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Anna Shvets/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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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5일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모든 납세자에게 지급했다. 국적에 상관없이 세금 낸 기록이 있는 이들에게 다 지원금을 준 덕분에 내 통장에도 1200달러가 입금됐다.(당시엔 미국 뉴욕시에 거주했다) 아내도 같은 액수를 받았다.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약 300만원 정도의 지원금이 우리집 통장에 입금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원금을 받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치 자기 사재를 털어 돈을 댄 것처럼 생색을 냈다.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사람들이 지원금을 어떻게 썼는지에 관한 기사, 통계를 본 뒤였다.

미국인들에게 매주 “당신은 지난 일주일간 끼니를 거르거나 배고프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이 코로나19 이전과 비슷하게 나온 기간이 유일하게 딱 한 주 있었다.

4월 셋째 주, 그러니까 모든 성인에게 1200달러, 미성년자에게 600달러가 지급된 뒤였다. 이미 매우 불평등한 미국에서 ‘저축이란 사치’를 누리지 못하던 수많은 서민층은 경제가 급격히 나빠지자 식탁에 올리는 음식도 줄여야 했다. 이들에게 1200달러는 정말 귀한 돈이었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부유한 이들은 코로나19에도 일자리를 잃지 않았다. 재택근무로 전환하는 게 좀 불편했지만, 내일 세 끼를 먹을 수 있을지, 이번 달 집세를 낼 수 있을지 걱정은 안 해도 됐다.

어느 정도 저축해둔 돈으로 한동안 버티는 데도 큰 문제가 없었다. 긴급하지 않은 이들에게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1200달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이었다. 어디에 투자하기 알맞은 여유 자금이 생긴 덕인지 4월 셋째 주에 주식시장은 물론 암호화폐 가격도 잠깐이지만, 반짝 상승했다.

최근 들어 새로 나온 통계를 보면 미국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더욱더 뚜렷한 계급사회가 됐다.

코로나19 이후 미국에선 일자리 1000만 개가 사라졌다. 2200만 개가 줄었다가 1200만 개가 회복됐다고 한다. 참고로 2008년 금융 위기 때 미국에서 감소한 일자리는 900만 개였다. 그런데 이 1000만 개 일자리가 모든 산업 분야에서 골고루 줄어든 게 아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경제적으로는 서비스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서비스업 직종에서 사라진 일자리만 900만 개다. 식당, 영화관, 여행업계를 생각해보면 된다. 실제로 사람들이 서비스에 지출하는 돈은 6.1% 줄었지만, 반대로 각종 상품을 사는 데 쓰는 돈은 7.2% 늘어났다.

한편 연준이 제로 금리를 유지하고 달러를 계속 찍어내며 경기 부양 의지를 드러내는 가운데 집값도 5.7%나 올랐다. 기존에 내 집이 있던 사람들은 자산 가치도 오르고, 낮은 금리 덕에 돈을 빌리기도 쉬워진 반면, 세입자들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고용이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대부분 세입자일 가능성이 큰 점을 생각해보면, 일자리를 잃은 서비스업 종사자 900만 명과 그가 부양하는 가족들은 당장 내달 집세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집세 걱정 전에 자녀에게 쓰던 교육비도 줄였을 테고, 먹을 것이 부족해 굶주리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말이면 기존에 지급하던 실업수당 지급이 끊길 위기에 있는 노동자가 1200만명이다. 선거에서 졌지만, 아직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당선인 인수위와 모든 협력을 가로막고 있다.

재난지원금을 걱정하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승산 없는 선거 무효 소송에 신경 쓰느라 바빠 보인다. 앞서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에 필요한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의회도 사실상 손을 놓고 이번 선거로 꾸려질 다음 회기를 준비하고 있다.

암호화폐 업계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디지털달러로 지급하면 더 투명하고 빨리, 효율적으로 필요한 이들에게 돈을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상황을 보면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이 문제가 아니다.

가뜩이나 사회적 안전망도 전무한 사회에서 필요한 지원금이 아예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게 문제다. 근본적으로 팬데믹 때문에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은 이들이 누구인지, 이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부터 논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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