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ICO는 2018년 가을 블록체인을 처음 취재할 당시 가장 많이 들은 용어 중 하나다. 리버스ICO란 기업이 기존에 운영하던 서비스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서비스의 성장과 운영에 기여한 다양한 참여자에게 토큰(암호화폐)을 보상으로 주는 걸 일컫는다. 

일반 암호화폐공개(ICO)에 비해 리버스ICO는 비교적 안전하고 수익성이 좋을 거란 기대를 받았다.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서비스에 대한 청사진을 담은 백서만으로 자금을 모으는 게 아니라, 기업이 이미 시장에서 사업성을 한 차례 인정받은 서비스를 기반으로 토큰을 발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대부분의 리버스ICO 프로젝트가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1년 가까이 잊고 지낸 리버스ICO를 다시 떠올린 건 최근 자주 들리는 '프로토콜 경제'라는 용어 때문이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해 말부터 플랫폼 경제의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프로토콜 경제'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블록체인 기업 관계자들과 꾸준히 만나며 힘을 보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우아한형제들, 소상공인연합회 등과 업무 '프로토콜 경제 실현을 위한 자상한 기업 업무협약'을 맺으며 프로토콜 경제를 향한 첫 발걸음을 뗐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펀드에 50억원을 출연하고, 소상공인들이 참여하는 배달 플랫폼 상생 협의회를 만들며, 플랫폼 데이터를 민간과 공공에 공유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출처=한겨레 자료사진
출처=한겨레 자료사진

여러 인사가 말하는 프로토콜 경제의 핵심은 플랫폼 소유자와 소비자, 긱(Gig) 노동자 등이 프로토콜, 즉 게임의 규칙을 함께 정하고 따른다는 점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함께 정한 공동의 규칙을 블록체인의 스마트계약에 담는다. 그리고 플랫폼에 기여한 정도에 비례해 토큰을 통한 보상 배분이 자동으로 이뤄지게 한다. 그 내용은 투명하게 공개돼 누구나 볼 수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다.

많은 리버스ICO 프로젝트가 실패를 겪은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우선 2019년 암호화폐 시장이 겨울을 맞이하며 리버스ICO 프로젝트들의 수익성이 함께 악화했다. 많은 프로젝트가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로 사업 자금을 모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 주주들 사이 회의론이 커졌다. 이를 버티지 못한 많은 기업이 블록체인 사업을 접거나 축소했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패인은 대부분의 기업이 리버스ICO로 발행한 토큰의 사용 가치를 세상에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가치가 비교적 안정적인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왜 굳이 토큰이어야 하냐'는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없다면 프로토콜 경제는 그 무엇의 대안도 되기 어렵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엔(n)잡러' 등 용어로 포장해도 마찬가지다. 당장 배달 수수료를 올리는 일, 또는 배달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 산업재해 보상을 해 주는 일에 비해 플랫폼 노동자에게 토큰이 더 도움 되는 이유에 대해 누군가는 명확히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의 의견이 궁금하다면 오늘 점심 식사를 가져다 준 라이더에게 한 번 물어 보자. 프로토콜 경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아마 그는 다음 배달지로 시간 맞춰 달려가느라 말을 건네기도 전에 사라져 있을 테지만.

정인선 기자 한겨레신문 정인선 기자입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3년여간 코인데스크 코리아에서 블록체인, 가상자산, NFT를 취재했습니다. 일하지 않는 날엔 달리기와 요가를 합니다. 소량의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클레이(KLAY), 솔라나(SOL), 샌드(SAND), 페이코인(PCI)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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