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앤트 그룹 (Ant Group)의 상장 절차가 중단되면서 중국 정부가 디지털 위안(DCEP) 도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 추가로 드러났다. 중국 정부는 대규모 결제 업체인 앤트 그룹을 중국 경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결국 디지털 위안은 앤트 그룹과 같은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을 활용해 알리페이(Alipay)나 위챗페이(WeChat Pay) 등 결제 업체의 성장에 제동을 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인 디지털 위안은 알리페이의 소액 대출 사업을 저해하는 동시에, 기존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상업은행 예금을 촉진할 수 있다.

인도 핀테크 싱크탱크인 폴리시 4.0(Policy 4.0)의 CEO 탄비 라트나는 앤트 그룹의 상장 중단은 디지털 결제 산업에 내재된 단층선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면서, 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을 발행해 제3의 결제 플랫폼을 견제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폴리시 4.0은 중국 정부의 디지털 화폐 프로젝트에 대한 심층 연구 보고서를 이달 18일 발행할 예정이다.

앤트 그룹은 지난주 350억달러 규모의 홍콩·상하이 증시 동시상장을 앞두고 있었으나, 중국 금융 규제 당국이 제동을 걸면서 상장이 중단됐다. 당국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앤트 그룹의 소액 결제 사업이 안 그래도 높은 부채 비율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앤트 그룹의 공동 대출 서비스인 화베이는 알리페이에 내장된 가상 신용카드 기능을 통해 상업은행과 대출자를 연결해주고 있고, 지에베이는 단기 대출 업무를 맡고 있다. 알리페이가 대출 이자에서 챙겨가는 몫은 최대 40%에 이른다.

그러나 짊어지는 신용 리스크는 은행보다 훨씬 낮다. 앤트 그룹의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앤트 그룹 대차대조표에 남아 있는 대출 규모는 앤트 그룹이 연계한 전체 대출 규모의 2%에 불과했다.

인민은행이 알리페이의 대출 사업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알리페이가 고객 대출을 인수할 때 현금을 디지털 위안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라트나는 정부가 이를 강제하면 디지털 플랫폼은 디지털 위안으로 대출을 제공하기 위해 더 높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앤트 그룹의 예정 상장일 하루 전날, 중국 금융 당국은 은행과 연계해 대출을 제공하는 온라인 대출 업체에 대해 대출 금액의 최소 30%를 자본금으로 보유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앤트 그룹의 사업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내용이다.

이미 예전부터 중국은 날이 갈수록 커지는 부실 대출과 은행 취약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앤트 그룹이 대출 사업으로 승승장구하자 금융 당국도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거대 핀테크 기업들이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하자, 정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지난 11일 핀테크 기업의 시장 독점 방지를 위한 새로운 규칙들을 제시했다.

“중국은 부채 문제를 굉장히 예민하게 생각한다. 많은 기업에서 현금이 돌지 않고 있는데, 이 현상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각해졌다. 앤트 그룹은 개인들을 대상으로 많은 양의 돈을 대출해주고 있는데, 이 중 채무 불이행이 발생할 수 있는 건들이 상당히 많다.” - 탄비 라트나, 폴리시 4.0 CEO

알리페이는 그동안 자사의 대출 현황을 은행에 잘 알리지 않으려 했다. 화베이와 지에베이는 2018년 1월에 출범했으나 2020년 7월말 인민은행의 요청이 있기 전까지 아무런 정보도 제출하지 않았다.

라트나는 디지털 위안이 도입되면 은행의 부실 자산 추적과 분석이 수월해지기 때문에 금융 투명성과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인민은행으로서는 디지털 위안이 기초 자산이 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디지털 위안은 그림자 금융, 부실 채권, 과도한 비공식 금융 등 금융 시장에 존재하는 수많은 만성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중국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 기반 결제 시스템 구축을 위해 건설은행, 농업은행, 공상은행, 중국은행 등 주요 상업은행들과 협력했다. 출처=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
중국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 기반 결제 시스템 구축을 위해 건설은행, 농업은행, 공상은행, 중국은행 등 주요 상업은행들과 협력했다. 출처=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

 

상업은행 예금

중국 경제에 대한 대형 결제 업체들의 위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상업은행에 예치된 고객 자금이 비은행 기관인 이들 업체로 빠져나가고 있다. 실제로 2019년 마지막 3개월 동안 중국 모바일 뱅킹 시장에서 거래된 금액은 8조달러에 육박하는데, 이 중 알리페이가 55%를, 위챗페이가 39%를 차지했다.

알리페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단기금융펀드(MMF)인 위어바오(余额宝)를 운용한다. 위어바오는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해 시중은행 예금 이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뮤추얼펀드다.

가입자들은 보통 자신들의 앱에 담겨 있는 현금을 펀드에 납입한다. 알리페이 플랫폼에는 이와 비슷한 펀드가 여러 개 있는데, 지난 6월 기준 알리페이가 보유한 자산 규모는 6천억달러에 육박했다.

암호화폐 기업 ZB 그룹의 오로라 왕 부사장은 “예금 대비 대출 비율은 은행의 대출 여력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라고 설명하면서 “예금 규모가 클수록 대출도 더 많이 할 수 있는데, 대출은 이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은 사업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상업은행들이 앞으로 대출 수요를 감당할 수 있으려면 예금 규모를 늘리거나 유지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 둔화 속도가 빨라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중국 상업은행 중 일부는 일반 고객들이 결제할 때 디지털 위안을 사용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들이 디지털 화폐를 현금으로 전환하면 그 돈은 모바일 결제 앱이 아닌 은행 계좌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왕 부사장은 인민은행이 지난달 선전시 주민들에게 1천만위안, 약 17억원 규모의 디지털 위안을 지급한 것은 디지털 위안의 대규모 도입을 부추기기 위한 또 하나의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일주일 동안 진행된 인민은행 실험에서 5만명의 참가자가 디지털 지갑을 다운받았고, 추첨을 통해 각각 200위안, 약 3만4천원을 지급받았다. 선전시 상점들은 이 돈으로 결제할 때 사용할 수 있는 QR 코드를 비치했다.

상업은행의 예금을 촉진하는 것 외에도 디지털 위안의 효용성은 많다. 디지털 위안이 도입되면 상업은행을 이용하는 고객 기반이 커지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많은 거래 내역이 쌓이게 되고, 은행은 이를 기반으로 고객들의 온라인 활동을 분석해 또 다른 수익을 내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왕 부사장은 “중국의 상업은행들은 핀테크 기업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디지털 위안을 무료로 지급하는 실험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며, 상업은행의 디지털 지갑 사용을 독려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많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디지털 위안으로 결제하기 위해 선전시 뤄후구의 한 샤브샤브 식당을 찾은 남성이 휴대전화를 들어 디지털 위안 지갑 애플리케이션을 보이고 있다. 출처=후난두스 보도 화면 캡처
디지털 위안으로 결제하기 위해 선전시 뤄후구의 한 샤브샤브 식당을 찾은 남성이 휴대전화를 들어 디지털 위안 지갑 애플리케이션을 보이고 있다. 출처=후난두스 보도 화면 캡처

 

디지털 위안의 대중화

그럼에도 디지털 위안이 대중적으로 도입되려면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지난달 선전시에서 디지털 위안 지급 행사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편리함 때문에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를 여전히 선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라트나는 “특정 상품의 대중적 도입은 중앙은행에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이라면 상품을 널리 보급하는 일이 쉬울지 몰라도 중앙은행의 관점에선 생소한 영역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디지털 위안 친화적인 규제 정책을 마련하고, 금융 접근성이 없는 중국인들이 기본적인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위안만의 기술적 기능을 키우고, 디지털 지갑의 사용자 경험을 향상하는 것은 모두 디지털 위안의 대중화를 앞당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결제 기능 면에서 디지털 위안이 알리페이와 두드러지게 차이 나는 부분은 현금 거래를 위한 모바일 앱을 은행 계좌에 연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핀덱스(Global Findex)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 계좌를 보유하지 않은 중국인은 2억2500만명 이상으로, 세계에서 그 수가 가장 많다.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플랫온(PlatOn)의 수석 경제학자 쩌우촨웨이에 따르면, 디지털 위안 지갑에는 고객신원확인(KYC) 요건이 적용되는데, 고객이 보유하고 있거나 보유하고자 하는 디지털 위안의 양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이 된다.

즉, 디지털 지갑에 더 많은 신원 정보를 입력하면 그만큼 더 많은 디지털 위안을 보관할 수 있는 것이다.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를 이용하려면 은행 계좌를 등록해야 하는데, 정부가 발행한 신분증이 필요하다. 안면 인식이나 휴대폰 번호 인증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기도 한다.

보유한 디지털 위안의 규모가 수천달러 정도에 머무는 이용자라면 신원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 이는 특히 소액 개인 예금자들에게 유리한 요소가 된다.

이처럼 은행 계좌와 연동할 필요가 없는 디지털 위안 지갑은 중국에 있는 외국인이나 해외에서 위안화 거래가 필요한 이용자들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인민은행은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기간 중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현금을 들고 오거나 중국 내에서 은행 계좌를 개설할 필요 없이, 자국 통화를 디지털 위안으로 환전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험 운영할 계획이다.

외국인들은 중국에 은행 계좌가 없어도 디지털 위안을 이용해 중국 내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고, 국외에서도 누구나 중국으로 자금을 송금할 수 있다. 디지털 위안은 전적으로 인민은행의 소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디지털 위안은 일반 대중의 디지털 화폐 도입을 부추겨 디지털 결제 시장의 구조를 분명히 바꿀 것이다. 이미 중국에는 상업은행에서 출시한 모바일 앱과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이 있는데, 디지털 위안을 위한 전용 앱도 출시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앱은 하나의 독립적인 앱으로 작동하거나 제3의 결제 앱에 통합될 수도 있다.”

이미 중국의 4대 상업은행은 자체 모바일 앱에 디지털 위안을 결제 옵션으로 포함하고 있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아직 인민은행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

라트나는 “인민은행이 숨겨둔 카드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실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대규모 정책 변화를 추진하는 경향이 있는데, 디지털 위안의 도입도 같은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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