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모종우, 이성민, 박기석, 왕가미, 노성래, 박경남, 손상윤 그로우파이 공동창업자. 출처=그로우파이
왼쪽부터 모종우, 이성민, 박기석, 왕가미, 노성래, 박경남, 손상윤 그로우파이 공동창업자. 출처=그로우파이

 

매년 연말이면 연례행사처럼 불우이웃돕기 모금 행사가 사방에서 이뤄진다. 남에게 기부를 할 만큼 자금 사정이 여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시일반으로 나보다 남을 돕고자 하는 기부행렬이 꾸준히 이어진다. 만약 돈을 어딘가에 맡겨놓고 발생하는 이자로 기부를 할 수 있다면?

갑자기 왜 기부 이야기냐고? 디파이(Defi)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디파이 서비스 개발 기업 그로우파이(GrowFi)의 모종우 창업자가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지난 21일 선릉역에 위치한 그로우파이 사무실에서 만난 모종우 창업자는 20대 초반의 열정이 넘치는 개발자이자 서비스 기획자였다. 그는 국내 유일의 디파이 커뮤니티 '디파이코리아'(DeFi Korea) 채널도 만들었다. 그만큼 국내에서는 손꼽히는 디파이 전문가다.

그가 속해 있는 그로우파이는 블록체인 개발 기업 랜딩블록(Landing block)이 디파이 서비스 개발에만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작년 8월 만들었다. 랜딩블록은 블록체인과 디파이에 빠진 20대 젋은 개발자 7명이 모인 기업이다.

이들이 처음 디파이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독특했다. 보통 디파이라고 하면 '이자농사'를 시작으로 암호화폐로 이익을 거두는 서비스를 이야기한다. 근데 이 팀은 디파이로 '기부'를 이야기한다.

"저희가 처음 만든 디파이 서비스가 '그로우드랍'(Growdrop)이었어요. 암호화폐를 예치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이자를 스마트계약을 통해서 자동으로 기부할 수 있도록 설계했죠. 그로우드랍은 맡겨둔 자산을 늘려서(grow) 기부(drop)하자는 의미로 만들어졌죠."

기부에 디파이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니었다. 대만에서 대학교를 다닌 모종우 창업자는 다양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여러 가지 제약으로 현지 금융 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디파이에 매력에 빠졌다고 회상했다.

"은행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증을 거쳐야 해요. 쉽게 개설하기 어렵죠. 근데 블록체인 지갑은 그렇지 않더군요.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어요. 여기에 탈중앙금융인 디파이를 활용하면 기존 금융 인프라와 비슷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요."

암호화폐를 예치해서 이자를 받고, 그걸 누군가에게 보내고, 필요한 만큼 대출도 받을 수 있는 디파이는 모종우 창업자가 보기에 금융에 소외된 이들에게 매우 유용했으며, 효과적이었다. 물론 디파이가 만능은 아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금융 선진국에서는 이미 예금, 대출 등 금융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디파이를 쓸 이유가 없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 디파이를 활용한 기부다.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기부는 꼭 필요해요. 근데 막상 나도 돈이 없어서 힘든데 그걸 또 쪼개서 기부하긴 어렵잖아요. 그래서 생각한 게 디파이를 활용한 기부에요. 디파이로 발생한 수익을 기부하는 거죠. 예컨대 1만원을 디파이에 예치해 놓으면,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봉사활동 단체에 보내는 거죠. 원금 손실이 없으니 부담도 없어요. 또 블록체인과 스마트계약으로 투명한 관리도 가능하죠."

그로우드랍은 여기에 기부자에게 기부 증표 역할을 할 대체불가능토큰(NFT)을 발행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했다. 하지만 고민에 빠졌다. 디파이라는 게 가만히 암호화폐를 예치만 한다고 수익이 발생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모종우 대표는 수익을 낼 수 있는 디파이 서비스 개발을 준비했다. 성장하는(Grow) 금융(Finance)을 의미하는 그로우파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디파이 기부 서비스 '그로우드롭' 구조. 출처=그로우파이
디파이 기부 서비스 '그로우드롭' 구조. 출처=그로우파이

 

모종우 창업자는 돈이 되는 디파이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전세계 디파이 커뮤니티를 샅샅이 훝었다. 그러다가 알게 됐다. 국내에는 디파이 정보를 공유하고 논의를 진행할 커뮤니티가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모종우 창업자는 남두완 메이커다오 한국 대표와 국내에 디파이 커뮤니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년 10월 국내 유일의 디파이 커뮤니티 '디파이코리아'가 탄생했다.

"2018년 12월에 유니스왑과 컴파운드가 베타테스트를 진행하고, 해외에서 이자농사와 같은 디파이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어요. 근데 아무런 정보가 없더군요. 우리나라만 디파이라는 전세계적인 흐름에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메이커다오의 남두완 대표와 디파이코리아를 만들게 됐죠."

모종우 창업자가 경험한 디파이 세상은 빠르게 진화했다. 2019년 초 암호화폐를 예치하고 대출하는 행위를 금융과 빗대어 디파이라고 정의한 이래로, 현재는 중앙화된 거래소를 중심으로 시파이(CeFi)와 유니스왑과 같은 탈중앙화된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디파이로 구분됐다.

"사실 암호화폐나 블록체인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은 거래소에서 거래하는 시파이가 더 쉽고 편해요. 반면, 디파이는 코딩을 할 줄 안다면 누구나 토큰을 만들어서 유니스왑에 올려두고 금융상품화를 할 수 있죠.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인 거죠."

유니스왑과 같은 탈중앙 교환 플랫폼이 처음 있는 개념은 아니다. 불과 1~2년전만 하더라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개인간거래(P2P)거래소나 탈중앙거래소(DEX)가 앞으로의 대세가 되겠다며 등장했다. 하지만 현재 덱스는 사라졌다. 기존 중앙화 거래소와 시스템은 비슷하고, 확장성은 떨어졌으며, 암호화폐 유동성이 부족해 거래가 성사되기 어려웠다. 이런 단점을 해결하겠다며 등장한 것이 유니스왑이었다. 유니스왑은 누구나 새로운 토큰을 발행하고, 유동성풀을 만들어 암호화폐가 필요한 곳에 제공해줄 수 있다. 이 모든 게 자동화 마켓메이커(Automated Market Maker, AMM) 프로토콜로 사람의 개입 없이 이뤄진다.

"유니스왑이 나오기 전에는 DEX라는게 무의미했죠. 차라리 기존 중앙화 거래소가 훨씬 나아요. 근데 유니스왑으로 인해 달라졌어요. 비로소 디파이가 꽃피게 된 거죠. 예컨대 빗썸에 A라는 코인을 상장할 때 기준가를 정해야 하는데, 이건 누가 정하는지 알 수 없어요. 근데 유니스왑은 유동성풀을 중심으로 발생한 거래에 따라 알고리듬으로 가격이 정해져요."

유니스왑으로 인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수익 모델이 등장했다. 여기에 암호화폐 대출 서비스 플랫폼인 컴파운드는 예치한 사용자에게 컴프(COMP)라는 거버넌스 토큰을 지급했다. 컴프가 거래소에 상장되고, 가격이 폭등하자 컴프를 얻기 위해 예치와 대출을 반복하는 '이자농사'(Yield Farming)가 탄생했다. 거래량에 따라 거래소토큰을 발행하는 모습에 빗대어 '유동성채굴'이라는 용어도 나왔다.

"유니스왑이 활성화되고, 컴파운드, 와이파이(YFI), 스시스왑 등 다양한 디파이 서비스 플랫폼이 등장했어요. 유동성채굴로 발행된 토큰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초반에는 수십~수백 배에 달하는 수익이 발생했죠. 거품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지금은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기존 암호화폐와 새로운 암호화폐 등을 묶은 ETF 디파이 상품도 등장하고 있죠."

그렇다면, 유동성풀에서 제공되는 암호화폐가 활용되는 곳은 어디일까? 디파이 시장이 확장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암호화폐를 쓸 수 있는 곳은 트레이딩(trading)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모종우 창업자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사실 암호화폐로 할 수 있는 건 트레이딩말고는 없는게 맞아요. 다만, 중앙화 거래소가 제공하는 제한적인 유동성을 바탕으로 이뤄졌던 트레이딩에서 벗어나 유동성풀에서 암호화폐를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게 되면서 개인이 아닌 기관들이 암호화폐에 투자할 수 있게 됐어요. 암호화폐가 디파이로 인해 본격적인 금융 상품으로 발돋움을 하는 거죠."

새로운 디파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그로우파이의 모종우 대표는 "디파이의 본질은 누구나 아이디어만으로 참여해서 금융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무허가성'에 있거든요.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해 나갈 거예요"라며 인터뷰로 밀린 디파이 서비스 기획을 마무리하겠다며 자리를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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