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석유왕' 록펠러가 소유하던 스탠더드 오일의 독점 폐해를 비판하는 그림으로 1904년 잡지 퍽(Puck Magazine)에 실렸다. 문어의 모습을 한 스탠더드 오일이 미국 상·하원 등을 움켜쥔 채 백악관으로 또 다른 다리를 뻗고 있다. 1911년 미국 대법원은 반독점법을 위반한 스탠더드 오일을 34개 회사로 분할하는 판결을 내렸다. 출처=위키피디아 커먼스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가 소유하던 스탠더드 오일의 독점 폐해를 비판하는 그림으로 1904년 잡지 퍽(Puck Magazine)에 실렸다. 문어의 모습을 한 스탠더드 오일이 미국 상·하원 등을 움켜쥔 채 백악관으로 또 다른 다리를 뻗고 있다. 1911년 미국 대법원은 반독점법을 위반한 스탠더드 오일을 34개 회사로 분할하는 판결을 내렸다. 출처=위키피디아 커먼스

스테파니 허더는 신기술 도입을 위한 경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리즘그룹(Prysm Group)의 창립회원이자 경제학자로, 세계 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허더 박사는 하버드대학교 경영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늘날 미국 경제는 20년 전에 비하면 역동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에 따라 시장의 권력과 지배에서 엄청난 집중 현상이 나타났다.

산업의 집중화로 대기업 노동자 수가 사상 최고 수준이 됐다. 몇 안 되는 큰손 투자자들이 공기업 지분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고, 지난 50년을 통틀어 가장 적은 수의 기업과 개인들이 대중의 소비나 일자리, 연봉, 정부 운영방식을 정하고 있다.

블록체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심화하는 '권력 집중화' 현상을 완화할 수단이라 말한다. 그들에게 탈중앙화된 거버넌스, 개인정보 관리, 디파이(DeFi) 같은 기능과 제품들은 독점을 없애고, 귀중한 자산을 사람들에게 재분배할 수 있는 약속과도 같다. 또 블록체인이 현대경제의 독점적(수요 독점적) 경향을 없앨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럴듯한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특효약이라 주장하던 다른 해결책들이 그렇듯 블록체인 역시 당초 내세웠던 슬로건과 달리 허점이 존재한다.

현재 블록체인 앱들이 주요 기술기업들처럼 정치경제적인 권력을 노골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그만한 이용자층을 확보하지 못해서다. 대대적인 보급과 그로 인해 모여드는 자금과 관심이 있어야만 권력을 쥘 수 있는 것이다. 월드와이드웹(WWW)이 팀 버너스 리의 손에서 탄생한 탈중앙화된 발명품에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수익성 높고, 거대 권력을 지닌 소셜미디어 앱들의 기반이 되는 서비스로 진화하기까지는 수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독점적 빅블록체인의 등장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지금의 서비스들을 더 의미 있게 탈중앙화시킬 킬러앱이 나올 것인지, 나온다면 그 시기는 언제일지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블록체인 업계가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거란 거다. 앞으로 10년, 아니면 20년 안에 우리가 현재 거대 기술기업(빅테크)들을 비난하듯 블록체인 대기업(빅블록체인)들의 폐해에 대한 불만을 쏟아놓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줄인 여러 경제적 요인들의 초기 증상이 벌써 블록체인 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더리움의 경우, 시장을 선점한 기업의 이점 때문에 경쟁업체들의 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기 있는 프로토콜로 지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작업증명(PoW) 채굴보상은 사실상 10개 주소에만 보상을 지급해 부익부 현상을 부채질한다. 또 블록체인 기술 중 가장 전망이 밝은 이용 사례로 손꼽히는 스테이블코인도 시장의 승자독식 역학을 부추기는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가지고 있다. 국내 규제뿐 아니라 국외 규제 역시 제한적이며, 반독점이나 시장 권력 등 관련 이슈들을 다룰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

2019년 페이스북은 여러 기업과 함께 리브라연합을 설립하고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 '리브라'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러 정부는 페이스북의 리브라를 허용하면, 각국의 화폐 발권력이 침해되고 경제안전성이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리브라연합 창립회원 28개사 가운데 8곳(빨간줄)이 빠지고 7곳이 새로 들어갔다.
2019년 페이스북은 여러 기업과 함께 리브라연합을 설립하고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 '리브라'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러 정부는 페이스북의 리브라를 허용하면, 각국의 화폐 발권력이 침해되고 경제안전성이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리브라연합 창립회원 28개사 가운데 8곳(빨간줄)이 빠지고 7곳이 새로 들어갔다.

 

분산소유가 독과점을 막진 않아

하지만 탈중앙화된 거버넌스가 시장의 통합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꼭 그렇진 않다. 사실 오늘날 기술 기업들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더 탈중앙화된 거버넌스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른바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으로 잘 알려진 5대 기술기업 모두 증시에 상장돼 있다.

의결권이 있는 A급 주식을 사고 싶다면 누구나 살 수 있다. 페이스북을 제외한 나머지 네 기업은 한 개인이나 기업이 회사 지분의 과반을 독점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분산된 지배와 대중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소비자들과 근로자들이 고심하고 있는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

현대 경제는 아직도 공공자금으로 발명한 인터넷을 소수의 사기업이 지배하도록 허용함으로써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어떻게 없앨 수 있을지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블록체인 업계 종사자들이 향후 10년간은 업계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블록체인도 반독점법에서 자유롭지 않아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주식 시장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10년 이내에 과연 어떤 기관이나 메커니즘이 생겨 시장에 먼저 진입한 기업이 거버넌스 토큰을 대거 사들이거나 향후 개발될 메커니즘을 장악해 의결권을 확보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질문이다.

블록체인 설립자나 투자자들은 최소한 경제 전반에 걸쳐 통합을 초래한 기초적인 경제 요인들이 블록체인 기반 앱에도 상당 부분 적용될 거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분산성이란 특징 때문에 분산원장이 시장의 승자독식 역학이나 심화하는 시장의 글로벌화, 규제 완화, 느슨한 반독점법 집행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현시점에서 다른 업계와의 경제적 유사점을 현실적인 시각으로 사료한다면, 블록체인 업계는 앞으로 어디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를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내가 이전에 다른 칼럼에서도 주장했듯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된 맞춤형 거버넌스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환경을 제공한다. 하지만 지금의 거버넌스 시스템은 수십억 달러가 투입된 복잡한 상품들을 감독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 지난 수백 년간 쌓아온 경제학, 정치과학, 법, 사업적 지식을 활용해 블록체인 업계에 걸맞은 공동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만들어 경제의 독과점과 역동성이 줄어드는 걸 막아야 한다.

정부 기관과 생태계 기금, 개별 프로토콜들이 나서서 공공지식 개발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한다면 향후 10년 이내에 블록체인 업계 전체에 커다란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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