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Benjamin Dada/Unsplash
출처=Benjamin Dada/Unsplash

오키크 레티샤 치코지는 유통업에 종사하는 28세 나이지리아인이다. 언젠가는 자신만의 신발 가게를 차리는 것이 꿈이다. 사업을 시작하려면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신용이 없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그가 찾은 대안이 지역사회에서 운영되는 전통적인 저축모임이다. 이수수(esusu)로 불리기도 하는 이 저축모임은, 제도권 금융에 대한 접근성이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모으고 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또는 짐바브웨처럼 인플레이션이 높은 나라에서는 저축한 돈의 가치가 순식간에 증발해버릴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때, 스테이블코인이 문제 해결을 위한 열쇠가 된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가치가 미국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 또는 다양한 자산의 조합 가치에 연동되는 암호화폐다.

“나이라(나이지리아의 법정화폐)의 평가절하 때문에 지난 2년간 돈의 가치가 많이 하락했다. 현재 2만나이라의 가치는 그 때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다.

차라리 이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거나, 돈의 가치가 하락하지 않는 곳에 저축하면 어떨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돈을 훨씬 쓸모 있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오키크 레티샤 치코지

서클(Circle)의 조쉬 호킨즈 선임부사장은 통화 가치의 변동성이 크고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지역의 개인들과 기업 사이에서 달러에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이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는 국민들이 매입할 수 있는 달러의 양을 정부가 규제하면서, 미국 달러에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 다이(DAI)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호킨즈는 코인데스트US에 보낸 이메일에서 “디지털 달러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고, 특히 지난 1년 동안 두드러지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잠재적 시장

저축모임은 나이지리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돈을 모으고 빌리기 위해 사용하는 핵심 금융 수단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은행계좌가 없는 성인은 약 3억5천만명에 이른다.

전 세계적으로는 여성과 빈곤층의 금융 접근성이 매우 낮고, 여성이 저축모임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8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만 1100만명의 사람들이 스코벨(skovel)이라 불리는 전통적인 저축모임에 가입해 30억달러를 저축했다.

치코지는 아프리카에서 저축모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과 같은 저소득 근로자라고 설명했다.

치코지가 가입한 소규모 이수수는 보통 12명 정도로 구성되며, 친구나 동료, 이웃들이 참여한다. 참여자들은 주기적으로 사전에 정해진 소득의 일부를 공동기금에 납입한다. 치코지는 매달 2만나이라(약41달러)를 납입한다.

참여자들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공동기금을 사용할 수 있다. 즉, 자기 차례가 되면 별도의 이자 비용 없이 공동자금을 전부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계모임과 비슷하다.) 신용이나 은행계좌가 없어도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다. 그저 기존 참여자 중 한 명이 추천해주기만 하면 된다.

대부분의 경우 참여자들이 납입한 돈은 별다른 가치 상승 없이 있는 그대로 다시 분배된다. 2017년 가나와 말라위, 우간다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저축모임은 현지 사업의 수와 장기운영에 도움을 줬지만, 전체 가계 소득이나 식량 안보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의 디지털화

핀테크 기업 젠드 파이낸스(Xend Finance)의 CEO 아로누 우고추쿠는 의학 교수인 어머니가 저축모임에 참여하고 있어, 아프리카 저축모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몇 달에 한 번씩 “이번 달이 내 차례”라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번 달이 내 차례라고 말씀하신 달에는 늘 많은 양의 돈을 가지고 오셨다. 그 돈을 가지고 자동차를 사거나 큰 프로젝트가 있으면 그 비용을 댔다.”

우고추쿠는 나이지리아 지역사회의 저축모임이나 신용조합 등을 대상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젠드 플랫폼을 활용하면 공동기금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기금을 미국 달러에 연동된 US달러코인(USDC)과 같은 스테이블코인으로 변환해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우고추쿠는 신용조합과 저축모임을 대상으로 기금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플랫폼 테크퓨전(TechFusion)과 손잡고 젠드 파이낸스를 만들었다. 테크퓨전은 나이지리아 비공식 금융의 디지털화를 위해 나이지리아에 진입한 수많은 핀테크 기업 중 하나다.

우고추쿠는 코인데스크US와의 인터뷰에서 “나이지리아인들의 저축모임 문화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개선해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해 주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러한 저축모임의 대다수가 비공식 금융에 속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나이지리아에서 비공식적인 ‘현금’ 경제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64%에 이른다. 우고추쿠에 따르면, 보다 규모가 큰 비공식 신용조합의 경우 중개인을 써서 기금을 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익률은 1% 정도로 매우 저조하다.

우고추쿠는 “중간 단계에서 돈을 빼돌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매튜 오크 테크퓨전 CEO는 금융서비스 접근성 향상을 위한 기술을 제공해 금융 포용성을 높이는 것 뿐만 아니라, 저소득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언제라도 사람들이 은행 계좌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그 사람들에게 돈이 없으면 은행 계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2019년 나이지리아에서는 810만개의 신규 은행계좌가 개설됐으나, 장기미사용 계좌는 4557만개에 육박했다.

매튜 오크는 “그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은 소득을 늘릴 수 있는 기회”라며 “그들이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소득을 늘릴 수 있도록 한 후, 그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주장했다.

젠드 파이낸스(Xend Finance)의 CEO 아로누 우고추쿠. 출처=젠드 파이낸스
젠드 파이낸스(Xend Finance)의 CEO 아로누 우고추쿠. 출처=젠드 파이낸스

저축보다 부 창출

치코지는 지금까지 저축한 돈을 늘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딱히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가진 것이 얼마 없기 때문에, 얘기를 듣거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치코지는 그러면서 자신이 가진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막고 더 나은 곳에 투자할 수 있다면, 충분히 검토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저축모임에서는 내 차례가 돼서 돈을 가져와도 어디다 써야 할지, 혹은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떻게 해도 결국은 쓸데없이 써버리게 된다. 돈을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매우 좋을 것 같다.”

치코지와 같은 잠재적 기업가가 스테이블코인 투자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에서는 휴대전화에 탑재된 계좌에 현금을 담아두고 다니면서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현금계좌의 사용이 금융 포용성을 촉진하고 있다.

통신사 보다폰(Vodafone)의 엠페사(M-Pesa)는 아프리카의 가장 큰 모바일 현금서비스 중 하나로, 아프리카 전역에서 약 4천만명이 이용한다.

젠드 플랫폼은 휴대전화로 이용이 가능하다. 저축모임 등은 이 플랫폼을 이용해 중개인 없이 공동기금을 USDC와 같은 스테이블코인의 형태로 직접 보관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이자 수익도 얻을 수 있다.

서클의 호킨즈는 “달러와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와 달리 인터넷에 연결된 장치만 있으면 세계 어디에서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으며, 거래 수수료도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오고추쿠는 지난 1월 75개국에서 1500명이 참여한 시범운영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밝혔다. 젠드 파이낸스는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Binance)가 후원하고 있으며, 이달 말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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