) 암호화폐 가치, 전송된 온체인 가치, 예치된 온체인 암호화폐 수, 개인간(P2P) 거래소 거래량을 기준으로 암호화폐 이용률을 측정했으며, 각 나라의 1인당 구매력평가지수(PPP)와 인터넷 사용자 수를 가중치로 적용했다.

체이널리시스의 수석 연구원 킴 그라우어는 상위권에 랭크된 국가들을 보고 언뜻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경우 온라인 결제 서비스 역사가 길어 사람들이 디지털 결제에 익숙하고, 암호화폐로 옮겨가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더 수월했다고 설명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국민들이 새로운 기술에 매우 친숙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활발한 스타트업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도 말했다. 동유럽의 높은 사이버 범죄율이 암호화폐 시장 참여를 촉진했을 가능성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암호화폐 보급에 있어 중심축이 되는 국가로, 국민들의 기술 수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지고 국내 블록체인 커뮤니티와의 협력하에 암호화폐 업계 규제안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체이널리시스 글로벌 암호화폐 이용지표. 출처=체이널리시스
체이널리시스 글로벌 암호화폐 이용지표. 출처=체이널리시스

하지만 암호화폐 이용 패턴은 국가마다 상이한 모습을 보였는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번거로운 은행 규제를 피해 기업간 거래나 해외 송금용으로 암호화폐를 많이 사용하고 있었으며, 베네수엘라에서는 주로 저축이나 개인간 거래에 암호화폐를 사용했다.

그라우어는 “베네수엘라 국민이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흥미롭거나 멋있어 보여서가 아니라 안정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자산을 찾고 있기 때문”이라며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사이에 매우 활발한 해외 송금 시장이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러시아, 베네수엘라, 우크라이나는 일반 투자자들이 암호화폐 사용을 주도하는 반면 중국이나 미국은 주로 고래 투자자들이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10만달러 이상 거래 건들을 보면 지난해 북미 지역의 전문적인 거래 활동이 전반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킴 그라우어

2020년 글로벌 암호화폐 이용지표. 출처=체이널리시스
2020년 글로벌 암호화폐 이용지표. 출처=체이널리시스

 

우크라이나의 암호화폐 게임

앞서 언급한 3개국 중 1위를 차지한 우크라이나가 아마도 가장 의외로 느껴질 것이다. 글로벌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잘 부각되지 않는 국가인 우크라이나는 인구 4200만의 동유럽 국가로, 국가 경제는 불안한데 국민들의 기술 수준은 높아 암호화폐를 사용하기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디지털 혁신부(Ministry of Digital Transformation)는 자국민 사이에서 암호화폐의 인기가 좋은 이유를 몇 가지 꼽았다. 크게 형성된 블록체인 개발자 커뮤니티와 일반 국민들의 높은 기술 수준, 까다로운 수출입 거래 관련 규제, 자국 주식시장의 부재가 그 이유였는데, 디지털 혁신부는 블로그에서 이 요인들이 모두 국민들을 디지털 자산을 사용해 보도록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의 첫 암호화폐 거래소인 쿠나(Kuna)의 설립자 마이클 쇼바이얀은 어림잡아 계산했을 때 외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소규모 기업들이 매주 최대 500만달러 규모의 암호화폐를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 대부분이 터키산 수입품 거래에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있으며, 거래의 90%를 테더(USDT)가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투자자 주도

쇼바이얀은 우크라이나의 일반 투자자들 역시 암호화폐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며, 자사의 일반 투자자 거래 규모가 일일 기준 약 80만달러에 이른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바이낸스(Binance)나 엑스모(EXMO) 같은 거래소들이나 여러 현금 장외거래의 인기가 높은 것을 고려한다면 이는 일반 투자자들이 거래하는 전체 암호화폐 거래량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저축을 하거나 소극적 소득을 얻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지 않아서 일반 투자자들이 암호화폐에 큰 관심을 보인다. 경제 규모는 작은데, 국내 주식시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은행들이 파산하는 일이 잦고, 부동산은 대다수 국민에게 너무 비싼 투자처다.

이에 반해 암호화폐는 진입장벽이 낮고 준법 요건이 까다롭지 않으며, 현금을 보유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

우크라이나 디지털 혁신부 차관 알렉산더 보르냐코프는 우크라이나에서 기업이 아닌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규모 투자와 거래를 위해 개인 투자자들이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암호화폐 사용에 관한 공식 통계가 없기 때문에 경험적 근거에 기반한 추측일 뿐이라는 걸 인정했다.

히바스토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우크라이나의 비트코인 코어(Bitcoin Core) 개발자 히나디 스테파노프는 암호화폐가 마치 달러처럼 자국 화폐인 흐리브냐의 변동성과 불안한 국내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비한 헤지 수단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상황은 이란이나 베네수엘라와 비슷하다. 비트코인은 금과 달리 모든 사람이 구할 수 있는 자산이다.” - 히나디 스테파노프

하지만 우크라이나 출신의 또 다른 비트코인 코어 개발자 글렙 나우멘코는 암호화폐의 사용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누가 암호화폐에 투자했다는 얘기는 많이 들린다. 큰 관심이 쏠리는 건 사실이나 아직 기술에서 뒤처져 있다. 사용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영향

바이낸스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역 총괄 글렙 코스타레프는 우크라이나가 자사 거래량에서 1위를 차지하는 국가는 아니지만, 주요 시장 중 하나임엔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사가 우크라이나 화폐 흐리브냐를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입출금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계속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정부와 적극적으로 공조해 암호화폐 관련 규제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경제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암호화폐 사용률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바깥 활동이 제한된 탓에 사람들은 새로운 소득원으로 암호화폐에 눈을 돌렸다.

“우크라이나의 거시경제 상황은 여전히 복잡하며, 코로나19가 이를 더욱 악화시켰다.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방법을 고심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은 새로운 소득원을 찾아 나서야만 하는 상황이다. 바로 이게 우크라이나에서 암호화폐 인기가 높은 이유 중 하나다.” -글렙 코스타레프

분석 플랫폼 크리스털 블록체인(Crystal Blockchain)의 제품 총괄 카이랄로 치크랏제는 지난 2015년 이후 우크라이나에 등록된 암호화폐 기업들이 처리한 비트코인 자산 총 규모는 3억달러밖에 되지 않으며, 이는 같은 기간 미국 비트코인 시장에서 거래된 1500억달러에 비하면 극히 작은 규모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우크라이나에 기반을 두었거나 우크라이나에서 사업을 시작한 암호화폐 기업들이 주로 다른 사법권에서 사업자로 등록해 공식적으로는 우크라이나 기업으로 집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치크랏제는 “디지털 자산 부문에 아직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우크라이나의 암호화폐 기업들이 영국이나 에스토니아 같은 다른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정부가 암호화폐 기업에 대한 법적 틀을 마련한다면 이런 상황이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 분석의 어려움

비트코인 지갑은 지리적 정보가 표시되지 않기 때문에 암호화폐와 관련된 각국의 활동을 정량 분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체이널리시스는 온체인 거래 정보만으로 올바른 지리 데이터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로컬비트코인(LocalBitcoins)이나 팍스풀(Paxful) 등 글로벌 P2P 거래 플랫폼들로부터 직접 데이터를 요청해 관련 전문가들과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체이널리시스의 그라우어는 특정 국가의 암호화폐 활동을 알아보기 위해 시밀러웹(SimilarWeb)으로 암호화폐의 거래, 처리, 겜블링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웹 트래픽을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구할 수 없는 경우엔 해당 국가의 시간대, 주로 사용하는 법정화폐 쌍, 사용 언어, 서비스 제공업체 본사 위치 등을 이용해 거래 데이터를 분석했다.

체이널리시스는 분석 과정에서 각 나라의 구매력 평가지수에 가중치를 매겨 화폐 변동성이 큰 가난한 국가들도 국민들이 암호화폐 거래를 활발히 했다면(1만달러 미만의 거래일지라도) 상위에 랭크될 수 있도록 했다. 즉, 순위가 높은 국가라 해서 반드시 거래량이 많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국민들이 본인 자산의 많은 부분을 암호화폐에 투자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각 나라마다 인구와 GDP가 다르기 때문에 가중치 없이 지표를 산정한다면 모두 중국과 미국으로 수렴되는 왜곡된 결과를 얻게 된다.” - 킴 그라우어

그러면서 하나의 요소만으로 국가 순위를 매길 순 없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그 어떤 하위 지표에서도 1위를 차지하진 못했지만, 국내로 유입된 암호화폐 가치와 예치된 암호화폐 수에서 19위 안에 들었으며 전반적으로 좋은 실적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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